글 / 김응규_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3학년. 제12회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1. ‘나’는 낯선 곳에 있다
나는 돌을 좋아한다. 여행을 하면서 든 생각이다. 여행은 낮선 것들 안에서 친숙한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분별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외국 어느 도시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성향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빨간색과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점수를 매기다보면 어물거리던 자신의 형체가 확고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애초에 모든 여행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 아닌가싶다.
때문에 이곳, 스페인까지 왔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것과 모르는 것에 무딘 나였지만 좋아하는 것은 낯선 것들 중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나의 글에 전혀 새로움이 없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이제 처음으로 되돌아가 나의 글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나는 돌을 좋아한다.
2. 아마도, 건축가는 행복할 것이다
열흘 동안 살펴본 스페인의 모든 도시들은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색을 입지 않은 고유한 색의 돌들이었다. 암스테르담을 우회하여 처음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척이나 무거운 곳으로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르셀로나의 거리는 낮은 산악지대 같았고, 해외에 나와본 것이 처음인 나는 긴장되고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들어본 유럽은 언제나 산적과 마주칠 수 있는 곳이었다. 소매치기나 사기꾼들이 언제나 관광객을 노리고 있고 치안이 불안한 곳.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런 얘기들은 으레 과장되었기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여행을 하는 동안 치안문제로 위험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화려한 경관에 그런 불안함을 잊고 있던 시간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하여간 바르셀로나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나는 숙소에 도착해서야 약간 안도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숙소에 짐을 푼 우리들은 가우디투어라는 이름으로 이틀에 걸쳐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가 지은 건물들을 돌아보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까사 밀라, 까사 바뜨요, 구엘 공원. 어느 하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전부 품고 있는 밀림이었으며, 까사 밀라는 자연을 닮은 안락한 미로였다. 까사 바뜨요는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건물이었고, 구엘 공원에서는 아름다운 원색의 모자이크 타일들이 돌과 나무와 어우러져 당시 가우디가 꿈꾸었을 동화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문득 ‘테마(Thema)’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대화의 주된 내용을 뜻하기도 하지만 스마트폰의 배경 같이 스크린상의 이미지와 배열을 뜻하기도 하는 단어. 이야기와 공간의 합성이라는 의미로 그 단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가우디는 건축물의 테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가였을 것이다. 마치 돌에 이야기를 새겨 넣으면 건축물이 된다는 듯이 그는 건축을 했을 것이다. 이에 이어서 이번 여행에서 가보지 못해 아쉬웠던 론다의 피레타 동굴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약 2만 오천년 전에 새겨진 물고기 그림이 남아있는 동굴. 물고기를 그려넣는 순간 평범했던 동굴이 하나의 건축물이 되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건축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오래 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건축가는 행복할 것이다’. 그라나다와 론다를 거쳐 세비야에 도착했을 때, 알람브라 궁전과 누에보 다리를 거쳐 스페인 광장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할 수 있었던 생각이다. 건물이 모여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과 사람이 만나 세계를 만든다. 글자가 모여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이 작가의 의지대로 배열되어 한 권의 책을 만들듯이 말이다. 다만 문학가들이 평생에 걸쳐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발굴해 내고도 그 세계로 직접 들어가보지 못하는 반면 건축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다. 스페인 광장의 최대한 많은 피사체를 담기 위해서 쭈그려 앉은 자세로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구도를 잡았을 때, 나는 이 광장을 건설한 사람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곳을 건축했을 누군가가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누에보 다리에서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감을 잡은 것 같았다. 나는 광장 둘레에 있는 건축물의 복도를 따라 걸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나는 건축가라는 직업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스페인이 부러워졌다. 거리에 있는 건축물 하나하나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곳이 바로 스페인이라는 듯이 버티고 서있는 스페인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스페인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3. 세계는 돌 위에 사람이 서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내 머릿속에 스페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스페인 사람들과의 대화가 절실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사실 잘 할 줄 언어는 모국어인 한국어가 고작이었으며, 영어도 띄엄띄엄 밖에 못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조차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던 중 스페인 광장을 방문한 그날 저녁, 플라맹고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의사소통이 비단 대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플라맹고는 화려하면서도 정열적인 춤이었다. 쉴 새 없이 들리는 탭(구두 굽으로 바닥을 치면서 나는 소리)과 역동적인 동작들. 그 탭과 몸짓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그 시선을 고갯짓과 표정으로 훔치고, 숨기고, 다시 던지는 일련이 동작들이 빠르고, 아름답고, 매끄럽게 연결되었다. 조명은 쭉 무대를 비추고 있을 뿐인데도 왠지 빠르게 깜빡이는 듯이 느껴졌고, 탭은 사진기의 셔터소리 같이 느껴졌다. 그 셔터가 눌릴 때마다 동작들이 공중에 잔상을 남기며 박히는 것처럼 보였고, 무대 곳곳에 걸려있는 플라맹고를 추는 여인들의 그림이 그런 효과를 배가시켜주었다. 스페인 고유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로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에는 통역사 김상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의 저명한 소설가 ‘아스투로 페레즈 레베르테’와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나는 스페인의 지성인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사회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서 사람들이 거짓된 이미지에 이끌려 현실과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 서양의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적절한 비유를 섞어가며 노련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 비유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았고 그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때는 이미 여행의 거의 막바지였다.
4. 나는 돌을 좋아한다
짧은 여행이 끝났다. 그것은 돌과 사람에 대한 여행이었다. 스페인에서 바라본 세계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돌 위에 사람이 서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돌 본연의 질감을 갖고 있었고 나는 그 건물들이 좋았다. 돌로 만들어진 작은 산악지대 같은 스페인이 좋았다. 그러나 왜 내가 돌을 좋아하는 지 아직 나도 잘 알지 못한다. 깎아서 무언가로 만들 수 있는 성질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고, 단단하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차가움이나 무거움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여튼, 돌의 어떤 면을 내가 좋아했던 것이든, 그것을 정확하게 알 때쯤이면 나는 스페인과 돌에 대한 시 한 편을 쓸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찾을 때까지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머릿속에서 여행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여행은 나에 관해서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내가 이 여행의 의미를 정리해서 시로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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