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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지 못하고 회사를 경영하는 설움을 토로한 시인
- 나의 아버지 김광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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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아버지가 태어나신 지 100년이 되는 해라고 하여 고맙게도 대산문화재단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연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전의 아버지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딸들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해 보려고 합니다.
시인 구상 선생님께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말씀하신 대로 정말 병상에 누우신 상태에서도 양팔로 책만 받친 채 하루 종일 독서를 하셨습니다.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말씀을 못하시고 글도 쓰실 수 없으셨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떠올렸을 많은 시상들을 남겨 놓지 못하신 일입니다. 저희들에게도 늘 책을 가까이 하며 살라는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셔서 책을 보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아 집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일 중 하나는 인사동을 다니시면서 옛날 미술품들을 보시는 일이었고, 1950년대 중학교 때인가 저도 일요일이면 아버지를 따라 인사동을 갔습니다. 가게 주인들이 따님 데리고 나오셨다고 매듭으로 된 노리개를 선물로 주었는데 이 때문에 매듭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매듭의 길에 들어섰고 결국 무형문화재 매듭장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의 모습이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화가 친구 분들이 많으셨는데 어느 일요일에는 아버지를 따라 육군병원에 화가 이중섭 선생님 문병을 갔었던 기억도 납니다. 착하게 생긴 이중섭 선생님께서는 말이 없으셨고 열심히 먼지 같은 것을 손으로 집어내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설야」는 아버지 시 중에 여러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데 그 시를 쓰실 무렵에 이미 기성 시인이셨으면서 왜 신춘문예에 응모를 해서 일등 당선이 됐는지 알 수 없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로는 1938년 1월 「설야」를 쓰시기 전 한 일 년 간 좋은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젠 시상이 다 말라 버렸나 하고 여간 고민을 많이 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를 써내서 한번 테스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고 「설야」가 나오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또 「뻐꾹새」는 아버지의 첫 조카가 태어난 지 이주일 만에 세상을 떠난 쌍둥이 짝에 대한 시입니다.
아버지께선 정말 효자셨습니다. 저희는 할머니께서 팥으로 메주를 쑤라고 하시면 그 앞에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고 아버지 시에는 할머니와 경애 고모에 관한 시가 여러 편 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시문에 조예가 깊으셨다고 들었는데 불행히도 48세에 돌아가셔서 글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선비 집안에서 장사를 한다고 큰집에 불려가 종아리를 맞으셨다고 할머니께 들었고, 할아버지가 쓰신 시 중에 한 구절을 고모님께 들었는데 아마 강아지에 관한 한글 시였나 봅니다. “좋아하긴 뼈다구 / 멍멍 짖고 내달아 / 꼬리치며 반기네”라는 구절입니다.
아버지는 손자, 손녀가 14명입니다. 주말이면 늘 손주들을 책가게, 고궁, 그림 전시회, 근교의 명소 같은 곳을 데려가셔서 역사 공부나 글짓기 같은 것을 하게 하시는 자상하고 따뜻한 할아버지셨습니다. 아버지가 살아오신 생처럼 손주나 조카들도 예술 쪽이 반이 넘고 삼분의 일은 경영학 전공입니다.
아버지께선 늘 외로움이 많은 분이셨고, 정이 많으셔서 주위 분들을 당신보다 더 생각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기억으로는 술을 많이 드시면 집에 돌아오셔서 시인이 시를 못 쓰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것에 대한 설움을 많이 이야기 하셨습니다.
저와 저희 형제들은 늘 시인 아버지를 가진 것을 자랑으로 알았고 지금도 분에 넘치게 아버지께 사랑을 받은 것을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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