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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새로운? 그러나 관리되는 - 20대 소설가들의 상상력의 정체

  소비의 측면에서 ‘20대’를 본다. 영화, 핸드폰, 가요, 인터넷, 패스트푸드, 그리고 간신히 ‘소설’. 기성세대는 주택이나 토지, 자동차, 펀드, 사교육 등등이다. 시나 소설은 포함되지 않는다. 20대 소비항목에 소설이 간신히 끼지만, 한국 소설 문학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된다. 소설도 영화나 핸드폰이나 가요처럼 하드/소프트 웨어와 디자인이 20대 취향에 맞아야 한다. ‘상상력’ 말이다. 그런데 공급을 담당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성이다. 공급이란 선택과 발주와 유통이다. 이곳에서 ‘정체’가 드러난다. 20대는 ‘모든 소설’을 읽지 않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소설은 따로 있다. 따로 있다고 믿고, 따로 있다고 믿게 만든다.

  주목 받고 있는 20대 소설가는 많지 않다. 창작집을 낸 김애란을 빼면 대개 등단작 정도거나 몇 개의 단편(안보윤은 중장편으로 등단했다)이 전부다. 한유주, 김유진, 염승숙이 그들이다. 사람도 적고 작품도 적은데 눈길이 그쪽으로 쏠리니 대번에 유명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저쪽에 뭔 일이 났다 보다! 발길이 모두 그쪽으로 몰려 눈을 화등잔 만하게 뜨고 본다. 와, 정말 다르긴 다르다!

  낯설고 새롭다는 말이다. 하지만 낯선 것이 다 새로운 건 아니다. 새롭다고 다 낯선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낯설거나 새로운 게 좋다고 말할 수도 없다. 물론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저 낯설고 새로울 뿐이다. 사서 읽고 말고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옆에서 자꾸 좋다고 말하면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로 좋아질 수도 있다.

  20대의 소설을 읽다 보면(다 그런 것은 결코 아니지만, 최근 몇몇 30대 작가와 더불어 대체로) 거부감이 들고 이물감을 느낀다. 엽기와 노골과 SM, 피, 매춘, 강간 등의 폭력, 낙태, 시취(屍臭) 등등. 이미 익숙한 거부감과 이물감의 코드를 그들이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며,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낯섦은 낯익음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그런 상상력이 근래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근래에 와서 선택되고 논의되고 유통되고 있을 뿐이다.

  의미도 단절되고 비약돼서 모호해지기 일쑤다. 너무 앞서 나가서 독자를 리드하거나 선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진화의 법칙대로라면 그런 상상력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대 소설가들의 또 다른 특징은 그런 우려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겁이 없다는 말도 되고 비장하다는 말도 된다. 그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새로움이 발전 혹은 성장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낯섦을 배제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필수 요소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낡고 죽은 세포를 밀어내고 끝없이 새로운 세포들이 분화하는 것이 성장이니까. 낯섦과 새로움은 생명체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정도(程度)일 것이다.

  사회든 인체든 예술이든 성장하고 발전하느라 낡고 늙어 죽으며 끝없이 새로운 문명과 세포와 상상력들을 생산해 낸다. 지나치게 느리면 사회는 정체되어 부패하고 인체는 지진(遲進)되며 예술은 상투화된다. 지나치게 빠르면 폭동이 일어나고 이상 세포분열이 발생하며 스스로의 세계에 고립된다. 기존의 소통형식을 지키며 안으로부터 꾸준한 변화를 모색하고 그것이 궁극에는 형식의 변화까지도 초래할 것이라는 태도를 취하느냐, 아니면 기존의 소통형식 자체를 흔들어 상상력의 신기원을 세우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예술인 각 개인의 예술관에 달려 있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생산되고 있는 20대 소설가들의 소설에 대해서도 각각의 수요자가 판단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이럴 때 소설의 운명을 운운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최근 20대의 소설들을 이른바 자연발생적인 현상으로 볼 것이냐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의 소설을 극복으로서의 새로운 글쓰기로 본다고 한다면, 그들은 극복의 대상을 자신들의 글쓰기에서 경험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쓴 글에 대한 회의, 절실한 한계를 깨닫게 한 내외적 요인들을 자신의 글에서 경험하거나 발견했는가. 요컨대 자신들이 발화해 낸 소설들 중에 스스로 부정하고 극복할 근거들을 갖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이 특집이 바로 그런 균형의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춘문예용 소설이라는 말이 있다. 등단하려는 지망생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노골적으로 묻기도 한다. 과연 신춘문예용으로 써야 할까요? 신춘문예용 소설이란 없다고 대답한다. 다만 당선된 작품들은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므로 신춘문예용이라는 오해를 받는 것일 뿐이라고. 신춘문예용 소설이란 게 정말 있다면 과연 심사위원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신춘문예용 소설만 뽑겠느냐고.

