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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명의 인간 탐욕에 대한 적나라한 풍자 - 알 자히즈 作『수전노』

탐욕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런 인간의 탐욕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결코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본 지면에 소개할 수전노 이야기도 바로 이런 탐욕에서 출발한다. 세계문학에서 ‘수전노’라고하면 프랑스 희곡 몰리에르의 『수전노』, 한국의 구비문학 ‘자린고비 이야기’, 일본의 ‘게친보 모노가타리’ 등이 대표적인데, 아랍문학에는 자히즈의 『수전노』가 있다.
『수전노 』의 작가 자히즈(: 868년 사망)는 아랍문학의 황금기였던 압바스 시대(750~1258)를 풍미한 문인이자 학자였다. 그는 일생동안 200여 편의 작품을 저술했는데, 그 중 『수전노』는 작가가 살았던 당대 수전노들의 기이(奇異)한 행동을 묘사한 책으로 아랍문학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풍자서로 간주된다.
두 눈이 퉁방울처럼 튀어나온 외형적 특징으로 인하여 ‘자히즈(퉁방울 눈)’라고 불렸던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유난히 독서를 좋아했던 천재였다. 어린 시절 그는 마을의 서당에서 아랍어 읽기와 셈하기, 문법을 공부했고 코란 구절과 고대아랍 시를 암송했다. 그 이후 이슬람 사원에서 학자들의 강의를 들으며 언어학, 이슬람 법학, 아랍어 문법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배우게 된다. 9세기 당시 압바스 사회의 문인은 자신의 작품을 통치자에게 헌사하고 경제적 보상을 받는 형식으로 삶을 꾸려나갔는데 자히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90세까지 장수한 문인으로 12명의 통치자를 섬겼는데, 그때마다 통치자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문학을 연마하고 심화시켰다. 후대의 연구가들은 이런 정황을 참작하여 자히즈가 정파를 초월하여 아랍문학의 대가였다고 주장한다.
자히즈는 젊은 날 고향 바스라(이라크 남부 도시)를 떠나 바그다드(이라크의 수도)와 이집트 등을 여행하며 그곳에서 이슬람 사상가들과 학문적 교류를 나누었다. 생의 말기에 바스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중풍과 류머티즘을 앓다가 868년 일생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독서와 사유 그리고 집필로 생을 보냈다.
9세기 당시 아랍 문학은 현대적 개념의 순수문학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글로 씌어진 모든 것을 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특히 자히즈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담은 작품을 다수 집필했는데 그중 몇 편을 소개하자면 『수전노』『명백성과 그 해명』『동물』『법 견해』『코란 창조에 관한 서신』『도둑』『여성들의 서신』『백인보다 우월한 흑인에 대한 찬양의 서신』 등이 있다. 그는 당대에 걸출한 이슬람 지식인으로 이슬람의 다양한 학파를 초월해서 학계에서 인정받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수전노』는 200여 개의 우스운 이야기와 세 편의 편지를 모아놓은 작품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수전노가 돈을 아끼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집을 찾은 손님에게 음식 접대를 하지 않을 목적으로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수전노는 요리사에게 미리 명하여 손님에게 대접할 고기는 설익히고 마른 빵을 많이 내어 놓도록 한다거나 새로 신을 사면 3개월 동안은 앞굽으로 걷고 또 다른 3개월 동안은 뒷굽으로 걷는 등의 방법이 등장한다. 세 편의 편지는 ‘절약’에 대한 옹호론과 이를 반박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아랍인은 왜 『수전노』를 당대 최고의 풍자서로 간주하는 걸까? 아랍 속담에 “3과 1/3일”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지나가던 객이 오면 무조건 3일 밤을 재우고 4일째 아침까지 대접한 후에야 어디로 가느냐고 행선지를 묻는 것이 아랍인의 손님에 대한 기본예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아랍인은 손님에 대한 환대를 중시한다. 이는 사막에서 생활하던 유목민의 관습과 이슬람의 환대 정신이 혼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손님 접대를 소홀하게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이 책이 지니는 웃음의 의미는 웃고 넘기는 해학의 웃음이 아니라 수전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풍자의 웃음이라 할 수 있다.

수전노들은 누구인가?
『수전노』의 시대적 배경인 9세기 압바스 사회는 다인종, 다종교의 장이었다. 이슬람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기독교, 유대교 등 기존의 종교를 허용하고 있었고, 아랍인, 유대인,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여 하나의 이슬람 제국을 이루었다. 다인종, 다종교의 사회에서 예상 가능한 사회 문제가 모두 발생하였으나 가장 큰 사회문화적 문제는 아랍인 무슬림과 비아랍인 무슬림간의 갈등이었다. 압바스 시대 이전부터 비아랍 무슬림들은 아랍 무슬림들에 비해 차등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이런 현실에 불만을 지닌 비아랍인 중 특히 페르시아인들의 주도하에 ‘비아랍 무슬림들이 아랍인보다 우월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하였다. 특히 이들은 문학 활동을 통해 하나의 구심점을 이루었으며, ‘슈우비야 세력’이라 명명되었다. 슈우비야 세력에 속한 문인들은 아랍인의 결점을 찾아 문학 내에서 비난하고 조롱했다. 그들의 문학 작품 속에서 아랍인은 사막의 베두인, 길들여지지 않은 개, 맨발의 유목민, 그리고 ‘환대’라는 미명하에 낭비를 일삼는 이에 비유되었다. 반면 페르시아인들은 찬란한 문화의 소유자, 훈련된 닭, 신발을 신은 문명인 그리고 절약의 지혜를 행하는 자에 비유되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압바스 시대 중기 이후로 왕조의 최고 통치자인 칼리파를 제외한 정권의 실세가 페르시아인으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히려 비아랍인의 세력이 아랍인 세력보다 비대해졌으며 슈우비야 세력의 활동도 극에 달했다. 이런 배경에서 출생한 것이 『수전노』이다. 수전노의 심리는 인간의 탐욕과 관련된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히즈는 이런 수전노들의 탐욕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랍인과 비아랍인이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운명에 얽혀 서로 반목하는 마음을 그대로 담았다. 『수전노』는 문학에 녹아내린 정치 이야기이다. 즉, ‘환대’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아랍인과 ‘탐욕’을 절약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한 슈우비야 세력 간의 첨예한 대립이 문학이라는 범주 내에서 웃음과 풍자로 적당히 버무려진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