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   © 운영자

김수영 선생을 만났다. 그의 39주기였던 지난 6월 16일, 토요일이었다. 긴 초여름 해가 조금씩 산 그리매를 짙푸르게 만들어 갈 무렵 도봉산 아래 그의 묘소를 찾았다. 그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내고도 그의 묘소를 찾지 못했었는데 그날은 그냥 심상하게 집을 나와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었던 것처럼 내 발길이 그에게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묘석 위에 그 술 덜 깬 퀭한 눈을 하고, 목 늘어난 흰 러닝셔츠에 국방색 작업복 바람으로 맨발에 흰 고무신을 신고 앉아 있었다.

⊙ 김명인 _ 선생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살아계셨군요!

⊙ 김수영 _ 응, 아직 죽지 않고 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지.

⊙ 김명인 _ 저, 저는….

⊙ 김수영 _ 자네가 누군지 알고 있어. 거기 가져온 술이나 내 놓게.

나는 가져간 소주병을 따서 종이컵에 한잔 따라 그에게 건넸다. 그는 전작이 있었는지 눈 주위가 붉어 있었다. 낮에 가족도 다녀갔을 테고 어쩌면 일찍이 김수영 병에 걸린 친구들이 몇몇 더 다녀갔는지도 몰랐다. 여든 여덟의 노인이었지만 머리숱은 여전히 짙었고 아직 반백이었다. 그는 종이컵에 담긴 소주를 단숨에 비우고 입맛을 다셨다. 나도 덩달아 소주 한 잔을 비웠다.

⊙ 김수영 _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어서 놀랐나? 언젠가 백낙청이가 내 시선집을 묶고 나서 해설에다가 ‘살아 있는 김수영’이라고 쓴 적이 있었지. 그때 나는 그 친구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정말 알고 썼나 해서 조금 당황했었어. 그러더니 자네도 임홍배란 친구하고 같이 낸 책에다 같은 제목을 붙였더군. 그래서 이건 젊은 친구들의 습관적인 레토릭이군, 하고 웃고 말았지. 사실은 자네가 찾아오는 걸 알고 기다렸네. 내가 자네를 찾아간 적은 없지만 자네가 온다면 한번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네.

⊙ 김명인 _ 저 따위를 기다리셨다니 많이 외로우셨던 모양이군요. 벌써 4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김수영 _ 늘 살아 있었던 것은 아니야. 때로는 몇 달이고 무덤 속에 드러누워 긴 잠을 잘 때도 있었고 때로는 몇 달 동안 백일몽만 꾸고 지냈던 적도 있었지. 전태일이가 죽었을 때, 유신체제가 시작되었을 때, 박정희가 죽었을 때, 광주사람들이 죽어나갔을 때, 박종철, 이한열이가 죽고 6월 항쟁의 함성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을 때, 문익환 목사, 임수경이가 이북에 갔을 때,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고 소련이 망했을 때,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그럴 때는 몇 달씩 잠을 못 이루고 직접 세상으로 나가서 사람들 곁에 있기도 했네. 그런데 요즘엔 깨어있을 때보다는 잠들어 있을 때가 더 많아.

⊙ 김명인 _ 그러시겠지요,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이 한반도 남쪽의 삶이란 게 어디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죽음을 허락할 리 있겠습니까. 하물며 선생님처럼 창졸간에 고혼이 되신 분이야 오죽하실까요.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절 기다리셨다니 잠시나마 말동무로나 삼아주시지요. 저도 그간 선생님께 궁금했던 것들 생각나는 대로 여쭙는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먼저, 가장 궁금했던 것 먼저 여쭙겠습니다. 선생님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셨지요? 저도 아니시라고 판단했지만 혹시나 해서요. 워낙 서슬퍼런 냉전시대의 한복판을 사시다 가셨으니까 어쩌면 그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김수영 _ 얼치기 마르크스보이라더니 역시 그게 제일 궁금했던 모양이군.

그는 빙긋이 웃었다.

