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장대송  © 운영자

건들장마에 고추잠자리들이 20층 높이까지 날아올라 공중을 휘젓고 다닌다. 20층 높이라면 하루살이나 모기 같은 잠자리의 먹이감이 되는 곤충들이 살아가는 영역이 아닐진데, 늦장마가 건들거리며 한번 들고 날 때마다 자꾸 올라오는 잠자리 떼들. 현실과 상관이 없는 삶이라는 것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먹이를 찾는 걸까?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시단의 잡지나 시집을 보면 선시적인 또는 선시가 되고자 하는 시들을 쉽게, 아니 많이 접하게 된다. 최근의 시나 소설에 있어서 중심이 부재함에 대한 얘기들이 있어왔지만 이처럼 두드러진 시의 흐름이 있음에 그러면서도 부재감을 지울 수 없음은 무엇일까. 갓 등단한 시인부터 중견, 원로에 이르는 많은 시인들의 시들에서 하나의 패션처럼 나타나는 선(禪)적인 언어와 관조들을 보며(물론 모든 시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치 뜬구름 잡는 말들의 공허함을 지울 수 없다. 결코 중심부재를 극복하는 대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와 선시를 명확히 경계 짓고 어느 한쪽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국 선승들의 의해 시작된 선시는 일반 문인들의 시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선취(禪趣)의 경향이 보이는 시가 생겨났고, 종국에는 시와 선은 같다는 선시일여(禪詩一如)의 주장에 이르는 과정을 비판하자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선시와 시는 압축과 비약과 고도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그 주고받음의 영향관계가 자연스럽고 긍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시와 시는 그렇게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이복형제 같기도 하고, 이란성 쌍둥이 같기도 하다. ‘깨달음의 미묘한 경지를 압축과 비약, 고도의 비유의 언어로 나타낸다’는 면에서 그렇다고 한다면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 또한 존재한다.
그것은 현실을 천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선시가 깨달음의 경지를, 정신적인 몰입을 얘기한다면 시는 깨달음의 경지나 정신적인 것도 있지만 한 발짝 더 나아가 현실을 간과하지 않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정치적인 것에서부터 생활에 관련된 것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까지도 끌어안거나 중심을 꿰뚫으려 한다는 것이 시와 선시를 갈라주는 분명한 변별점이 아닐까 싶다.
선시풍 혹은 선 지향의 시들을 보면 요령부득의, 어쩌면 시인 자신도 잘 모를 것 같은 말 비틀기나 비약 정도가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정신이라는 것이 누구든지 이해해야 하고, 반드시 일정부분 검증돼야 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거기에도 분명 일정한 정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앞서 시가 선시와 같으면서 다른 것이 깨달음의 경지만이 아닌 현실에 천착하는 것이라는 구분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시들이 선 지향적이거나 선시풍으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깨달음에 대한 언어들이 시화(詩化)했을 때 추상적이어서 자칫 언어도단을 일으키기 십상인데다 그 세계에서 즐기다보면 재미도 생기고 해서는 결국에는 더 큰 정신적인 부재를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일찍이 한 산문에서 ‘우리 시가 우리 생활과 너무 동떨어진 소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시가 아주 죽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질타한 김수영은 시의 새로움을 생활현실에 뿌리 내린데서 찾은 바 있다.
새로운 정신에 이른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놓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 시에 범람하고 있는 선 지향은 분명 어떤 부재로부터 오는 편향성이라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현실을 간과하지 않은, 그리고 부재를 극복한 시들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