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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풍경, 무슨 일이 있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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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근대문학에 빠져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일 때문에 을지로와 종로 그리고 광화문 사이를 오가며 하루에 두어 차례 청계천을 지나다녀야 했다. 처음에는 버스·전철비를 아껴보겠다는 심사로 상가가 밀집해 있는 청계천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조선/일본 거주지역'을 상상하며 발걸음이 더뎌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일제 식민기에는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생활터전이 나뉘어 있었다. 청계천 남쪽에는 주로 일본인이 거주해 있었고, 북쪽에는 조선인이 모여 살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남촌·북촌이라 부르며 조선 내 일본/조선인의 차이를 절감하며 살았다. 모든 것이 우등과 열등의 논리로 기획되고, 근대화라는 명분 하에 ‘모던'적인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당대의 신문이나 문학작품을 읽어가면서 나는 ‘모던'의 유행이 ‘일본/조선'의 차별을 넘어 ‘우등/열등'으로 치환되는 과정에 가슴이 저렸다. 그리고 이 저림은 늘상 왔다갔다하는 청계천 주변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지금 ‘천변풍경'을 바라본다. 한여름 따가운 햇살을 피해 다리 밑에 앉아있는 사람들, 몇몇은 더위를 참지 못해 개천물에 발을 담그고 물텀벙이다. 또 어떤 이는 스타벅스 커피잔과 샌드위치를 양손에 들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무리들과 외떨어진 다리 밑, 어떤 사내는 멍하니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고, 그 주위로 유치원생들의 줄맞추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시야로 박태원의 ‘천변풍경'에 등장하는 아낙네들의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북촌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던 그들, 해방 후 어떻게 삶을 꾸려 나갔을까. 여전히 삼삼오오 둘러앉아 소문과 담론을 생성, 전파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어떻게 피비린내 나는 한국전쟁에서 꿋꿋하게 남은 삶을 재건했을까. 60~70년대의 산업화에 밀려 청계천이 콘크리트 밑에 매장되었을 때, 그들은 또 어떻게 삶의 터전을 만들거나 찾았을까.
지금의 청계천 풍경은 “자연환경을 복원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며, 역사문화를 복원한다는 취지”로 몰라보게 달라졌다. 불과 2, 3년 전만 하더라도 청계천 주변은 살기 위해 바빠야만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동차 소리 요란했고, 불법주차에 좁은 도로 사이사이를 피해 물건을 팔러 다니던 잡상인들…. 그랬던 이 곳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공 다리가 놓이고 개천물을 따라 비릿한 꽃나무들이 앞 다투어 심어졌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고 멀리서 한 무리의 관광차가 올라오고 내려간다.
청계천의 지금 모습은 과거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온 이들의 눈물과 절망, 분노와 체념에 의해 복원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촌이었던 그 시절이나 “삶의 질을 높이”는 오늘이나 힘없는 사람들은 기획된 논리에 의해 더 외진 곳으로 내몰린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를 백번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역사문화를 복원”해내는 방법과 모습이 이 정도 밖에 될 수 없는 것일까. 북촌과 남촌 사이를 가르며 서민들의 애환을 실어 보냈을 청계천, 피난민들의 게딱지 같은 판잣집이 빼곡하게 붙어있던 청계천, 전태일이 온몸으로 불 밝혔던 청계천. 그 ‘천변풍경'을 국적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둔갑시켜놓고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복원했다고 할 수 있을까. 청계천의 어제와 오늘은 일제식민기의 지식인들 눈에 밟혔을 ‘천변'의 풍경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역사의 복원'은 겉보기에 좋았더라 식의 복원이 아니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흘러가는 청계천. 청계천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사적인 장소임에 분명하다. 청계천이 우리네 “삶의 질을 높이”려면 ‘천변풍경'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청계천을 따라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청계천변을 따라 걸으며 달라진 남촌과 북촌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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