⊙ 김수영 _ 난,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야. 이런저런 책은 몰래 기웃거려 보았지만 평생을 풍문으로만 들었지. 병약했던 소년시절을 지내고 조금 세상을 알만한 나이가 되니까 일제의 군국주의전쟁이 시작되고 조선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 공식적인 활동을 못 하게 되었어. 일본으로 건너가 봐도 전향이 대세였던 전쟁기에 변변히 그 ‘주의’를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어. 무엇보다 기질적으로 나는 늘 ‘혼자’여서 마르크스주의가 펼쳐 보이는 어떤 집단적, 전체적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아.

⊙ 김명인 _ 그럼 해방 후 서울에서 임화와 가까이 지냈다거나, 의용군에 지원―그렇죠 지원이지요―한 것, 그리고 「허튼소리」 같은 데서 보이는 북한에 대한 노골적인 동경이나 쿠바 혁명에 대한 열렬한 지지 같은 것도 공연히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겠군요.

⊙ 김수영 _ 임화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했어. 그가 얼마나 멋있는 인간이었는지 자네도 잘 알잖나. 만일 그 사람과 좀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나도 그를 따라 진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겠지. 의용군에 지원한 건 마르크스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썩어빠진 해방 직후 남한사회에 대한 반발과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나 해 두지. 그런데 그런 심정적 끌림이 감당해 내기에는 전쟁기 사회주의 북조선의 불안정한 모습과 의용군대의 피폐한 일상적 현실이 내게 주는 실망과 공포의 실감이 너무 컸다고나 할까. 아, 4.19가 나고 나서 내가 일기에다 경제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썼을 때, 그리고 북에 간 김병욱이에게 「저 하늘 열릴 때」라는 편지를 썼을 때, 다시 마르크스주의, 아니 사회주의에 크게 기울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나는 근본적으로는 자유주의가 끝까지 간 곳에 마음의 유토피아를 설정해 둔 급진 리버럴이었다고 봐야지.

⊙ 김명인 _ 저도 그러시리라 짐작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마르크스의 유토피아와 급진자유주의의 유토피아 간에 얼마나 먼 거리가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실천의 문제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천하는 인간들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이 늘 말씀하신 양심, 혹은 제정신이란 것이 바로 모든 외적 실천에 선행해야 할 내적 실천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요? 선생님의 시들이 40년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현재형인 것은 바로 그 내적 실천을 추구하는 격렬한 정신의 운동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셨기 때문일 겁니다.

⊙ 김수영 _ 그렇게 봤나? 그래…. 그런데 그거 사실은 별 거 아니야. 외적 실천에 선행하는 내적 실천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외적 실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외적 실천을 두려워했던 형편없는 작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기를 학대하는 일밖에 없었거든. 나는 그 옹색하고 비겁한 자기학대에다가 양심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기를 친 셈이지. 난 겁쟁이였어. 문인간첩단에 걸린 사람들 석방요구서명에도, 월남 파병 반대성명에도 참여하지 못 했지. 다시는 의용군 대열에도 포로수용소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거야. 너무 무섭고 참담했거든. 그런데 한편으론 내가 겁쟁이라는 사실이, 거리에 나서거나 감옥에 가지 못하고 그저 글이나 쓰고 있다는 사실 또한 너무 부끄러웠지. 내 삶은 공포에 늘 납작 짓눌린 형상이었고 내 시는 부끄러움으로 늘 벌겋게 달아오른 형상이었지. 그게 격렬한 정신이었다고? 흐흐…. 내 글, 내 시는 모두 사기야, 사기!

⊙ 김명인 _ 선생님, 또 자학하시는군요! 사기치셨다고 하셨지만 그렇게 말하면 모든 글 쓰는 인간은 전부 사기꾼입니다. 선생님은 사기를 치셨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사기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않으셨지요. 바로 그 점이 ‘김수영표’가 아닐까요. 만일 그런 자학적 정직함이 없었다면 「꽃잎」이나 「풀」이 보여주는 휘황한 엑스터시의 세계가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 김수영 _ 「풀」에서 엑스터시를 봤다고?

⊙ 김명인 _ 그럼요, 해탈하는 자의 엑스터시였지요.

