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韓愈)는 중국 당나라 때 문인으로, 하남성(河南省) 하양(河陽) 사람이다. 창려(昌黎)가 한씨의 본적이어서 ‘창려’라고도 하고, 죽은 후에 ‘문(文)’이라는 시호를 받았다하여 ‘한문공(韓文公)’이라고도 하며, 이부(吏部)에서 벼슬을 했다하여 ‘한이부(韓吏部)’라고도 한다. 대종(代宗) 대력(大歷) 3년(768)에 태어났으니, 나보다 꼭 1천2백살이 많다.
한유에게는 제자 이한(李漢)이 편한 『창려문집(昌黎文集)』이라는 문장전집이 따로 있지만, 여기서 소개하는 『한유문집(韓愈文集)』은 명(明)나라 모곤(茅坤)이 편찬한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鈔)』 중 첫머리를 장식하는 『창려문초(昌黎文鈔)』로서, 그의 산문선집(散文選集)인 셈이다. 선집인데 비해 수록된 작품이 전체 수량의 대략 70% 가량이나 된다는 점은 꽤나 특이할 만하다.
송나라 진덕수(陳德秀)가 당나라의 한유와 유종원(柳宗元),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증공(曾鞏)·왕안석(王安石) 등 여덟 작가를 총칭하여 ‘당송팔대가’라 한 이래, 명나라의 당순지(唐順之)가 이들의 작품을 묶어 『문편(文編)』이라는 산문선집을 간행했고, 다시 모곤이 『당송팔대가문초』 1백60권을 편집하여 보급하였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당송팔대가’라는 용어에 점차 익숙해지게 되었고, 한유는 그들의 수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팔대가, 즉 여덟 명의 대가를 추려낼 때 잣대가 되었던 것은 시(詩)가 아니라 산문이었다. 『당송팔대가문초』 『창려문초』에 수록된 작품도 모두 산문이다. 중국의 고대문학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대부분 시(詩)나 사곡(詞曲), 사부(辭賦)나 소설 등을 떠올리지 산문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단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산문에는 소위 문학성이라는 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산문은 현대산문과 또 달라서 실용성이 매우 강조된 장르였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쓸 데’가 있어야만 지었던 것이 바로 산문이었다. 편지글도 그렇고, 상소문도 그렇고, 책에 붙이는 서문도 그렇고, 제문(祭文)이며 묘지명도 그렇다. 다 쓰일 때와 장소가 있었기에 지어졌다. 물론 진실성과 유려함을 갖춘 산문이라면, 굳이 실용의 용도로 지어졌다는 이유로 문학이 아니라 배척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러 모로 볼 때 열독하기에 적합한 ‘작품’의 반열에는 오르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이 책은 하필이면 1권부터 16권까지가 모두 산문이다. 더구나 책을 펴들면 처음에 나오는 것이 황제께 올린 상소문의 일종인 표문(表文)이다. 중국문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그다지 읽고 싶은 내용은 분명 아닐 것임에 틀림없다. 뒤 이어 등장하는 것도 편지글과 서문이다. 황제께 올린 글, 지인들과 주고받은 글, 벗을 떠나보내는 글…. 그런데 한 편 한 편 번역하다보니, 어느덧 남의 인생 속에 들어가 있었다. 일상이 묻어나는 글이니만큼, 문학적 구상을 통해 탄생된 문학작품이 아니라, 그대로의 일상이요 그대로의 마음이다 보니, 별 공 안들이고 남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작품을 통해 드러난 ‘내’가 바로 ‘작가’ 자신이라는 점이 중국 고대산문이 지닌 매력 아닐까 싶다. 소설처럼 주인공을 설정하지 않아도 되고, 시처럼 시적 자아가 필요하지도 않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면 그뿐이다.
