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효환  © 운영자

끝내 줄기세포는 없었다. 있는 것은 상상으로라도 믿고 싶지 않았던 논문조작이었고 끝을 알 수 없는 내부자들 간의 진창 속 진실게임이 이어지고 있다. 비본질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주변의 온갖 것들까지 샅샅이 들추어 대는 황색저널리즘의 뒷북치기 구태가 재현되었고 열렬한 황우석 교수 지지자들의 시위와 극단적인 자해가 멀어져가는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되돌아간 놀라운 평상심의 저편으로 지난 겨울 내내 충격과 공방과 좌절로 점철되었던 풍경은 이제 희대의 사기극으로 그리고 잊고 싶은 악몽으로 그 끝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국가부도사태로 불리는 IMF 구제금융 이래 가장 큰 재앙’이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번 일은 새로운 세기를 맞아 당한 엄청난 충격이자 시련이었다. 한 과학자의 공명심과 허영심이 부풀릴 대로 부풀려놓은 허상의 붕괴는 국제적인 신인도 추락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일구어 놓은 결코 작지 않은 성과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일순간 정신적 공황에 빠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IMF가 그랬듯이 역설적이게도 한국 지식사회에 있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IMF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를 재기불능의 상태로 주저앉게 하기보다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투명성과 건강성을 회복하게 한 추동력이 되었듯이 말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거짓과 조작에 있지만 그 기저에는 그것을 부추기고 용인하는 그럼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도록 조장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승적인 견지에서 혹은 애국심의 옷을 입고 약간의 거짓말이나 편법은 있을 수 있고 때로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그것이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지난해 우리 문화계의 큰 행사였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우창 교수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직위원회에서는 불모에 가까운 독일 사회에서의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봄부터 도서전이 열리기 직전까지 한국작가들이 독일 곳곳을 방문하는 낭독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낭독회에 관해 만든 보도자료의 제목이 “한국문학, 독일을 휩쓸다”였다고 한다. 보다 정직하게, 아니 사실에 가깝게 “한국문학, 독일을 순례하다”로 고칠 것을 권했다는 김 교수는 사실무근의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보다 과장하려는 습성, 나아가 그런 과장과 자극이 있어야만 비로소 관심을 갖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으며 그것이 이번 사건을 빚어 낸 토양이 아니었겠느냐고 진단하였다. 한 개인의 작은 거짓이 얄팍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혹은 이용해서) 검증 없이 확대되고 마침내는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거짓말을 낳은 것이다.

필자는 이번 일이 어쩌면 한국 지식사회에 있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줄기세포 진위와 논문조작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이 가능한 자연과학 분야라는 점에서, 그리고 모든 이들의 관심의 초점이 일시에 모아짐으로써 검증을 피해갈 수 없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진실이 규명되었고 그리고 아직도 지겹게 꼬리를 물고 있는 몇몇 사안들 역시 사실 관계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그동안 ‘최초의’ ‘최고의’ ‘최대의’ 등의 수식어와 함께 인문, 사회과학 분야를 비롯한 우리 사회 각처에서 쏟아낸 ‘엄청난 성과’들은 괜찮은 것인지, 사회적 유명세나 이름으로 혹은 패거리지어 자신의 성과와 이데올로기를 과장하고 부풀려오지는 않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숨이 멎을 것만 같다. 객관적인 검증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므로 아니 이미 지나간 일이므로 눈을 질끈 감으면 괜찮은 것인지. 더 많은 거짓과 조작이 난무하고 그 위에 언제 폭삭 주저앉을지 모르는 겉만 번지르르한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