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인이 된다는 것
외국인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런던 피카디리의 한 유스호스텔에서 가위바위보를 상당히 잘 하게 생긴, 자크라는 프랑스인에게 외국인이 가져야 할 미덕에 대해 물었다. 역시 그는 가위바위보의 고수였다. 이상하게 가위바위보를 잘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뜸을 드리는 법이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이 된다는 것은 존재론적인 문제야. 한 마디로 설명할 길이 없군. 확실한 것은 존재론적인 문제라는 거야” 그리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존재론적인 문제라니. 여권을 만들거나,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야 하는 것, 낯선 거리의 표지판을 읽을 수 없는 것과 존재론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라고 말이다. 그는 유난히 넓은 손바닥을 양 옆으로 펼쳐들고 대답했다. “여하튼 너무 어려운 문제야. ‘존재론적’이라고 해두면 상당히 멋지지 않을까 해서 그냥 해본 소리야”라고 말이다. 역시 녀석은 가위바위보를 상당히 잘하는 타입의 인간인 것이다. 자크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아웅산 수지의 안부에 대해 물었고, 나는 미얀마사람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매우 화난 표정으로 대꾸했다. 다음부터는 꼭 영어나 불어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한국어가 그렇게 쓸모없는 것이었다니.
외국인이 된다는 것은 정말 존재론으로 설명이 가능한 문제일까? 불어로 존재론은 어떻게 발음하는 것일까? 언어문제가 절박하게 다가오는 외국인에게 있어서 세계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정말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인이 된다는 것은 이 세계의 어느 한 구석에 덩그러니, 매우 무책임하게 놓여 있음을 절박하게 느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황석영선생과 마거릿 드래블 여사는 외국인의 고독을 오래전에 뛰어넘은 세계인의 표준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외국인을 극복하면 세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웃기는 계급장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이미 계급장의 도안도 생각해 놓은 상태다. 물론 존재론 운운하는 자크란 녀석 보다는 훨씬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세계인으로서 황석영선생의 거침없는 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황석영 선생께 한국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회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물론 소문과 다름없이 황석영 선생은 얘기하고 우리는 포복절도하기만 하면 되는 자리였다. 선생의 거침없는 화술은 정말 부러웠다. 세계인이란 1993년에 내가 너무나 갖고 싶어 했던, 12단 기어가 장착돼서 오르막을 쉽게 정복할 있었던 MTB처럼 대단해 보였다. 쓸쓸한 외국인, 자크 식으로 말하자면 존재론적인 외국인을 넘어 세계인이 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따듯한 정종과 앙증맞은 모양의 회가 테이블에 오르자마자 “12단 기어가 장착된 MTB를 타고 세계를 누빌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조금만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황석영 선생이 세기의 거장 궨터그라스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얘기의 요는 황석영 선생이 궨터그라스와 처음으로 조우한 후 내뱉은 한마디에 다 들어 있었다. “내가 궨터그라스를 만나서 처음에 뭐라고 그랬을 것 같아?” 최소한 12단 변속기어가 장착된 MTB얘기는 아닐 것이다. 정말 뭐라고 그랬을까? “반갑다!”를 반말로? 영어에는 반말이 없을 텐데…… 답은 놀랍게도 “누구세요?”였다. 세상에 ‘누구세요’라니, 그를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겠지. 지천에 널린 맥도날드와 코카콜라가 서로 몰라보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렇다. 어깨를 쫙 펴고, 긍지를 가지고, 유명한 사람에게 영어로 누구냐고 물어보는 것이 세계인이다. 물론 어깨를 펴는 것은 가능할 것 같은데, 아직 영어로 물어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역시 영어는 오르막을 쉽게 오를 수 있게 해주는 12단 변속 기어인 것이다.
