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선옥   © 운영자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간다. 나는 언제 한번만이라도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혹은 제대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의 진수 내지는 삶의 비경을 맛본 적이 있었던 것일까.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서 그런 삶을 살아 볼 수나 있을 것인가. 나는 자꾸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연습’같이만 여겨진다. 우리 인생이 단 한번이 아닌 두 번을 살 수 있으면 더 좋을까, 더 나쁠까. 두 번 살 수 있으니 마음 푹 놓고 함부로 사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인가, 한번 연습을 했으니 두 번째는 정말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나같은 경우, 자꾸만 지금 사는 것이 연습같이만 여겨지는데, 인생이 한번뿐인 것이 억울한 심정이 들어간다. 만약에 내게 두 번째의 인생이 주어진다면 그 두 번째에 나는 정말 잘할 수도 있을 것인데. 나는 뭐든지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사람이어서, 한번은 인생에 적응하는 데 시간 다 보냈으니 두 번째 인생에서는 말 그대로 ‘깃발 날리며’ 살 수 있을 것인데…. 그러나 인생은 ‘얄짤없게도’ 딱 한번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딱 한번뿐인 인생을 참으로 허망스럽게 보내 버린 것만 같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은 지난 세월 허망스럽게 보내버린 인생을 애통해 하면서, 속상해 하면서 보낼 것만 같다. 나이는 먹어갈 것이고 나이 먹어 사는 것은 그다지 재미도 없을 것만 같고. 40대 중반,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에서 딱 중간지점에 와놓고 ‘벌써’ 인생 다 산 사람처럼 말하고 있는가.
10대, 20대, 30대까지는 정말로 ‘한번뿐인 인생’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연습같이 사는 세월도 그리 아까울 것이 없었다. 아직 어리니까, 아직 젊으니까, 하는 자기위안 내지는 자기변명 같은 심정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마흔 고개를 딱 넘고 보니, 아차, 이게 아니구나, 싶어지던 것이었다. 이젠 연습이 아니라, 진짜 실전으로서의 인생을 살아야 하겠구나…. 그런데도 또 사람 심리는 오묘해서 이왕 연습으로 사는 인생 끝까지 연습만 하다 갈까보다, 싶어지기도 한다. 실전으로 들어간다는 게 겁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소위 작가의 삶이란 게 그런 지도 모른다. 연습 같은 실전의 삶이 작가의 삶인지도.
내가 삶이란 것에 가장 큰 의욕을 가졌던 시기는 10대 때였다. 그 어린나이가 뭘 안다고 삶의 의욕 운운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것도 꼬마시절이라 할 수 있는 초등학교 때. 나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가난한 농촌의 아이였다. 지금 60고개를 넘은 작가들은 70년대 청년들이었다. 그 세대들이 도회의 거리에서 고뇌하고 있을 때 전라도 후미진 농촌의 아이였던 나는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까맣게 모른 채 나도 부지런히 커서 이웃집 언니 오빠들처럼 구로공단이나 마산 한일합섬이나 부산 신발공장 같은 데 들어가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다. 돈을 벌어서 논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지금은 돈 생기면 집 사고 차 사는 시대지만 그때는 돈 생기면 논 사고 소 사는 시대였으므로. 우등상인가 개근상 상품으로 암수 토끼 두 마리를 받아와 열심히 키워서 새끼돼지를 사고 새끼돼지를 열심히 키워서 송아지를 사고 송아지를 키워서 논을 사고…. 하여간 논이 없는 우리 집 상황에서 내 모든 행복의 귀결점은 논을 사는 것이었다. 그때 서울로 부산으로 돈 벌러 간 아들 딸들이 시골집에 돈을 부쳐주며 당부한 것도 다 논 사고 소 사라는 것이었다. 공장 다니는 자식이 번 돈으로 논 사고 소 사놓으면 학교 다니는 자식이 그 논과 소를 팔아먹는다. 하여간 내 10대 때의 꿈은 기름진 논을 한 열 마지기만 사고 암소 한 마리 키우는 것이었는데, 그 꿈은 종시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지금도 이따금 논 사고 소 사는 꿈을 꾸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꿈을 깨고 나서 논을 사고 소를 사서 뭘 어떻게 할 것인가, 논 사고 소 사는 삶을 살았으면 내가 진정 행복했을 것인가, 싶은 생전에 안하던 낯선 의문이 들기 시작하던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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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로 살면서부터 확실히 비관론자가 된 듯 싶으다. 