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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에 담긴 생의 그늘

28년간 아시아인들의 삶과 문화를 담아 온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스티브 메크리의 사진전이 지난해 대구 사진 비엔날레에서 있었다.
꼭 한번 봐야겠다는 나의 집념에 순응하기 위해 나는 빠른 기차를 탔었다. 나는 우연히 잡지에서 그의 사진을 보고 매료되었으며 특히 아시아인들의 삶과 문화를 다루는 그의 색다른 취미가 고맙기도 하고 사랑스러워 그를 흠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좋아한 것은 그의 사진에 나타나는 아시안인들의 얼굴이며 눈빛이었던 것이다.
그가 찍은 사람들의 눈빛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충격적이며 인간의 가파른 마음을 보는 것 같아 사진 앞에서 결코 발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1985년 미국의 다큐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초록색 눈망울을 가진 아프가니스탄 소녀가 표지인물로 실려 있었다. 메크리의 작품이었다. 뭐랄까, 열정과 분노와 의구심으로 가득 찬 왠지 가슴이 서늘해지는 그 눈빛은 겁에 질려있는가 하면 세상과 인간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세상을 잔뜩 원망하고 있기도 하며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두고 보자고 앙심이라도 품는 것 같은, 너무도 강열한 이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리며 아프간 난민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도 되었던 유명한 작품인 것이다
이 소녀의 표정과 눈빛은 우리의 현실을 놀라면서 다시 바라보게 하고 옷매무새라도 다듬어야하고 나만이라는 개인적 욕망을 손안에서 스르르 놓게 만들기도 하는 미묘한 힘을 발휘하는 작품이었다. 이 사진 표지로 스티브 메커리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떠올랐으며 대구비엔날레에 초대된 계기도 되었을 것이다. 그의 사진은 현실감 넘치는 색감과 구성으로 보도사진을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 올린다는 탁월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를 사진가의 길로 이끈 것은 여행이었다. 역마살을 타고 났다는 그는 19세에 1년간이나 유럽에서 살면서 호기심을 충족시켰고 이후 아프리카와 남미 등을 여행하면서 여행의 매력에 빠졌다고 말하고 있다. 여행을 계속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정착한 것이 사진이었다.
그는 펜실바니아 주립대학에서 대학 신문기자를 하면서 처음 카메라를 잡았으며 졸업 후 지방 신문기자를 하면서 더 카메라를 익혔던 그는 문득 어느 날 기자를 그만두고 인도로 떠났다. 인도와 파키스탄, 티베트, 캄보디아 등 아시아를 탐구하며 그의 사진은 날로 생동감을 발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진정성을 전하는 그의 사진은 대상과 교감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의 족적이 섬뜩한 위험과 맞싸우는 순간이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그의 사진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면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그의 사진과 그의 예술적 정신에 감복하고 그 사진을 보려고 빠른 기차를 탔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에 나왔던 그 소녀의 사진이 2001년 20세기 베스트 표지특집호에 실린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그 소녀의 안부를 궁금해 했다. 무려 20년이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죽었을까, 늙어버렸을까,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을까.
메커리는 방송국, 연방수사국(FBI)까지 동원하여 결국 소녀를 찾아내었다. 감동이 따로 없다.
대구 사진전에는 20년 후의 그 소녀의 사진도 갈려 있었다. 나는 그 사진하나를 보기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던 것이다. 붉은 갈색의 옷으로 머리와 목까지 가린 옷을 입은 소녀 옆에 걸려있는 20년 후의 여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가슴이 뭉클하게 내려 앉았다.
회색 옷 빛의 이 나이 든 소녀는 초록색 눈빛에서 보랏빛 눈으로 바뀌었고 그의 눈빛은 절망으로 가득해 절망 외에는 읽을게 없는 공허한 공터를 보게 했던 것이다. 그 눈빛으로 충분히 난민으로서의 20년 세월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찍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거부하다가 옛날 자신의 사진을 보고난 후에 허락했다는 뒷소문이 있었다.
나는 그녀 앞에서 울고 싶었다. 왠지는 나도 모른다. 보랏빛 눈이 말하는 인간세상의 비정을 그는 절망이라는 낱말 하나로 대신하는 것 같아, 아니 그 절망 속에는 내 나라와 나 자신의 잘못도 있는 것 같아 나는 아무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