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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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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믿는가, 하면 믿지 않는 편이다. 믿기는커녕 귀신이야기만 나오면 푸훗, 하고 웃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어린 시절에는 ‘전설의 고향'을 보면서 가슴 졸였고, 공포영화를 볼 때는 이불 푹 뒤집어쓰고 눈만 빼곡 내민 채 보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이가 들수록 무덤덤해진다. 텔레비전에서 귀신이 기어 나와도 시큰둥, 학교에서 목매단 여학생이 귀신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아도 그러려니, ‘그럼 네 등에 붙어 있는 건 누구?'냐는 겁나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저 두리번, 한다. 아무래도 문제가 좀 있긴 있는 것 같다. 이게 생활에서 겁이 없어진다는 얘기와는 또 다르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일상적인 겁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정말이지, 사는 게 무섭다. 시간이 무섭고 사람이 무섭다.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면 그런 겁이 사라진다고들 하는데 그거야 겪어봐야 아는 것이고 일단은 무서울 뿐이다. 사는 게 무섭고 사람이 무서운데 귀신 따위가 무서울 리 없다.
귀신이 무섭지 않으니 모든 공포영화가 내게는 코미디다. 처녀귀신이 나타나서 ‘흐하하하하, 무섭지?' 라고 해도 나는 귀신의 너무나 깨끗한 소복이 마음에 걸리고 (아무래도 저건 드라이클리닝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반듯함이란 말이지!), 도끼로 사람의 머리를 댕강 잘라버리는 장면에서도 절단면이 얼마나 매끄러운지를 살펴보는 나로서는 (매끄럽지 않으면 어쩐지 불쾌하다) 사람들이 보는 공포영화의 쾌감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아예 웃자고 만든 공포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블 데드' 시리즈는 나를 제대로 웃겼다. 최근에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라는 영화가 나를 웃음의 무아지경으로 몰고 갔다. 두 편 모두 좀비 영화라는 특징이 있다. 그러니까 ‘한(恨)'이라든가 ‘누명쓰고 억울한 여자'같은 설정이 없는,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살아있는 시체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오히려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를 만났다. 오래 전부터 공포소설의 대가라느니, 수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 공포계의 거물이라느니 하는 수식어를 들어왔지만 그저 피싯, 웃고 말았었다. ‘무서워봤자, 살 떨려봤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티븐 킹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내가 처음 본 그의 작품은 「사다리의 마지막 단」이라는 아주 짧은 단편이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오빠와 여동생은 사다리를 타고 헛간의 들보에 올라가 건초더미로 뛰어내리는 놀이를 즐겼다. 뛰어내리고 올라가고, 뛰어내리고 다시 올라가고…. 그러던 어느 날 사다리가 부서졌고, 여동생이 들보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됐다. 그때부터 공포가 시작된다. 오빠는 여동생의 바로 아래쪽에다 건초더미를 가져다 나른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여동생이 떨어지기 전에 더 많은 건초더미를 쌓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여동생은 들보를 붙든 채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오빠는 계속 건초더미를 나른다. 글을 읽는 순간 나는 공포를 느꼈다. 나를 놀라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귀신이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너무 무서워 다음 문장을 읽어나갈 수 없었다. 신비로운 경험이라고 할 수도 있다. 책 속의 묘사는 단순하다. 오빠는 계속 건초더미를 나른다고만 썼다. 속도에 대한 언급도, 한번에 얼마나 많은 건초더미를 움켜쥐었는지에 대한 묘사도, 오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는 들보에 매달린 여동생의 두려운 마음과 오빠의 동작과 생각이 ‘동영상'으로 보였다.
가장 섬뜩한 공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방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깜깜한 방안에서 성냥을 켜는 순간, 아주 적은 빛만 보일 때 공포가 생겨나는 것이다. 스티븐 킹에게 그걸 배웠다. 「사다리의 마지막 단」을 읽고 난 후 스티븐 킹의 다른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 무서웠다. 책을 읽다 보면 누군가 뒤에 있는 것 같고, 나는 내가 아닌 것 같고, 현실이 가상 같았다. 한 권의 책 속에는 수만 편의 영화보다 더 많은 스틸 컷이, 동영상이, 목소리가 숨어 있다. 그게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다. 나는 지금 막 좀비가 등장하는, 무서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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