그전에는 안 그랬다. 두 애기를 데리고 어린시절에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구로공단에 발을 들여놓은 막막한 시절에도 나는 아직은 삶의 의욕이 꺾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나는 내가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은 확실히 작가가 되고난 연후에 생긴 증상이다. 내가 자꾸 내 삶이 연습같이 여겨지는 것은 내가 작가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전에는 내가 어리거나 젊어서가 아니라 정말 실전으로서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안들어갔을 수도 있다. 작가가 된 이후에 나는 예전에 내가 실전으로서 산 삶들을 꼬치 빼먹듯 하나씩 빼먹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갔다. 그러면서 문득 작가로서 살아갈 앞으로의 삶이 비탄스러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격도 변한 것 같다. 아무리 삶이 곤궁해도 아니 곤궁하면 할수록 살아야겠다는 은밀한 의욕을 불태우며 산다는 것의 스릴감도 맛보곤 했는데 지금은 조그만 일에도 인상을 팍팍 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도박사가 도박 이외에는 만사가 재미없다고 여기는 것처럼 작가도 글 쓰는 이외에는 어느새 만사가 재미가 없어져 버린 아주 불행한 삶의 행로에 들어선 사람이 아닌가 하는. 그것은 달리 말해 만사가 재미없어서 글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사가 재미없어서 글을 쓰고 또 쓰고 그러다 보니 글 쓰는 이외에는 아무 재미가 없어서 또 쓰고 쓰고 그러면서 작가의 삶은 바스라져 가는 지도.
그래서 작가가 자기 삶을 똑바로 추스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주눅이 잔뜩 든 가난한 농촌 아이였던 내가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행위는 내 정신의 일단을 그렇게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인데 그것이 보통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며 나는 모르지만 나를 아는 이들이 생긴다는 것은 보통 번잡스러운 일이 아니다. 작가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생활인의 한사람으로서 대중과의 행복한 결합에의 욕구에 미혹되는 것도 혼자서 감시해야 한다. 장사하는 사람은 돈만 벌면 되지만 작가는 말 그대로 작가이기 때문에 누구도 신경써주지 못하는, 살면서 안할 수 없는 여러 번잡스러운 생각들을 혼자서 간추려 내야하고 간추려 낸 것들을 지켜내며 살아야 하고…. 작가의 삶은 피곤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나는 뭘 어떻게 하겠다고 겁도 없이 작가가 되고 말았단 말인가.
내 나이 마흔 다섯. 글을 써서 밥을 버는 생활을 한 지 어언 16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글을 써서 밥을 버는 행위에만 집중, 아니 허덕였던 것이 내 솔직한 16여년의 작가생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밥벌이로써의 글쓰기에 허덕이며 살 것인가. 작가로서의 삶을 그렇게 밥벌이용 글쓰기 하는 데 ‘탕진’하다 인생을 마감해야 한다면, 서글픈 인생이 될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 바로 그 애쓴 뒤끝으로 생을 마감하는 모든 인생들이 서글프듯이. 나는 그래서 밥을 벌기 위해 글을 쓴다는 작가들의 말이 그렇게 비탄스러울 수가 없다.
나는 무엇 때문에 쓰는가. 왜 쓰는가. 작가가 직업이 된 지금에 와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는 것도 그리 흉 될 것은 없을 것이다. 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그 언사가 나를 말할 수 없는 비탄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나는 왜 지금 작가로 살고 있는가. 어쩌면 나는 내가 작가로 살고 있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작가로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번 뿐인 인생이 억울해서 자꾸만 다른 인생을 글로써 복제해내고 그러면서 그런 내 행위에 대해 허망함을 느끼고 허망함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인생을 찾아 나서고…. 그러다 보니 내 인생이 작가로 규정되고. 비탄을 비탄으로써 물리치고자 나는 오늘도 몸부림친다. 참으로 서글픈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저 비관하지 않는다면 어찌 작가일까. 단지 내 생각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