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어판 『못자국』 © 운영자

 

『못자국』은 제주 출신 작가 현길언 자신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는 소설이며 일본 식민지 말엽에서 제2차 세계대전, 1948년 4·3사건 및 한국동란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제주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야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제주는 일본의 전략적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갈등의 표출장소, 한국동란 때는 피난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였다.
이 소설은 청소년문학으로서 3부작 각 단행본으로 2001년에서 2003년 사이 출간되었으나, 독일어본을 위해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삽입하고, 소설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3부작 단행본 원고를 작가가 별도로 마련해줘 이를 중심으로 번역하였다. 소설의 제1부는 일제 지배 말엽 초등학교 저학년생 주인공의 눈으로 본 세상 이야기인데, 작가는 당시의 불안감과 전쟁의 분위기가 어떻게 주인공 소년의 일상으로 침투되는가를 묘사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전쟁놀이에 그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드러난다. 아이들은 일본군과 미군으로 나뉘어 전쟁놀이를 하고, 항상 일본군이 이긴다. 어린 주인공의 눈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가 없으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은 채, 30여 년이 넘는 일본 식민시대의 오랜 동화 과정에서 그 정체성이 상실되어 갔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삼촌이 영웅적 일본 군인이자 존경 받는 남성상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1945년 해방정국이 되면서 사정은 정반대로 급변하게 되고 주인공의 의식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제2부에서는 초등학교 상급학년에 접어든 주인공을 중심으로 겪게 되는 일본 식민지배의 결과와 격동의 시기가 뚜렷하게 묘사된다. 전대미문의 격동기와 혼란기는 “뿔 달린 아이들”이라는 상징성으로 나타난다. 뿔이 달렸다는 것은 모든 위협적인 것 또는 시대의 혼란스러운 것에 왜곡되게 적응하는 것을 뜻하고 있다. 주인공은 과거에 일본을 찬양하던 선생님들이 지금은 일본을 적이라 칭하고, 한 때 영웅적 일본군의 죽음으로 추앙 받던 삼촌의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는 개죽음으로 이해되는 상황 앞에서 극단적인 가치 전도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이고, 누가 승리자이고, 누가 패배자인지,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가 더욱 모호하고 혼란스럽게 된다. 아울러 4·3학살사건이 얼마나 비극적으로 제주에서 일어났는가가 주인공의 가족과 그 이웃 사람들을 중심으로 묘사된다. 아이들의 전쟁놀이는 아직도 계속되는데 이번에는 빨치산과 토벌대로 나뉘고, 항상 토벌대가 승리하는 것으로 놀이는 계속된다.
제3부에서는 한국전 당시 피난처로서의 제주의 역할이 부각된다. 어린 주인공 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일상이 또 다시 변화를 겪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 소설의 제목 “못자국”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나 그의 내면에 해소될 수 없는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삶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것이 외부에서 오든 내부에서 오든 죄의식 혹은 내적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과 삶의 자세가 궁극적으로는 내적 평화에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을 번역하며 한국문학작품을 전혀 다른 문화권의 언어로 번역을 함에 있어서 어떻게 해당 문화권의 언어로 문학 작품답게 전달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말 문학을 독일어 문학으로 전환할 것인가가 늘 어려운 일임을 새삼 절감하였다. 그래서 일차적 방법으로 원어민 공역자를 선택할 때 한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잘 모르는 공역자를 선호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일차 번역을 해서 원고를 검토할 때, 공역자가 완전히 새로운 독일어권 독자의 시각에서 소설의 내용, 의미와 문체, 배경 등 예상 못한 구체적 질문들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 제기는 주역자로 하여금 공역자와 더불어 다시 한 번 원본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가장 적합한 독일어 표현과 어휘 선택으로 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며, 질의 응답 및 반복 토론을 수 차례 거치면서 번역과 문체 선택이 이뤄지게 되는데 이 과정은 번역 작업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묘미는 역자들 사이의 돈독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권 언어에 대한 상호간 깊은 이해를 가져오며, 이러한 유대관계에서 공역이 이뤄질 때, 그나마 앞서 제기한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경험하게 된다.

※ 『Nagelspuren』은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2006년 독일 페퍼코른(Peperkorn)에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