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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문단의 가을걷이

가을은 문학상의 계절이다. 지난 가을 나라 안팎에서 발표된 굵직굵직한 문학상들은 문학이 여전히 중요하고 풍요롭다는 증거인 것처럼 보였다. 평화상과 함께 노벨상의 꽃이라 할 노벨문학상은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영국 작가 나이폴에게 돌아갔다. 인도계 부모에게서 태어난 나이폴은 이십대 이후 영국에 정착한 개인적 이력을 살려 제국주의 제 1세계와 피식민지 제 3세계 사이의 문화적 충돌과 융합의 양상을 천착했다. 중심부의 언어 및 테크닉과 주변부의 체험 및 문제의식을 결합시키는 글쓰기는 세계문학의 새로운 활로로서 주목받고 있거니와, 최근 노벨문학상이 선호하는 작가와 작품도 그런 계열이다. 게다가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를 지닌 나이폴은 진작부터 노벨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어 왔으나, 올해 그의 수상 결정에는 문학 외적인 고려가 작용했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노벨상이 발표된 것이 뉴욕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지 정확히 한달이 되는 시점이었는데, 나이폴은 평소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해 온 터였다. 나이폴에게 노벨상을 안겨 줌으로써 스웨덴 한림원은 미국이 테러용의자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들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대산문학상의 다섯 부문 수상자들도 발표되었다. 지리산 산행 시만으로 이루어진 시집 『지리산』의 이성부씨가 시부문 상을 받았고, 최근 몇 년 사이 한국문학이 거둔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 『손님』의 황석영씨는 소설부문 상을, 평론집 『문학의 귀환』의 최원식씨는 평론부문 상을 각각 받았다. 특히 이들 세 부문 수상작은 모두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책이었는데, 대산문학상 9년 역사상 한 출판사의 책이 시·소설·평론부문 상을 휩쓸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밖에 희곡부문에는 「화려한 家出」의 이근삼씨가, 번역부문에는 서정인 소설 『달궁』을 프랑스어로 옮긴 이인숙·김경희·마리즈 부르뎅씨가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지난해 타계한 미당 서정주와 황순원의 이름을 따서 중앙일보사가 제정한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도 제 1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미당문학상에는 정현종씨, 황순원문학상에는 박완서씨가 수상자가 되었는데, 특히 미당문학상에 대해서는 그의 친일·친독재 경력 때문에 문단 안팎의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발표된 고은 시인의 '미당 담론'은 미당문학상과 미당 찬양에 대한 반대 목소리의 대표 격이었다.

  지난해 황석영씨의 후보 사퇴로 곤욕을 치렀던 조선일보사의 동인문학상은 올해도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14명 후보에 포함되었던 공선옥씨가 역시 후보 자격을 반납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결국 문학기자 출신의 소설가 김훈씨가 장편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칼의 노래』는 충무공 이순신의 말년을 개성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작가의 문체와 세계관이 적절히 결합된 수작이었다.

  동아일보사가 주관하는 인촌상의 문학부문 상은 소설가 최인훈씨에게 돌아갔는데(동아일보사의 해명으로는 내정이었다지만), 최인훈씨는 5천만원 상금의 이 상을 거부함으로써 파문을 일으켰다. 최인훈씨는 자신의 수상 거부가 "공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인촌의 친일 행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문학평론가이자 대학 교수로서 각자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온 이어령, 김윤식씨가 각각 이화여대와 서울대 국문과에서 정년퇴직했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퇴임 기념 강연을 했으며, 자신의 문학적 이력을 돌이켜 보는 가운데 문학과 사회를 보는 태도를 피력한 두 사람의 강연에 신문은 물론 텔레비전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그 어느 문인 못지 않게 커다란 화제를 낳은 이는 소설가 이문열씨였다. 이씨는 언론사 세무조사와 시민단체의 언론개혁운동을 비판하는 칼럼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실으면서 시민단체들 및 추미애 의원 등과 격렬한 논전을 주고받았다. 그가 시민단체를 홍위병에 비유한 데 대해 분노한 네티즌들은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그를 비난하는 글을 연일 올렸고, 이문열씨에게 그의 책을 돌려주겠다는 일부 독자의 주장에 대한 그의 즉발적인 대응은 또 다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 게시판을 폐쇄했지만, 일부 독자들은 전국의 독자들에게서 '기증'받은 이문열씨의 책 수백 권을 차에 싣고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 부려놓기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이문열씨는 『현대문학』 10월호에 추미애 의원과 시민단체, 네티즌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단편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를 발표해 스캔들을 연장시켰다. 이 작품을 표제로 삼은 중단편집이 곧 이어 출간되었으나, 언론과 평단의 반응은 냉담했다. 표제작을 포함해 이 책에 실린 상당수의 작품들은 소설의 외피를 쓴 정치 팸플릿으로 보일 정도였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와 문인협회(이사장 신세훈)는 미국의 아프간 공습을 전후해 일종의 성명전을 벌였다. 작가회의는 뉴욕 테러가 있은 지 일주일여 뒤인 9월 19일 '우리는 미국의 보복전쟁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해 미국의 예상되는 아프간 공격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아프간 공습을 시작한 뒤인 10월 8일 이번에는 문인협회가 미국 공습과 일본 자위대의 파병에 반대하는 두 종의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그간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 온 문인협회의 성명 발표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외국 문인들의 발길도 잦았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주도한 '2001평화촌 세계 작가회담' 행사(10월 27일∼31일)에는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 오다 마코토, 카를로스 아돌포 프란츠 토루드 등 20여 명의 외국 문인들이 참가해 한국 문인들과 토론을 하고 친교도 나누었다. 독일문화원이 주관한 '독일문학주간' 행사에도 요아힘 자르토리우스, 마티아스 폴리티키, 루돌프 부스만 등 3명이 참가해 한국 문인들과 어울렸다.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첫 방한 역시 독자들의 관심을 모은 사건이었다. 대산문화재단의 초청으로 방한한 르 클레지오는 10월 중순부터 1주일 남짓 한국에 머물며 강연회와 작품 낭독회 등의 형식으로 한국 독자들과 만났다. 특히 소설가이기 전에 시인이었다는 르 클레지오는 전라남도 지역을 여행한 뒤 새삼스럽게 시적인 감흥이 일어났다며 시를 써서 보내오기도 했다.

  『세월』의 작가 김형경씨가 3년의 공백을 깨고 두 권짜리 새 장편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이유』를 발표한 것 역시 반가운 사건이었다. 새 장편에서 그는 자전적 주인공을 등장시켜 유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의 상처 및 무의식과의 정신분석적 대결=화해를 거쳐 새로운 전진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