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우린 누리와 살아요 |
| |
나는 누리보다 오 년쯤 늦게 태어났다. 십오 년이나 산 누리가 아직도 예쁜 걸로 봐서 강아지였을 때는 진짜 예뻤을 것 같다.
암캐인 누리는 한 번도 새끼를 낳지 못했다. 누리가 아주 어렸을 때 첫 주인이 새끼를 못 낳게 수술했기 때문이란다. 나는 나중에 결혼해 예쁜 아기를 둘은 낳고 싶다.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소풍도 가고 싶다. 나는 의상 디자이너가 될 거니까 그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거다. 그런데 누가 내게도 그런 짓을 했다면……. 저절로 눈물이 흐르고 코도 훌쩍거리게 된다. 콧물은 내가 아주 많이 슬프게 울 때만 나오는데…….
누리는 털이 하얀 발바리이다. 누리는 아빠가 총각 때부터 길렀다. 처음 아빠에게 왔을 때 누리는 꼭 아빠의 주먹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너무너무 앙증맞고 예뻤다고 한다. 털은 어린 새의 깃털처럼 보드랍고, 눈은 샛별처럼 반짝였다고 한다. 누리가 너무 예뻐 나는 발바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개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란 건 학교에 가서, 그것도 3학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어느 날 반 아이들이 모두 자기네 개를 자랑할 때 나도 마음껏 누리를 자랑했다. 그러자 앞자리 세경이가 돌아보며 말했다.
“발바리는 똥개야!”
그러곤 자기네 집 삽살개를 자랑했다.
“삽살개는 진짜 우리나라 개야. 게다가 얼마나 비싼 줄 알아?”
내가 세경이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을 때 공책에다 코를 박고 만화를 그리던 내 짝꿍 인시가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얘들아! 그럼 누구네 개가 제일 영리한지 우리가 직접 가려내자!”
기다렸다는 듯 반 아이들이 모두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누구네 집 개를 먼저 보러 갈 건지 순서를 정하느라 교실이 서울역 대합실처럼 웅성거렸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삽살개부터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이 세경이네 집으로 몰려갈 때 갈까 말까 망설이다 나도 같이 갔다. 세상에 우리 마루보다 좋은 개가 없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어디가 어떻게 못한지 세경이에게 똑 부러지게 말해주려면 나도 세경이네 삽살개를 봐야만 했다.
내가 맨 꽁무니에서 걸어갈 때 쿵쿵쿵 소리를 내며 뒤따라온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숨소리만 듣고도 그 아이가 짝꿍임을 알았다. 만화에 푹 빠져 살아서 그런지 엉뚱한 데가 많은 인시는 전교에서 가장 예쁘게 생겼다. 속눈썹도 안경에 닿을 만큼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감싸고 있는 목과 다리도 눈에 띄게 길다. 특히 호기심을 느낄 때 반짝이는 인시의 눈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예쁘다. 나중에 인시가 유명한 만화가가 되면 분명히 내 이야기도 만화에 많이 등장할 거다. 그래서 인시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세경이네 개들은 묶여 있지 않았다. 눈이 털에 푹 덮인 커다란 개 두 마리가 한가롭게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누가 집 앞을 지나가면 한꺼번에 짖어댔다. 컹컹 짖을 때마다 꼭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봐라, 우리 집엔 절대로 도둑놈이 못 들어오겠지?”
내 눈에는 녀석들이 용맹해 보이지도 영리해 보이지도 않았다. 녀석들이 정말로 영리하다면 대문 앞을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에게 짖지는 않았을 거다. 개는 집을 지키는 동물이지 골목을 지키는 동물이 아니니까 애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다음에 간 곳은 민기네 집이었다. 민기네 개 이름은 하니이다. 하니는 털이 흰구름처럼 새하얀 진돗개인데 전국 진돗개 품평회에 나가서 일 등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값도 무척 비싸다고 한다. 내가 하니의 값이 얼마쯤 되냐고 묻자 민기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중략)
* 본 작품의 전문은 <대산문화> 2006년 봄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