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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걸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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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질주한다. 한 여름에도 차들은 휴가를 가지 않았는지 그 많은 양의 차들이 조금도 줄지 않은 것 같다. 도시생활 속에서 편리함이란 미명하에 늘어난 것은 별수 없이 차와 사람이라는 듯 우리가 사네 못 사네 해도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고급 중형차들이 거리를 질주한다.
달리는 차들만 보아도 잘 사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늘었구나 하고 나는 자조해 본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축하해주자 하며 건널목 앞에서 지루하게 파란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이 그 많은 중형차들 틈바구니에서 아주 작은 차 한 대가 불쑥 다가온다. 작은 마차처럼 끙끙대며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큰 차 사이를 비집고 달린다. 너무도 당당히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없어지고 단종되었다는 아주 작은 꼬마 차 티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순간 되뇌어 본다. 작은 차량 보다 더 커보이는 간판에는 ‘긴급 혈액 수송차량'이라 씌어져 있었다. 긴급 수혈 환자에게 피를 공급한다는 다소 비장하고 긴급을 요하는 차가 저렇게 도시의 이단아처럼 사라진 기종의 차량이라니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칠까지 벗겨진 폐차 직전의 잊혀진 차를 만나다니……
티코, 이따금 황토 먼지 이는 시골길에서 본 적은 있다. 먼 길을 걸어가느라 나는 다소 피곤하고 다리가 아파서 넓은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나에게 우체국 직원이라 자신의 신분을 밝힌 중년의 사내가 티코의 운전석 창문을 열고 삐죽이 고개를 내밀었다. 타라는 신호였다. 나는 내가 먼 길을 걸어 도착 지점에 가야 한다는 막막함보다 그 사내의 얼굴이 더 막막해 보여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보다는 가다가 멈춰 서버릴 것 같은 차가 불안해 보여서였다. 시골길에서나 볼 수 있는 희미하게 글씨조차 지워진 전설 속의 이름같은 영어 스펠링의 ‘Tico'가 아직도 그 이름을 달고 시골길의 구불구불한 황톳길을 달리고 있었던 거다. 시골길에서의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 살아나다니. 한 기업이 망하면서 남긴 이름의 차가 어렵게 그 명맥을 거의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선 가난한 공무원의 긴급 혈액 수송 차량으로 그의 손과 발이 되어 긴급 환자들에게 혈액을 수송하는 차량으로 어느 꺼져가는 한 생명이라도 구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초라하고 비좁고 아주 작은 공간이 보이는 차 속이지만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는 혈액을 실었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그 직원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충북의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생각난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그곳 적십자 병원에 혈액을 공급한다. 꺼져가는 한 생명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정해진 날짜에 가서 그 일을 꼭 행한다고 한다. 주사바늘을 꼽고 누운 그이 모습이 언뜻 TV에 비춰졌다. 건장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다고 한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춰지면서 그는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알린다.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또 어렵게 살고 있는 학생들의 장학금도 조금씩 내놓는다고 한다. 사랑의 작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런 상쾌한 이야기는 듣고 들어도 조금도 질리지 않는다. “아주 작은 일인데요, 뭐, 나와의 아주 작은 약속을 실천할 뿐입니다.”
길을 가다가 ‘긴급 수송 차량'이라 쓰인 티코를 끌고 가는 운전자를 만나면 나는 기꺼이 손 흔들어 주리라. 우리는 왜 좀 더 남을 위해 작은 실천을 선뜻 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날 티코가 내 앞을 지나갈 때 혈액이 담긴 병이 많길 기원하며 얼음에 많이 재워져 있길 기원하며 차 안을 들여다 보았다. 왠지 병 같은 건 보이지 않아 더욱 쓸쓸함을 느꼈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젊은 날 꺼져가는 생명을 위해 피 한 모금 수혈해주지 못했을까. 아아. 나여 부끄러운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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