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아버지
미신(未神)
김이듬
시인,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 『디어 슬로베니아』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등
#1. 공장에서 태어난 시
이 사진은 제가 등단하던 해에 찍은 아버지 사진입니다. “인간 못 된 것들이 시를 쓰는 거지”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셨으니까 인간이 덜된 분이실지 모릅니다. 어쩌면 인간과 금수, 인간과 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등단 직후에 인도와 네팔로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양과 돼지와 함께 버스를 탔고 안나푸르나 기슭 마을에서 정말로 큰 오이를 이고 맨발로 걸어가는 소녀들을 만났습니다. ‘큰 오이’를 메타포로 쓴 건 아닙니다만, 한 평론가는 “무의식에 잠재된 성기의 메타포”라고 쓰셨던데, 괜찮아요.
나의 아버지의 첫 직장은 금성사 총무과였습니다. 거기 그대로 계셨다면 현재 엘지그룹의 임원이 되셨을까요? 아버지는 직장에서 나와 가내공장을 차리셨는데, 그 일이 번창하여 아버지의 고향인 진주 대평에서 먼 친척들이 공장으로 와서 일했습니다. 어떤 이는 졸면서 야근하다가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기도 했고 어떤 이는 식모 일을 하다가 임신도 했지요.
공장에는 마당이 있었고 잔디밭이 있었고 개미가 있었고 우물이 있었고 무화과나무가 있었고 그네가 있었습니다. 그 공간 외엔 색색의 슬리퍼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로 가득했지요. 저는 그네를 타며 저만치 가건물에서 들려오는 기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고 해요. 스르르 몸이 미끄러져 잔디밭에 누워 있는 날이 많았다고 하는데, 선천적인 낙천성을 타고난 순한 아이였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시곤 했죠. 밥만 먹여놓으면 울지도 않는다고.
당시 아버지 친구 중엔 책 외판을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아저씨의 부실한 판매실적 덕분에 작은방 한가득 책이 넘쳤고 저는 엘리스처럼 토끼를 따라 굴로 뛰어들거나 소년들과 바다를 표류했지요. 밤마다 벽에서 검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던 건 부작용, 아버지의 공장 옆에는 시멘트 블록을 제조하는 공장이 있었는데 수선화와 빨간 장미로 뒤덮인 작은 담장 위로 파랑새가 날아가는 걸 볼 수도 있었습니다. 제 눈엔 보였죠. 책은 저의 도피처였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어른이 아니었네요. 부모님이 서로를 죽일 듯이 하고 헤어질 때는 무슨 판단력이 있었겠나 싶습니다. 서른 갓 넘긴 어머니와 새어머니의 청춘을 상상해봅니다. 상상력이 없다면 저는 죽었을 거예요. 부모님의 상황과 심정을 지금은 이해합니다.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몸부림치는 동안 이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건방진 말이려나. 고독과 슬픔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리라는 기다림으로 가슴이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