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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문학 접촉에 대한 생각

▲ 소설가 최일남 ©운영자

1주일에 2회씩, ‘먼 하늘 가까운 바다’라는 제목의 한·일 공동소설이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 있다. 공지영, 쓰지 히토나리 두 작가가 남녀 주인공의 어제 오늘을 시점(視點)을 엇바꿔 각각 쓴다. 같은 타이틀로 몫몫의 얘기를 엮어 나간다.
매우 실험적인 수법인데, 쓰지는 이런 실험이 두 번째다. 90년대 말,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이미 써냈다. 잡지나 출판사측 기획이 아닌 두 사람의 착상이었다. 기본 취지에 의기투합한 후에도 오랫동안 뜸을 들였기 때문에 편지를 주고받는 것 같은 형식에 피차 고무되어 공동작업의 자극과 의미가 컸다고 한다. 문학지 연재 끝에 따로따로 낸 책에서 그가 밝혔다.
특별한 형식이 아무튼 돋보인다. 영화에서나 보던 합작의 소설판인 셈인데, 작가와 주인공들의 ‘국적’에 많은 묘미와 부하가 걸릴 듯하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무대가 밀라노였던데 비해 『먼 하늘 가까운 바다』는 도쿄와 서울이다. 독자 처지에서 넘겨짚는 상식이 어설픈 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의 버전을 연상시키는 공통 제목이나 ‘한·일 공동소설’의 한일 자 사이에 굳이 찍은 점이 그런 전망을 예감케 한다.
작년 봄부터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에 동시 연재됐던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의 소설 『8월의 저편』도 곧 책으로 나온다고 들었다. 장거리 육상선수였던 외조부의 삶을 6·25를 배경으로 다룬 내용이다. 그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어디 문학뿐인가. 한일 문화의 상호 체험은 갈수록 다양하고 빠르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각개 약진 형태로 사람과 문물의 섞임과 번짐이 왕성하다. 거의 일상화 수준이다. 태생적으로 일본에 구애받을 것이 없는 젊은 세대는 하물며, 교류의 요소요소에서 당당하다. ‘붉은 악마’의 함성으로 일본 축구에 맞서다가도, 헤어지면 일제 애니메이션에 매달리는 투로 인식의 전환 분리가 독자적이다.
NHK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녹화를 떠 최근 방영한 ‘노도 지망’(노래자랑) 프로를 우연히 보고 그만한 추세를 가령 실감했다. 만장한 관객 앞에서 일본 노래를 부른 20여 출연자 가운데엔 한국에 사는 일본인도 물론 ‘끼어’ 있었으나, 3분의 2는 남녀노소 한국인이었다. 그중의 대부분은 또 고등학생을 포함한 청년층이었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왜색가요로 낙인찍어 금지시킨 게 60년대 중반이다. 쇠도 녹일 40년 세월이 지났으므로 왜색을 넘어 원본 ‘엔카’를 열창하는 10대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데도, 어쩌자고 그때 그 기억이 잠깐 뇌리를 스쳤다. 80을 훨씬 넘은 노인이 기타까지 치면서 부른 ‘사께와 나미다카 다메이키카’(술은 눈물이냐 탄식이냐)는 매우 구슬펐지만, 연치에 걸맞은 가락을 택했구나 여겼다.
어떻든 놀라지 않았다. 어느 날의 작은 퍼포먼스를 두고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따위 ‘난닝구의 탄식’을 또 다시 입에 담을 것이 없었던 게다. 다만 열적었다. 저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힘 하나 안 들이고 일본노래판을 벌이는데, 우리는 도쿄의 이름난 공회당에서 일본인 중심의 한국가요판을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을 불가불 떠올렸다.
이런들 대수고 저런들 대수냐. 하찮은 걸 가지고 수선떨지 말라 내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학도 그렇고, 일본 문화의 두고두고 은근한 입초(入超) 만연이 수출역조 못지않다. 우리의 소소한 진출에 엄살마저 부리며 소리 없이 나래를 편 역사가 길다. ‘욘사마’를 앞세운 ‘한류’가 어느새 한류(寒流)로 얼어붙을 기미마저 보이는 상황에서 내내 범연해도 좋을지……. 전래의 피해의식과는 무관하다. 그런 의식을 상당부분 털어낸 단계이기 때문에 그 같은 양상에 한층 괄목하는지도 모르겠다.