  그런데도 지망생들은 신춘문예용 소설이 따로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응모한 소설은 신춘문예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떨어졌다고 줄기차게 생각한다. 신춘문예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통과해야만 작가로 인정받는 풍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소설이든 신춘문예에 당선하면 신춘문예용 소설이 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망생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신춘문예용 소설을 쓰느라 늦가을에 밤을 샌다. 원래 자신의 취향은 그게 아닌데 작가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춘문예용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어쨌든 적지 않은 작가 지망생들이 신춘문예라는 제도로 인해 그들의 창작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제도가 작품의 경향을 규정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담 등단 절차를 거쳐 작가가 된 사람은 그러한 사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등단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작단과 평단과 출판시장에서 살아남는 일이다. 미등단 작가는 아직 작가가 아니므로 작가가 되려는 꿈을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거나, 포기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결정일 수 있지만, 작가가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도태되거나 영원한 죽음으로 빠져 버릴 수도 있다. 더욱 비장해지지 않을 수 없으며 그만큼 나약해질 수도 있다. 어떤 작품이 먹힐까. 등단한 작가들의 절체절명의, 제일 화두다.

  제도를 통과하면 당연히 거기엔 제도권이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다. 제도권은 보다 복잡하고 다단하다. 제도권은 타자를 규정하고 타자에 의해 규정당하며 자발적으로 규정당하기도 하는 세계다. 자와 타가 존재하되 무시로 자리바꿈을 하며 그러다 보니 타가 곧 자가 된다. 눈길을 끌고 화제가 되어 평가에 자주 오르는 작품을 등단 신인은 주목할 수밖에 없다. 어떤 작품이 먹힐 것이냐에 대한 자답(自答)은 자연스레 자신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그리하여 하나의 흐름이 생기며, 그것을 새세대의 경향이라고 하고 마케팅 전략과 만날 때 트렌드화 한다. 생존전략 면에서 보자면 20대 소설가들의 소설은 전혀 낯설거나 새로울 게 없다.

  그런 작품들에 눈길을 주고 평가하는 평가주체들도 제도권 내부의 상호규정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쪽으로 눈길이 쏠릴 때 의연히 다른 쪽을 응시하는 평가는 흔치 않다. 외로운 작가를 외롭게 응시하다 보면 자신도 외로워진다. 좋든 나쁘든 매체를 통해 어떤 작품에 대해 열심히 얘기하다 보면 세인의 이목도 그쪽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나 평자나 다 유명해진다. 그리고 유명해지는 대신 작가는 작가대로 평자는 평자대로 강박을 얻는다. 뽑고 뽑히는 기준과 안목이 비슷해지는 일종의 악순환이 형성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현실을 디스토피아적으로 객관화함으로써 반성적 통찰을 일깨우려는 그들의 훌륭한 역발상까지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과는 다른 내용과 방식을 취하고 있는 많은 작가 지망생들과 신인작가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눈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이 본의 아니게 작품의 선택구조, 섣부른 범주화 논의 등에 갇혀 ‘관리되는 상상력’으로 변질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