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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저리타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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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이 이기호라는 좋은 작가를 잃는다면, 그것은 오직 딱 하나, 축구 때문이다, 라고 내 애인은 화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에이, 뭐 그렇게까지야, 라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애인은 확고했다. 오빠가 지금까지 해온 짓을 잘 생각해 봐, 라며 내 옷장에서 각기 다른 축구 유니폼 네 벌을 꺼내들었다. 신발장에선 두 켤레의 축구화를 꺼냈고, 베란다에선 바람 빠진 두 개의 축구공을 들어 보였다. 나는 괜스레 흠, 흠, 헛기침을 했다. 애인은 그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잠깐, 오빠 노트북 좀 볼까. 애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노트북을 켰다. 바탕화면에 깔린, 버전이 각각 다른 축구 게임이 두 개(그 게임 때문에 한 때 노트북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스크랩해둔 축구선수 사진이 수십 장, 따로 저장해둔 레알 마드리드의 동영상이 두 개였다. 그거야 애인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따로 잔소리를 들을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한글 파일이었다. 애인은 그 파일이 궁금했던 것이었다.
“이거 봐, 이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또 마감 못 지켰지? 한 자도 안 썼네.”
애인은 그러면서 주말에 도대체 뭘 했느냐고 추궁을 했다. 나는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고민을 했지…….”
고민을…… 하긴 했다. 자정부터 방영된 박지성과 이영표의 프리미어리그 15라운드 게임을 보며, 새벽 세 시와 다섯 시에 방영된 차두리와 안정환의 분데스리가 게임을 보며, 많은 고민을 하긴 했다. 아, 왜 우리나라 선수들은 저렇게 몸싸움에 약한 것일까, 왜 저렇게 침착하지 못한 것일까…….
“고민 좋아하네.”
그러면서 애인은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을 했다. 나는 계속 흠, 흠, 헛기침을 하며 담배를 찾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축구 소설을 쓰던가.”
썼다. 왜 안 썼겠는가. 다만 발표를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름, 환상소설이었다. 랭보와 보들레르가 투 톱을 맡고, 톨스토이와 겐자부로와 조이스와 로트레아몽과 까뮈가 미드필더를 하고, 도스트예프스키가 스위퍼로 나오는(골키퍼는 이문구 선생이었다), 그런 소설이었다. 공이 자기 앞으로 굴러오면, 공은 차지 않고, 공과 막 대화를 나누는 소설. 로트레아몽이 자살골을 넣었다고 도스트예프스키한테 막 혼나는 소설. 차마, 발표할 수 없었던 소설…….
“축구하듯이 소설을 쓸 순 없어?”
애인의 말에 나는 옳다구나, 변명할 기회를 잡았다. 그래서 나는 애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그 점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보았다. 축구와 소설이라는 것이 의외로 공통점이 꽤 많은 친구들이다. 둘 다 어쩔 수 없이 가난의 냄새가 나는 것도 그렇고, 마무리가 중요한 것도 그렇고, 창의적인 플레이가 승부를 결정짓는 것도 그렇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커다란 그림을 좌우하는 것 역시……. 소설이 펜과 종이만 있으면 준비가 끝나는 것처럼, 축구 또한 공과 땅 몇 평만 있으면 준비완료다. 그런 다음, 작가와 감독(관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은, 자신이 훈련시키고 만든 선수들(인물)을 운동장(원고지)에 풀어놓고,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의외성에 대해 대처하고자 노력하지만, 실상 소설과 축구를 완성시키는 것은 바로 그 의외성이다. 그러니까 작가들은 열심히 축구를 보면서 수만 가지의 의외성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공이 둥글 듯, 손끝 또한 둥글지 않느냐. 우리가 뭐 영어 단어 외우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말은…….”
애인은 거의 자포자기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래서 나는 애인에게 희망을 주기로 했다.
“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집에 가서 뭘 하는 줄 알아?”
애인은 말없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걔가 집에 가서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본단다. 소설책을 보는 게지.”
“그게 뭐?”
“그러니까 축구를 하는 지성이가 소설을 읽듯, 소설을 쓰는 오빠 역시 축구를 보는 거야.”
애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혼란스러워했다.
“이게 둘 다 격한 종목이라서 말이야.”
애인은 계속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위로하고 위안을 받는 거지.”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까 나는, 내 스스로 위안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 마감을 그렇게 팍팍하게 지키면 어떻게 하느냐, 인저리 타임(injury time)이라는 것도 있지 않느냐. 부상당한 선수 교체해주는 시간을 예외로 해주듯, 우리도 갑자기 사라진 인물들에 대해, 그것들을 만회할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운운.
“그럼 오빠는 매번 부상만 당하는 거네?”
애인의 말에 나는 잠시 움찔했다.
“매번 인저리 타임이 다 되어서야 시작하잖아?”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도통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애인의 얼굴만 바라보고 앉아 있다가, 조용히 이런 말을 해주었다.
“선수든, 작가든, 그때 비로소 집중력이 발휘되거든. 지고 있는 경우엔 늘……. 그게 바로 축구와 소설의 공통점이라니까. 정신력 싸움.”
그러자 애인은 길고 낮은 한숨을 쉰 뒤, 말없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애인의 등뒤에 대고 손을 흔들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연애와 축구 또한 공통점이 있구나. 이것 또한 정신력 싸움이구나, 하는……. 따지고 보면 다 그렇구나, 하는……. 에잇, 이런 변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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