까마득한 옛 얘기지만, 일본책과 관련하여 지금도 희한한 것이 부산 피난시절의 베스트셀러였던 후지하라 데이의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는 논픽션이다. 만주에서 일본의 패망을 맞은 주부가 기상대 직원이었던 남편과 헤어져, 다섯 살, 두 살 아들에,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안 되는 핏덩이(딸)를 데리고 1년, 38선을 넘어 고국으로 가는 과정이 끔찍하다. 그것이 대뜸 우리말로 출판되어 널리 퍼졌다. 6·25 직후의 자기연민과 동병상련이 겹쳐 그랬겠으나 많이들 읽었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말이 무안한, 느닷없는 감동이 야릇했다. 이 책은 발간된 지 근 50년 후 개정판을 또 낸다. 다시 만난 저자의 남편은 작가로 인생을 재출발했다.
잇따라 등장한 고미카와 준페이의 『인간의 조건』 역시 대단한 인기품목이었다. 6권의 중량과 값에 눌려 손에 넣기 힘들었지만 꽤 오래 팔렸다.
그래서 어쨌다기보다, 인간의 생사랄지 극한상황에 견주면 분단에 이은 한국전쟁을 덮을 것이 없는 데도 그랬던 내력이 별스럽다. 혹독한 현실과 가난에 짓눌려 무엇을 기록할 염조차 못 내고 헉헉대는 사이, 일본은 조선의 ‘동란특수’를 누리며 무너진 산업을 되일으킨 여력으로 문학을 재건했다. 한 동안 책을 놓고 정신없이 전쟁에 휘둘리던 독서층이 밀린 숙제를 하듯 그걸 뒷받침했다.
많지도 않은 문학 구매력의 일정 지분을 우리는 그때 그나마 놓친 셈이랄까. 그에 상응하는 이유를 꼽기 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에 끌리고, 오에 겐자부로의 『사육』에 매료되었다. ‘문제작’이 딱딱해서 싫은 사람은 하라다 야스코의 『만가 挽歌』나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으로 미구에 달려갔다. 그리고 뜸한 휴면기를 지나 무라카미 하루키와 류, 요시모토 바나나 등으로 이어진다. 견강부회의 감이 없지 않되, 지나놓고 보니 느슨한 수준의 일서(日書) 바통 이어달리기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나름대로 긴장과 이완을 골라잡는 독자의 취향으로 돌려 무방하려니와,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또는 『대망』) 바람이 아직 여전한 사정을 또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한 질 분량이 30권을 넘는 초대형 대하소설이 스테디셀러를 훨씬 넘는 호황을 누린지 20년은 좋이 되지 싶다. 처음엔 나이 든 이들 위주였는데 요새는 청소년들이 더 많이 찾는다. 그들은 인터넷의 ‘지식in’을 통해 『주싱구라 忠臣藏』『미야모토 무사시』『료마가 가다』 등등의 전국시대 영웅담이며, 명치유신 인물들에 재미를 붙여 그에 관한 독서 정보를 예사로 나눈다.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것이다.
한국 소설의 일본어 번역판도 어지간한 터에, 따지고 보면 이쪽 귀책사유 또한 적잖아 일일이 탓할 것이 못되거늘, 한결같은 흡인력과 열독률의 피아간 편차가 심하다. 내친 김에 언급해도 될 『삼국지』는 말할 나위 없다. 통과의례처럼 대대로, 요시카와 에이지의 일본판 이래 꾸준한 지구력이 놀랍다. 웬만한 종교도 외래 사상도,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원산지 이상으로 웃자란다는 역설마저 생각케 한다.
문학을 제외한 한일관계 책자는 수효를 헤아리기 난감할 지경으로 서사에 즐비하다. 정치, 사회, 경제, 풍습, 관광 등에 걸쳐 나날이 새로운 저작이 눈에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한국문인이 일본을, 재일동포 작가를 뺀 일본문인이 한국을 작품으로 다룬 것은 드물다. 희소한 예가 있기는 있다.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이조잔영 李朝殘影』과 『족보』를 이를테면 들 수 있다. 전자는 조선조 궁중무용을 전승하려는 기생과 일본인 미술학도의 사랑을, 후자는 죽음으로 창씨개명을 거부한 친일 지주를 그린 중편이다. 서울서 태어나 경성중학과 수원농림고를 다닌 작가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
다치하라 마사아키의 자전(自傳) 장편소설 『겨울의 추억으로』(후유노 가다미니)는, 부자 2대에 걸친 한일 혼혈아의 숙명을, 저자가 소년시대를 보낸 안동 봉정사를 중심으로 슬프게 펼친다. 교토대학 인도철학과 출신 선승(禪僧)인 아버지는 30중반에 자살하고, 일본인 어머니는 딴 남자를 보아 그를 버렸다. 일본인 소설가로 시종하면서 남긴 작품이 15권이다.
이노우에 야스시가 쓴 『풍도 風濤』는 몽고군에 짓밟힌 고려의 참상에 빗대어, 일본이 말하는 원구(元寇)의 생성과 소멸이 얼마나 억지스러웠던가를 보여 준 점에서 각별하다.
