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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씨 만한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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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은 사랑의 원리로 만들어진 우주의 그물이라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여기저기 그렇게 어제 오늘 담날, 모레 글피로 이어져 왔고 또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한 때 나는 시를 쓰겠다는 마음으로 시를 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 대신 소설을 쓰겠다고 작심하였다가는 실행을 하지 못한 채 문학평론이라는 글쓰기 기법으로 내 삶을 이야기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리고는 학생들 앞에 서서 이것저것 문학작품들을 읽히고 쓰게 하면서 많은 시간을 내 몸에 받아들였다. 몸과 마음은 이 시간의 원리를 잘 알아 적절하게 늘어났다가는 줄어들고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이제 나는 시 한편을 여기 올려 누에씨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것은 나의 일지로 쓴 시이니 시로 읽든 이야기로 읽든 상관하지 않겠다.
누에씨
봄철 마당가 툇마루 위에 큰 창호지 펼쳐 있고 거기 검은 먼지 담배 씨 같은 벌레들이 꼬물거린다. 히야 하얀 한지 위에 세계지도 누에씨 얼룩으로 그려졌구나. 너는 비단길 내던 상인들의 숨소리 북경에서 타클라마칸 몽골 사막을 끼고 서쪽 로마 향해 낙타 말들 가뿐 숨 몰아쉬던 그 곳 떠날 채비 시골 앞 마당가 펼쳐진 한지 위 검은 먼지로 꼼지락거린다.
몸은 비록 작아 담배씨 먼지로도 보이지만
너는 조만간 온산 들판 뽕잎 다 먹어치우고
버석대는 소리 뽕밭에 누워 밀애로 숨차하던 처녀
김유정도 보았고
사막 길 위에 펼친 주막 등불 하나
날름대는 뱀처럼 속살 드러낸 무희 천막 안의 몸놀림도
모두 네가 뿜어낸 고치 집, 이기영의 고향 왜상들 양잠회사
한숨쉬며 몸 팔린 조선처녀 이야기도 다
네 작은 몸이 만든 조화 탓이었다.
산 하나 가득한 뽕잎 다 먹어치운 너는 말갛게 익은 몸뚱이 숨길 집 하나 지어놓고 둥그런 몸매 누에 번데기로 잠 좀 자다가 누에씨 종자로 간택되면 뜨거운 물 속 비명 지르다 아이들 간식거리로 달콤한 몸통 국물 터트리지 않아도 된다.
이제 너는 좁은 날개 짓으로 다시 한지 위에 앉아 펄럭이며
먼지 담배씨 같은 알들을 낳고 죽는다.
너의 변신 재주 세상 덜컥거리게 만드는 고함소리 싸움 난장판으로 만들었나. 나의 벗 어머니도 네 먹이 찾아 산 뽕잎 따가다 잎 속에 숨어 날름대던 뱀에 물려 죽었다. 너는 뱀과 욕정 들뜬 사람 신음하던 여린 처녀와 그리 닮아 꼬물대던 담배 씨 손가락 크기 몸피로 자라 그렇게 많은 사람 꿈과 몸에 마음 지도 그렸나?
비단길의 등불 하나 지금은 중동 사막 속에 묻혀 있다는
누에씨보다 더 묽게 검은 석유로 사람들 설레게 만들고 비단 값
석유 길로 사람께나 죽어 간다데. 너 비단길 등불
누에씨 꼼지락 간지럽구나.
나는 누에씨 만한 사랑이 우리가 사는 이 사막같은 삶의 한 복판에서 아름답게 커져 온 세상 밝혀 가기를 비는 마음으로 매일의 일상을 견딘다. 아아 그런데 왜 이리 세상이 어두워 보일까? 잘못 산 내 나이가 너무 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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