그때, 잠깐 바람이 불었다. 동풍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덤가 풀잎들이 일제히 몸을 뉘었다 일어났다. 선생의 헝클어진 머리칼도 일순 가르마 저편으로 일제히 젖혀졌다가 다시 흩어졌다. 빈 종이컵들도 쓰러져 굴렀다. 그래도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 김수영 _ 「풀」에서 엑스터시를 봤다니 자넨 시를 잘못 읽었네. 그건 해탈도 황홀도 아니고 발광이었거든? 오죽하면 울다가 웃다가 그 난리였겠나? 내가 선(禪)이나 할 놈으로 보였나? 자넨 「풀」 바로 앞에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가 있었다는 걸 잊었나?

⊙ 김명인 _ 제가 왜 잊었겠습니까. 저도 늘 의자에 치어서 살고 있는 걸요. 발을 옮길 때마다 의자가 걸리고 걸음걸음마다 마룻장이 울려 온갖 사물들이 귀에 징징거리는 걸요. 체코 여행에서 돌아올 때 보헤미아 크리스털 한 세트를 사 짊어지고 오다가 선생님의 그 ‘노리다케 반상세트’가 생각나서 혼자 쓴웃음을 지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가 없었다면 「풀」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사기가 되었겠지요. 땅에 뿌리박혀 꼼짝 못하는 존재, 온갖 진드기와 개미떼들에 뜯겨도 단 한걸음도 몸을 비키지 못하는 풀들이 바람에 머릿결 풀어헤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선생님 말씀대로 발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걸리고 울리고 일어나도 걸리고 앉아도 걸리고 항상 일어서야 하고 항상 앉아야 한다 피로하지 않으면”이라는 의자와 찬장 사이를 헤쳐 나아가는 생활과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는 풀의 움직임은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발광과 엑스터시에는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에는 어떤 초월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대지에 발 묶인 풀들의 눕고 일어섬은 발광이지만 대지에 뿌리내린 풀들의 너울거림은 해탈의 엑스터시 아닌가요? 「풀」에는 ‘묶인 자’에서 ‘뿌리내린 자’로의 존재론적 전환이 있습니다. 그걸 자유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보는 게 틀렸습니까?

⊙ 김수영 _ 자네 좋을 대로 생각하게. 나는 다만 내 생애 마지막 시라고 오만 의미를 덕지덕지 붙여 대는 자들이 마뜩찮았을 뿐이네. 그건 나를 완전히 보내버리자는 수작들이지.

⊙ 김명인 _ 어이쿠, 저도 똑같은 부류로군요!

어느새 땅거미가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팔에 선뜻 소름이 돋았다. 이제 일어서야 할 시간이다.

⊙ 김명인 _ 선생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 자유는 이제 아주 쉬어 꼬부라질 정도로 흔해졌습니다. 언론자유가 없어서 시를 못 쓰던 시대는 거의 지나갔습니다. 현실사회주의권은 다 망해 버렸고 남북통일도 그야말로 시간문제처럼 되어 버렸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그토록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고자 했던 근대, 혹은 근대성은 이제 혹독한 성찰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도 어딘가 「레이판 탄」이나 「폭포」처럼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거나 내리꽂힐 곳이 있는 겁니까?

⊙ 김수영 _ 이렇게 대답하지. 시는 움직이는 것이라고. 정신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돌아가는 것은 가는 것이 아닌가, 반성은 운동이 아닌가? 머무르는 모든 것은 시가 아닐세. 그리고 이 시대는 아직도, 아니 오히려 더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네. 이만하면 되었다는 말을 내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않는가. 나는 아직도 순교할 곳에 이르지 못해 이렇게 눈 못 감고 세상을 떠돌고 있네. 현문우답인가? 대답은 자네 속에 있네. 이 얼치기 비평가 선생! 어서 세상으로 돌아가 더 공부하게. 오늘 반가웠네.

산자락 짙은 땅거미가 그의 무덤에 걸쳐지는가 싶은 순간, 그는 그림자처럼 그 땅거미와 한 몸이 되어 홀연 무덤 속으로 사라져 갔다. 6월의 밤이 시작되었고 나는 휘청휘청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아직 못 다한 말이 너무 많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그가 말한대로 그의 몫이 아니라 내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