황석영 선생이나 마거릿여사와의 좌담회에서 통역을 맡아주신 고은주 선생, 프랑스에 계신 한유미 선생, 그리고 이탈리아의 리오토 선생은 우리의 말과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 물론 그만큼 우리의 것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그것을 세계에 전하려 애쓰시는 분들이다. 제3세계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불리함을 이해하고 세계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꾸준해 해 가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최소한 자신의 것에 대한 긍지를 잃지 않는 만큼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의 것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은 다른 문제를 가지고 올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리오토 선생의 지적은 상당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착한 민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집 역시 세계에서 가장 센 민족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좋지 못한 평가를 듣는 것은 한국인이 포악하고 예의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의 문화를 지나치게 자기 식으로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세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다. 나는 주말 밤 TV쇼프로에 출현한 어느 인도인이 바이올린을 양 발로 움켜쥔 채 연주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카레가 맛없는 이유가 다른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세계인은 영어만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가위바위보를 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MTB가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마거릿 여사가 한국의 여성문제에 대해 상당히 흥미로워 하는 모습을 보며 세계인이 갖춰야 할 상대주의적 관점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차이를 혁신적으로 좁혀 놓을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지의 상대를 이해하고 꾸준히 다른 세계를 탐험해 나가는 일은 목적과 상관없이 소중한 문제이다. 자신이 오랫동안 천착해 온 문제가 다른 문화권에서 어떻게 다뤄지는 지에 대해 흥미로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에 접근하려는 열정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겠노라고, 한국어 학습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느냐고 우리 일행에게 물어 보기도 했다) 이것은 MTB에 대한 나의 열정이나 존재론에 대한 자크의 열정 따위로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문화와 환경과 언어가 다른 미지의 영역에 대해 우리는 함부로 속단하지도 말아야 하며, 지나치게 모호한 태도를 취해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인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유연한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동안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고,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관대해 질것. 이것이 세계인을 위한 첫 번째 강령인 것이다.
프랑스 몽마르트의 어느 호텔에서 자크는 여전히 쓸쓸한 외국인인 내게 프라하에서 배워온 기술이라며 팔꿈치를 뒤로 접는 묘기를 선보였다. 자크는 자신의 오른쪽 어깨 위에 아몬드를 올려놓고 팔꿈치를 뒤로 접어 그것을 집어냈다. 자크는 그 기술을 카프카와 매우 친했던 어느 여종업원의 아들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녀의 아들은 카프카의 작품을 탐독하다 이런 구절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오늘 아침은 왠지 팔을 뒤로 접어보고 싶다’
그날 수십 번 뒤로 접어본 팔꿈치가 아직도 후끈 거린다. 아직은 좀 무리인 것이다. 자크가 내게 사기를 친 것일까? 여하튼 속상하다.
2. 몇 가지 인상적인 것들
‘비 내리는 몽마르트언덕에서 담배를 피며 파리 시가를 내려다보았다’라고 쓰면 상당히 그럴듯한 문장이 된다. 이렇게 ‘그럴듯한’ 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그럴듯한’ 일을 상상하고 ‘그럴듯하게’ 적어내는 일이다. 그와 반대로 ‘그럴듯한’ 일을 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 적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이런 일은 골동품 수집가가 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가져다 놓고 흡족해 하는 일과 비슷할 것이다. 언제나 주위에 없는 것을 동경하고 글쓰기로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익숙한 습관을 가진 내게는 정말 손쉽고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그럴듯한’ 일이란 찾아서 즐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고, 행복이란 ‘그럴듯한’ 일을 하고 그것을 그럴듯하게 받아 적은 다음 아무렇지도 않게, 싫증나면 그냥 팔아 버리겠다는 식으로 무덤덤하게, 그 문장을 음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비 내리는 몽마르트언덕에서 담배를 피며 파리의 시가를 내려다보았다’ 상당히 흡족하다. 처음으로 거짓말이 섞이지 않은 ‘그럴듯한’ 문장을 써낸 것이다.
