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시간의 창문 |
| |
1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고들 말한다. 자동차 속도에 비유하여 40대에는 1시간에 40킬로미터로 달려가던 시간의 속도가 50대에는 50킬로미터, 60대에는 60킬로미터, 70대에는 70킬로미터로 점차 가속도가 붙는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시계를 들여다 보라. 시간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균등한 속도로 지나가지 늙어가는 사람들에게만 빨리 지나갈 리가 없다.
낙하하는 물체에는 항상 가속도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안 사람은 갈릴레이라고 한다. 어떤 물체가 1초에 1미터 떨어진다고 하면, 2초 후에는 4미터, 3초 후에는 9미터 낙하하는 식으로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이다. 거리가 경과한 시간의 제곱으로 비례한다는 것은 아주 정확한 공식은 아니다. 갈릴레이는 후에 이것을 수정하여 d＝½at²이라는 엄밀한 공식을 제시했으니까. 여기서 d는 거리, a는 가속도, t는 시간이다. 어쨌든 이 공식은 3초 후에 물체가 어디까지 낙하했는가를 기록하는 것이지 1초마다 사이에 얼마나 낙하했는가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끝이 80년이라 치고 그것을 향해 가는 속도를 낙하하는 물체에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그 허공중에서 죽음이라는 지표면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한다. 그 이래 50년이 지나고, 60년이 지나고, 70년이 지난다. 이제 바로 지표면까지는 10년밖에 남지 않았다. 살날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죽음을 향해 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이쯤 되면 모두에서 말한 우스개 소리가 그냥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2
신문에서 보니,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최종판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도들』이 출간 당일 영국 WH스미스서점에서 초당 15권이 나갔으며 미국에서도 하루 만에 83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단 한번도 내 소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초당 15권이, 또는 하루 만에 830만부가 판매되었다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가령, 어느 작가가 1년에 3650권의 소설을 팔았다고 치자. 하긴, 인기작가가 아니고서는 1년에 그만큼 나가는 작가도 드물다지만. 그 작가는 하루에 10권을 판매한 셈이다. 830만부 대 10부,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해리 포터 최종판이 앞으로 1년 내내 그런 속도로 팔린다는 보장은 없다. 모르긴 몰라도 해가 갈수록 속도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치의 문제를 놓고 따진다면 어떻게 될까. 몇 년 사이에 초고속으로 팔려 나간 소설이 가치가 있을까, 아니면, 150년이 넘는 오늘날까지 느린 속도지만 전 세계에 꾸준히 팔려 왔으리라 짐작되는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1838)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1862)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1866)과 같은 소설들이 더 가치가 있을까.
글쎄, 금전이 우선인 시대에 살아생전 돈벼락을 맞는 것이 최선이지 나 죽어 꾸준히 읽힌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하면, 할말이 없다.
3
나이가 들면 빠른 템포의 노래 소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게 된다. 느린 템포의 노래 소리에만 친숙해진다. 감각이 무디어졌다는 증거다.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는 용어 가운데 ‘시간의 창문’이라는 말이 있다. 노래의 말들과 멜로디와 리듬이 처음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연달아 창문 앞을 지나간다고 연상하여 붙여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고백록』에서 시간의 흐름을 노래 불려지는 성가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미래는 성가를 부르겠다고 벼르는 기대이고, 부르고 있는 현재는 주의이며, 이미 불러버린 과거는 기억이라고 했다. 시간은 그렇게 기대로부터 다가와 기억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 들어 감각이 둔화되면, 창문 앞을 지나가는 노래의 템포가 빨라, 다시 말해, 연결되는 말과 말, 멜로디와 멜로디, 리듬과 리듬 사이가 거의 동시적일 만큼 너무나 촘촘해져서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지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기대와 주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기억은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어디, 노래에 한한 것이겠는가. 노인은 남은 생을 무디어진 감각이나마 총동원하여 촉각을 곤두세워 주의를 기울여 살아가려고 하지만 그에게는 새롭게 기억으로 남을 것이 없다. 역시 비극이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