한유도 그렇다. 한유는 어떠한 인생을 살았고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그의 작품이 많은 답을 해준다. 안사(安史)의 난(亂) 이후의 난세를 살았던 한유는 유가(儒家)의 전통을 세워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백성의 교화에 힘써 치세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려문(騈驪文)의 형식적 구속에 얽매어 내용을 등한시하던 문단의 현실을 비판했다. 문학이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읽어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하고, 동시에 경세치민(經世治民)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실어야 한다고 했다. 난삽하기 그지없고 내용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껍질만 화려한 문장이 난무하는 현실에 반기를 들고 전개된 것이 바로 고문(古文) 운동이다. 고문 운동은 진한(秦漢) 이전의 고문으로 돌아가, 유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간결함과 뜻의 전달을 지향하는 새로운 산문 운동이었다. 물론 당시에 ‘운동’이라는 명칭이 붙었던 것은 아니다. 후세에 이르러 이를 하나의 문예사조로 인식하고 ‘운동’이라 불렀을 뿐이다. 한유는 철저한 유교주의자로서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고, 현실과 긴밀히 관련된 작품을 많이 짓는 등 옛 정신을 회복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부처의 사리를 궁궐로 맞아들이려는 황제에게, 부처를 안 믿고도 오래 살았던 선왕들과 불교를 믿었어도 결국 일찍 죽었던 후세의 황제들을 비교하는 내용의 「사리 맞이하는 일에 대해 논한 표문(論佛骨表)」을 지어 올렸다가 멀리 남녘땅으로 유배되기도 하였고, 「도의 근원을 밝힘(原道)」이라는 글을 지어, 절을 불사르고 중들을 환속시킬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의 꼬장꼬장한 성품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상적인 면에서는 이렇듯 철저함을 보이는 한유지만, 그의 문학세계는 매우 다양하여 문인 한유로서의 면목을 여기저기서 보여준다.
우선 그가 주창한 고문 운동은 복고주의가 아니었다. 복고의 대상은 옛날의 정신이지 옛 글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한유의 문장에는 인습(因襲)을 거부한 참신한 작품이 많이 눈에 띈다. 특히 「모영전(毛穎傳)」 같은 작품은 ‘뾰족한 털(毛穎)’이라는 이름에도 힌트가 들어있듯이 토끼털로 만든 붓을 의인화하여 붓의 일생을 기록한 문장이다. 지금이야 의인화 수법이 별 것 아니라지만, 곧이곧대로 높으신 분의 일대기만을 기록하던 전기 장르에 이러한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은 당시로서는 파격(破格)이었다. 관리 전형에서 몇 번이나 떨어져 한 가닥 줄이라도 잡고 싶은 나머지, 재상에게 편지를 써 자신을 천거해달라고 차마 나오지 않는 부탁을 할 때도, 그는 우언(寓言)의 수법을 통해 곡진하면서도 당당하게 표현했다. 죽은 이를 위해 접대용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묘지명을 지어줄 때도 그는 재미있는 일화를 집어넣기도 하고, 심지어는 고인에 대한 풍자도 서슴지 않았다. 문학가로서의 한유는 이렇듯 파격과 창신(創新)에 주저함이 없었던 과감한 인물이었다.
유가(儒家)로서의 한유, 그리고 문학가로서의 한유는 신념에 가득 차고 실험 정신이 풍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한유의 사상과 문학적 역량은 읽을 수 있어도 한유라는 사람의 인생을 다 알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인생의 아픔과 좌절을 모두 산문을 통해 보여주었다. 한유는 세 살 때 고아가 되어 형수가 길렀다. 함께 자라난 사촌동생 십이랑(十二郞)이 죽었을 때, 자기를 길러준 형수가 죽었을 때, 절친한 벗 유종원이 죽었을 때, 어리디 어린 딸을 땅에 묻고서, 한유는 가슴속 회한을 조금의 문식도 가하지 않고 절절히 읊어냈다.
유가로서의 한유, 정치가로서의 한유, 그리고 당대의 사도(師道)를 자처했던 한유, 그러나 누구보다도 많은 좌절과 아픔을 겪었던 한유의 인생이 그의 산문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이 두루 갖추어진 그만의 다양한 작품세계에는 소품(小品)으로서 전달할 수 없는 기백이 서려있다.
지금처럼 가볍고 톡톡 튀고 부담 없는 소품을 추구하는 세상에, 자아의 진실과 시대의 고민과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유의 산문이 어떤 맥락에서 읽힐지, 아니 과연 읽히기나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한유문집』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