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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인주의자의 사랑법- 장아이링의 『경성지련 / 첫 번째 향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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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이링의 소설은 1940년대 중국의 보통 사람들의 일상사를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라는 뜻을 지닌 『傳奇』(원래 한 권으로 출간됐던 이 소설은 나중에 ‘장아이링 전집’이 출간되면서 두 권으로 분권된 것이다)에 수록된 장아이링 소설의 인물 군상은 행복한 삶을 갈구하나 끝내 어긋나고 마는 보통사람들의 저마다의 사연을 들려준다.
퇴락해 가는 명문대가의 남녀는 경제적 보장을 잃게 됨과 동시에 봉건도덕과 가치체계의 붕괴에 직면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들은 정신적 고향이 몰락하는 두려움에 떨며 무기력하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이에 비해 소시민은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적응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내세울 만한 과거가 없는 그들은 과거에 대한 집착도 적은 반면 미래는 추측할 수 없는 요원한 화제에 불과할 따름이다.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현재 뿐이기에 그들은 현실세계의 유혹과 쾌락에 집착한다.
인간의 정상적인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되자 금전에 대한 소유욕으로 삶을 지탱해가다가 결국은 자신이 낳은 아들과 딸마저 소유하려다 모두의 행복을 짓이기고 마는 「황금족쇄」의 차오치차오, 딸의 혼사를 행복한 삶이라는 순수한 목적에 두지 않고 온정이란 베일을 쓰고 딸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의 상승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자 하는 「유리기와」의 야오 선생, 딸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재물이 폭로될까 두려워 말하지 않는 「꽃이 지다」에서 촨창의 어머니, 사랑을 원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손해 볼까 두려워하는 「경성지련」의 바이류쑤와 판류위앤, 냉혹하고 이기적인 아버지에 대한 증오 때문에 이상적 부친상을 찾아 헤매는 「재스민차」의 촨칭, 현실에서의 불확실한 사랑 대신 확실한 것을 찾아 자신을 의탁하고자 아버지를 사랑한 「심경」의 쉬샤오한 등……
이러한 인물 군상의 공통점이라 할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자신에 대한 배려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심’은 무서운 병적 심리라 할 것이다. 그들은 좁다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시대의 흐름 속에 뛰어들지 못한 채, 이 세상을 자신을 중심으로 한 새장으로 변화시켜 스스로가 자신의 감옥을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무관심’과 ‘이기심’의 극단적 표현은 곧 따뜻한 인간관계를 갈망하는 작자의 소망을 반어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장아이링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다루고 있다. 20세기 중반 대부분의 중국 여성들의 처지가 그러했을 것으로 보이듯, 공부를 해서 사회에 나가 일을 찾기 보다는 남자를 찾아 결혼을 하는 것이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는 훨씬 수월한 방법이기에 그녀들은 결혼에 모든 것을 건다. 그러나 삶이란 순간의 환상이 아니기에 그녀들은 감정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사랑의 추구를 포기하지는 않으며 여성들에게 가정에서나마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도록 격려한다.
작자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전쟁과는 무관한 보통 남녀의 일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경성지련」에서 작가는 애절한 사랑 때문에 성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성이 무너짐으로써 그 사랑이 완전해진 것이라며 상식적 읽기의 해체를 시도한다. 이를 단순화시키면 작가에게는 개인의 사랑이 전쟁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전쟁은 류쑤의 소망대로 안정된 가정을 가지게 해주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상해로 돌아가자 그들은 다시 견고한 일상 속으로 흡수되어버리고 만다. 류쑤는 오히려 쓸쓸함을 느꼈지만 일상이 주는 안도감으로 쓸쓸함을 상쇄시킨다.
일반적으로 전쟁을 다룬 작품은 전쟁이 사람들을 얼마나 교활하고 잔혹하며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장아이링은 전쟁 때문이 아니라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고 보잘 것 없으며 파렴치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비겁하고 우둔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안도감을 얻는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상태에 처해있던 상하이인들에게 우리는 모두 같은 부류라는 공동체적 정서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적 동일시가 1944년 상하이에서 장아이링의 소설집이 발간되자마자 사흘 만에 매진되어 재판을 발행하게 한 원동력이라 할 것이다. 이는 범인들은 영웅만큼 힘이 있지는 않지만 영웅보다 오히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힘이 더 크다고 여긴 작가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 『경성지련 / 첫 번째 향로』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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