로마 바르베리니 광장 근처 <해골의 사원> 지하에는 4000여명의 유골을 모아 성전을 장식해 놓은 예배당이 있다. 인간의 뼈로 단을 쌓고 샹들리에를 만들어 놓은 솜씨가 정말 환상적이었다. 넓게 펼쳐진 영장류의 골반 뼈가 직립보행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골반이나 두개골, 척추 등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비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예배당으로 들어가자마자 상당히 역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약간의 현기증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순수하게 인간의 유골로 만든 동굴에 들어가는 일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얼마간의 입장료를 지불했다는 생각 역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일행 중 K양은 지하 예배당에서 벗어나 한참동안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역겨움을 이겨내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생각해 내는데 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기막힌 예배당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중세의 죽음 관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16세기 말에 지어진 사원이라면 ‘바니타스’라는 정물의 한 장르를 상기하기에도 충분하다.(바티타스: 해골을 정물화에 그려 넣는 것을 말한다) 중세 말에 성행한 해골 장식과 <해골의 사원>과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충분히 상관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해골의 사원>이 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의 상징물들로(인간의 유골) 성전을 쌓아 속죄 하겠다는 의도만 있었던 것일까? 사실 세상의 너무나 많은 종교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담보로 신앙을 강제하고 있기도 하다.
베니스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이다. 나는 성 마르코 광장의 노상 카페에서 J군과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따갑게 내리쬐는 볕을 받으며 커피를 마시는 일 역시 ‘그럴듯한’ 일이다. J군은 시(詩)를 비평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얘기했고, 나는 J군의 지나친 결벽에 대해 얘기했다. J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문적 결벽 때문인지 시를 비평하는 것에 대해 약간 회의적이었다. 나는 완벽한 작품도 완벽한 비평도 함께 존재하거나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그를 위로했다. 그것이 가장 정상적인 생각이다. 마치 빨래에 ‘피죤’을 넣는 것처럼 말이다. 기적은 J군과 같은 그런 결벽을 가지고, 완벽한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들이 만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상당히 순수한 인간이며(물론 이러한 가정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솔직한 인간이다. 물론 성 마르코 광장의 카페에서 턱시도를 입은 웨이터가 날라다주는 커피를 마시며 나누기에도 상당히 적절하고 아름다운 대화였다고 생각된다.
여행을 하는 내내 유럽인들이 세워 놓은 커다란 돌덩이들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어디서인가 주워들은 풍월로 “이것은 바로크, 저것은 고딕……” 떠들며 다녀도 별 감흥이 없었다. 확실히 아는 것과 대충 아는 것의 차이를 나는 영원히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고맙게도 세계 각지에서 흘러들어온 런던 대영박물관의 거대한 돌덩이들에 대해 황석영 선생은 거침없이 ‘장물’이라는 표현을 써주셨다. 사실 그러고 보면 유럽에 있는 많은 박물관들은 장물애비의 본거지와 다름없는 것이다.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휘젓고 다니던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대대로 내려오던 불씨 몇 알과, 푸른 초원에 물들어버린 유전자뿐이다. 수많은 돌무더기들 속에서, 모두가 찬사를 아끼지 않는 아름다운 건축물 앞에서, 나는 너무나 반동적이게도 ‘유목민들은 일찍이 거대한 기념비적 예술을 낳은 예가 없다’는 A?하우저의 견해를 상기하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다녔다. 물론 “그래서 어쩔 건데?”라고 물어 본다면 할 말은 없다. 단지 그 돌덩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문예사조사』나『세계 미술사』같은 책들의 분량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고, 많은 실직자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 빼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보름동안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몇 가지의 미션을 해결하기위해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든 미션을 완벽히 수행해낸 우리 팀에게 경의를 표하며, 별 탈 없이 나를 안전하게 집으로 보내준 것에 감사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왠지 바이애슬론에 소질이 있을 것 같은 J선생과, 며칠 동안 미혼인 줄 알았던 K선생께 가장 먼저 감사드린다. 외로운 외국생활에 많은 도움을 준, 프랑스 리옹에 아름다운 금발의 애인이 있다는 자크에게도 감사드린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기를 즐기는 P양과, 우리 동네 봉황탕 여주인과 치정사건에 휘말리면 재미있을 것 같은 J군, 코카콜라의 비밀을 조만간 폭로할 것으로 보이는 K양, 마지막으로 전설모음화 현상을 가장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막내 K양께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