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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 소비에트 작가가 남긴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고전 -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이 소설은 출판될 수 없다.” 1938년 불가코프의 마지막 소설에 대한 소식을 듣고 찾아온 한 편집인이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고 나서 했던 말이다. 작가의 오랜 지인이기도 했던 그는 그 이유를 묻는 작가에게 아무 설명 없이 한 마디만을 반복했다. “안 된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작가 사후로도 오랫동안 소비에트에서 출판될 수 없었다. 하지만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라는 소설 속 주문과도 같은 말은 결국 실현되어, 작가 사후 30여년 만에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출판되었고, 오늘날 그 어떤 작가의 작품보다도 사랑받는 20세기 러시아 고전이 되었다.
1891년 키예프에서 태어난 미하일 불가코프가 작가가 된 것은 1917년 혁명과 뒤 이은 내전을 겪고 나서였다. 내전이 종료되던 해인 1921년 고향 키예프를 떠나 모스크바에 정착한 불가코프는 혁명 직후 소비에트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한 중·단편들을 발표하면서, 비록 제한된 그룹 내에서이긴 했지만,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1925년 내전을 다룬 첫 장편 소설 『백위군』을 발표하면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데뷔와 비교할만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호평과 함께 그는 반(反)혁명, 반(反)소비에트 작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그러한 비판은 불가코프가 극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1920년대 말 절정에 이르러, 결국 불가코프는 작가로서 모든 활동을 금지 당하게 된다. 완고한 소비에트 비평에 의해 반혁명, 반소비에트 작가로 낙인찍힌 불가코프는 이후 출판을 위한 교정쇄를 단 한 번도 손에 쥐어보지 못했고(불가코프는 페치카가 자신의 유일한 편집국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가 쓴 소설과 희곡들은 언제 세상의 빛을 보게 될지 모르는 채, 작가의 책상서랍 속에 놓여 있어야 했다.
1928년 ‘검은 마술사'라는 제목으로 쓰기 시작한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주인공 거장의 모습 속에는 이처럼 침묵의 강요 속에 살아야 했던 작가 불가코프와 그의 동시대 작가들의 운명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예수와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모두 꾸며낸 허구에 불과하며, 그 외에 다른 어떤 시각도 있을 수 없음을 주장하던 시대에 예수를 처형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죄의식과 고통을 다룬 소설을 쓴 거장(거장이라는 호칭은 그의 연인 마르가리타가 붙여준 것으로, 그에게 다른 이름은 없다. 거장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전 생애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버렸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옹호하고, 엉터리 빌라도주의를 퍼트리려고 한다는 이유로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난을 받게 되며, 비밀경찰국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이후 자기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만다. 불가코프는 이처럼 거장을 파멸로 몰아넣은 1930년대 소비에트 문학계를, 그리고 혁명과 함께 새로운 인간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그 시대 이데올로그들의 주장과 달리 여전히 속물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어리석고, 또 선하기도 한 모스크바 사람들과 그 세태를 날카로운 풍자로 묘사하고 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오랫동안 출판의 빛을 볼 수 없었던 이유는 소설에 담긴 풍자적 요소에만 있지 않다. 불가코프는 그의 소설 속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때로 현란하게 여겨질 만큼 화려한 문체를 구사한다. 거장을 구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나타난 악마 볼란드와 그의 수행원들은 그들의 검은 마술로 모스크바를 온통 혼란에 빠트리며, 칼리굴라에서부터 요한 슈트라우스, 비외탕, 토파나, 루돌프 2세, 그리고 소비에트 비밀경찰대장에 이르는 악명 높은 유명 인사들을 초대하여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사탄의 대무도회를 열기도 한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환상소설, 카니발소설 등으로 부를 수 있게 해주는 이러한 문체는 1930년대 초 소비에트에서 단일미학규범으로 확립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으로, 불가코프의 소설을 오랫동안 검열에 묶어두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해빙기로 불리는 1960년대의 일이다. 거장과 그의 소설을 구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여주인공 마르가리타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불가코프의 미망인 엘레나 세르게예브나의 수차례에 걸친 시도 끝에 1966년과 1967년 잡지 <모스크바>를 통해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소비에트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읽혀지게 된다. 하지만 당시 <모스크바>에 출간된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여전히 검열의 삭제와 수정을 거친 검열판이었고, 그 완전한 판본은 엘레나 세르게예브나의 계속된 노력 끝에 1969년 러시아가 아닌 독일에서 먼저 출간되었다(같은 시기 소비에트에서도 지하출판물을 통해 검열에 의해 삭제된 원고들이 돌기도 했다). 이후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면서 20세기 러시아 문학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어낸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전후로 러시아에서도 불가코프 붐을 일으키면서 불가코프를 그가 사랑했던 작가들, 푸슈킨,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하도록 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의 첫 출판 이후 현대 러시아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러시아 환상소설 작가 알렉산드르 미레르의 말처럼 ‘튼튼한 실로 엮어 짠 조각이불' 같은 소설이다. 그 조각들 속에 감추어진 비밀들은 때로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연결되어 있는 다른 책들, 소설의 제사로 인용되고 있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부터 불가코프가 빌라도 이야기를 위해 읽었던 역사서들, 성서, 소설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푸슈킨의 시와 고골리, 그리고 영원히 불멸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과 함께 읽을 때야 비로소 그 의미를 온전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무한히 펼쳐지는 거장들과 불멸의 책들과의 만남을 가능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소설을 읽고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것이다.
※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