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대산문화
 
동전 마술
 
  1999년 12월 28일, 당시 28살의 회사원이었던 이정기 씨는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선을 보았다. 상대는 김민영이라는 대학원생이었는데, 그 쪽 역시 주변 사람들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고 싶지도 않은 자리에 끌려나온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쪽 모두 적당히 예의를 차리다가 그날부터 연락을 끊는 것이 순서이고 이들 역시 그렇게 했다.

  한심하게도, 이정기 씨에게 이 당연한 의식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그는 명동의 레스토랑에서 김민영을 처음 보는 순간 그 사람과 사랑에 빠져 버렸다. 단순히 외모에 대한 호감으로 시작되었던 그의 감정은 대화가 이어지고 상대방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점점 더 깊어졌다. 그렇다고 이것도 인연인데 계속 만나자고 제안하기도 그랬다. 이정기 씨는 독심술사가 아니었지만, 상대방이 그에게 어떤 관심도 없고 그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 동안에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눈치 없지는 않았다.

  저녁을 마치자 그들은 을지로 지하도로 내려왔다. 명동에서 을지로입구 역까지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김민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것 보여줄까요?”

  이정기 씨가 머뭇거리는 동안, 김민영은 핸드백에서 백 원짜리 동전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잠시 노려보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서 동전을 흔들어대더니 위로 집어던졌다. 동전은 반짝거리면서 날아올랐고……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한 겁니까?”

  이정기씨는 놀라서 물었다.

  “마법이에요.”

  “아니…… 정말 어떻게 하는 건데요?”

  “마법이라니까요. 여기선 저녁 9시 50분부터 10시4분까지 다른 세계로 가는 틈새가 열려요.”

  이정기 씨는 자기 시계를 봤다. 저녁 9시 52분이었다.

  “한 번 더 해봐요.”

  김민영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번엔 다시 오십 원짜리 동전을 꺼내 집어던졌다. 이정기씨는 눈을 부릅뜨고 동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동전은 중간에 사라져버렸다. 픽 하고 사라진 것도 아니고 천천히 투명해진 것도 아니고 그냥 어느 순간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다.

  멍청이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정기 씨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주머니에 굴러다니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꺼내 김민영이 던진 그 자리를 향해 던졌다. 그의 오백원은 기운차게 튕겨 올라갔다가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안 되잖아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뻘게진 그가 중얼거렸다.

  “틈새를 찾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김민영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그럼 저 동전들은 그냥 사라지는 겁니까?”

  “아뇨, 가끔 틈새가 다시 열리면 떨어지기도 해요.”

  “매일 9시 50분에서 10시 4분사이에요?”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요.”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고 곧 을지로입구 역에 도착했다. 김민영은 서초동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철을 탔고 이정기씨는 차가 주차된 덕수궁까지 걸었다.

  그 뒤로 그들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김민영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 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정기 씨는 1년 뒤 그와 동갑이고 같은 초등학교 출신인 중학교 교사와 결혼했고 다음 해에 엄마를 닮은 딸이 태어났다. 그들은 평범한 부부였다. 특별히 잘 생기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으며 대단한 야심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

  기복 없고 다소 지겨운 삶이 이어지는 동안, 이정기 씨는 꾸준히 김민영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익명으로 지오시티스에 비밀 홈페이지를 만들어 그가 직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김민영의 모든 사진들을 올려놓고 지치고 피곤할 때 그곳을 방문했다. 그는 이게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는 그 사람과 어울리지 않았다. 김민영은 높은 탑의 공주처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 아름답고 값졌다.

  직장과 집이 모두 안양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전처럼 자주 을지로 지하도를 찾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끔 서울을 찾을 때면 그는 일부러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을지로 지하도로 내려왔다. 수많은 동전들이 던져졌지만 그 동전들은 모두 천장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마술에 대한 책을 읽었고 케이블에서 마술폭로에 대한 프로그램을 하면 모두 예약 녹화해서 보았다. 그러나 김민영이 그에게 보여준 마술에 대한 해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김민영은 그냥 동전을 던졌고 동전은 중간에 사라졌다. 동전 마술은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2005년 11월 16일 오후 7시 32분이었다. 이정기 씨는 학교 동창들과 만나기 위해 명동의 모 중국집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을지로 입구에서 한 30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는 들고 있던 가방을 놓쳐버렸다. 고개를 숙여 가방을 집어 올리려는데, 갑자기 그의 머리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건 백 원짜리 동전이었다.

  이정기씨는 고개를 들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를 향해 동전을 던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정기 씨는 한 손으로는 동전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9시 50분이 되려면 아직 2시간 18분이 더 지나야 했다. 위치도 김민영이 동전 마술을 보여준 곳에서 몇 십 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한참 망설이던 그는 동전을 천장을 향해 던졌다. 동전은 당연히 천장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떨어진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섯 걸음을 넘기기도 전에 그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심호흡을 한 그는 다시 동전을 천장에 던졌다. 동전은 다시 떨어졌지만 이번엔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동전은 계속 천장을 향해 날아갔고 떨어졌다.

  42번째로 동전을 던졌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백 원짜리 동전이 던져졌는데 떨어진 것은 오십 원짜리였다. 중간에 동전이 변형된 것일까? 아니면 원래 백 원짜리는 틈새로 들어가고 그 충격으로 위에 쌓여있던 오십 원짜리가 대신 떨어진 것일까? 이정기 씨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날의 기적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이후로 이정기 씨는 더 이상 을지로 입구에서 동전을 던지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가 더 이상 마법을 믿지 않게 된 건 아니었다. 반대로 그의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어떻게 할 것인가? 틈새의 법칙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한 것이 분명했다. 김민영은 분명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이정기 씨에게 그걸 다 알려주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하긴 앞으로 만날 일도 없는 재미없는 남자에게 그런 걸 가르쳐줘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동전 마술을 보여준 것만 해도 대단한 친절이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이정기 씨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술자리가 늘어났고 음주운전으로 가벼운 접촉 사고도 한 번 냈다. 부부싸움도 한 번 일어날 뻔했지만 무신경한 아내의 성격 때문에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2006년 1월 16일 오후 8시 50분, 그는 을지로 지하도를 다시 찾았다. 직장에서 퇴근한 뒤 안양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청까지 왔다가 거기서 다시 목적지까지 걸었던 것이다. 한동안 지하도 천장을 노려보던 그는 갑자기 채찍이라도 맞은 것처럼 을지로 입구 역으로 달아났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당장 컴퓨터를 열어 김민영의 사진들이 담겨 있는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파일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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