소설은 아니로되 시바 료타로의 「한국기행」과 「탐라기행」은 역사의 시소를 타고 한일 양국의 어제 오늘이나 제주도 풍물을 바라보게 만든다.
둘 다 그의 거창한 세계기행문집 『큰길을 가다』(가이도오 유쿠; 43권)의 한 부분이다. 「한국기행」은 이 시리즈의 2번을 달고 나왔는데, 도시에는 눈도 돌리지 않고 마을과 변방을 찾아 촌로들과의 대화를 즐긴 것이 특색이다. 그다운 탐방정신이다. 하지만 왜 ‘왜’(倭)인가를 따지듯 기술하는 대목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한국인의 일본 인식에 대한 불만이 점잖게 깔려 있다.
그는 정유재란 때 끌려간 심수관 일가의 망향 4백년을 별도로 썼다. 제목을 시처럼 달았다. 『고향 잊을 수 없네』(고쿄 와스레지가다쿠소로)라고.
공연한 자격지심인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 듯하다. 언제는 세상의 작가들이 이웃나라를 의식하며 글을 쓴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 할 일을 할 따름이다. 계제가 닿으면 문학인의 이름으로 연대하고 뜻을 모아 평화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지난 5월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이 맞춤한 사례다. 그 집회에서 오에 겐자부로가 보인, 일본헌법 9조 수호 의지가 기억에 새롭다. 그에 대한 종래의 신뢰를 재확인시켰다.
그러나 일본에는 교과서 왜곡문제에 딴소리를 내는 전 문화청장관 미우라 슈몽 같은 작가도 있다. 그는 ‘교과서개선연락협의회회장’ 자격으로 낸 책 『역사·공민 전교과서를 검증하다』에서 후소샤 이외의 교과서를 모조리 부정하고 나섰다. 자기 생각을 어떻게 펴든 상관할 것 없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그런 세력들에 맞선 일본 내 소수 지식인의 힘든 선전(善戰)이다.
뿐인가. 대학에 한국어과는 더러 있어도 한국문학 전공은 아주 적다고 듣는다. 우리와는 정반대다. 정년퇴직한 오무라 마쓰오, 사에구사 도시카쓰 교수의, 앞으로 더할 고군분투가 안타깝다.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도 우선 아시아를 딛고 나가는 게 순리 아닐까를 그래서 생각해 본다. 문학은 스포츠가 아니므로 아시아 예선을 통과해야 월드컵을 바라보는 포즈를 취하기 어렵겠지만, 일단 유의할 필요는 있다고 믿는다.
마침 중국에서 활약하는 박명애 작가로부터, 그가 번역한 세 권짜리 책을 받았다. 『붉은 수수밭』을 쓴 중국 작가 모옌의 장편소설 『풍유비둔 豊乳肥臀』(풍만한 젖가슴 살찐 엉덩이의 뜻이란다)이다. 일본소설 편식에 웬만큼 물린 터라서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또 객적은 노파심이 일었다. 우리 시와 소설은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서점에 얼마나 꽂혀 있을까 염려한 것이다.
어쩌면 이 모두가 문학 본래의 명분으로 부질없다. 막판에 제가 한 말 제가 지우는 꼴이겠으나, 글쟁이는 필경 낭인(浪人)의 도저한 기질을 먹고 사는 존재다. 국경을 의식하되 그 속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에 더 빠지는 상수를 두어 마땅하다.
그런 시각으로 일본을 대할 때 대하고 잊을 때 잊었으면 한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진작 털고 흘려보냈어야 할 설익은 일본관을 그나마 자의적으로 콩팔칠팔 주워섬겼거늘, 차츰 돌이키려고 애쓴다. 역도산이나 미조라 히바리가 한국계라는 걸 내세워 자위하는 속 좁은 민족의식이 예컨대 구차스럽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본인들의 철저한 무반응은 고사하고, 그런 혈통주의가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업신여김으로 번질지도 모르겠다는 예단을 접기 힘든 탓이다.
미조라 히바리에 대한 ‘국민가수’ 칭호를 내려받듯이, 우리는 예술의 분야마다 그것을 또 퍼다 쓰고 있다. 나를 국민작가라 부르지 말라고 극구 사양한 시바 료타로의 겸양이 무색할 노릇이다.
아무려나 한일간 문학 접촉은 갈수록 폭을 넓혀갈 터이다. 앞으로는 상대를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인 세대 대신, 필요한 만큼만 아는 세대가 대세를 이루리라. 그런 날들의 한일간 하늘은 서로 얼마나 멀고 바다는 얼마나 가까울까. 광복 60년을 몸으로 때우고 산 자의 넋두리는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