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한반도 문인들에겐 큰 축제가 있었다. 지난 7월 20~25일 평양과 백두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그것이다. 행사에 참석한 남과 북 200여 명의 작가들은 다양한 행사와 문학 교류를 통해 분단 52년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그들은 ‘6·15 민족문학인협회’를 구성해 향후 남북 문학인을 대상으로 ‘6·15 통일문학상’을 시상하며 아예 문예지 『통일문학』(가제)까지 발행키로 하는 등 상당히 구체적인 협의안을 채택, 발표했다. 실로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르면 내년 6월에는 서울, 광주, 제주 등을 순회하는 제2차 남북작가대회도 열릴 예정이라 하니 통일의 물꼬가 문인들 펜끝에서 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건 하나. 남한의 대표적 작가인 황석영 씨와 벽초의 손자이자 소설 『황진이』의 저자 홍석중 씨가 공동 창작을 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1989년 황씨 방북 이후 우정을 유지해 온 두 작가는 이번 대회 기간 평양 고려호텔에서 다시 만났다. 공동 창작은 “16년 전에 약속했던 것처럼 우리 둘이 함께 작품을 쓰자”는 홍씨 제안을 황씨가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 홍씨는 “편지글도 좋고 대담도 좋으니 장르를 구분하지 말자”고 했고 황씨는 “소설을 번갈아 이어가며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민족 문학의 두 남북 기수가 손을 맞잡은 셈이다.
한반도 문단에 통일의 기운이 훈훈했다면 한국 문단에는 신구 조화가 뚜렷했다. 패기 넘치는 젊은 문인들의 야심찬 저력은 물론 거장 문인들의 노익장도 대단했다.
올해 초 한국 문학에는 여성 쌍두마차의 활약이 돋보였다. 『미실』의 김별아(36)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공지영(42)이 그들이다. 그러나 6월 초여름에 접어들어 최인호(60)의 『유림』, 박민규(37)의 『카스테라』, 배수아(40)의 『당나귀들』 등 남녀노소 고른 작가층의 작품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서 한국문학의 ‘화려한 여름’을 열어 젖혔다.
특히 올 상반기 자신의 원작을 드라마화한 KBS ‘해신’을 통해 다시 한 번 명성을 확인시킨 최인호는 6월 『유림』(열림원 펴냄)을 펴내 화제를 모았다. 특유의 대담하고 거침없는 문장으로 유교 기원인 공자에서부터 유교 완성자인 퇴계에 이르기까지 유교 역사와 유교가 찬란히 꽃피운 문화를 소설 형식에 담아냈다.
최인호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우리의 청렴한 ‘선비’ 사상이 사사로운 이익에 눈이 어두운 지도자들에 의해 혼돈과 무질서로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부도덕으로 얼룩진 사회를 구원할 정신은 바로 유교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독일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썼듯이 자신은 ‘조선 국민에게 고함’이란 정신으로 이번 작품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삼미 슈퍼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을 선보이며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던 박민규는 생애 첫 단편집 『카스테라』(문학동네)를 펴냈다. 전생에 훌리건이 아니었을까 의심스러운 냉장고 이야기, 링고스타와 함께 버스를 타고 떠나는 우주여행 등 특유의 만화적 상상력이 넘실대는 단편 10편이 실려 있다. 지난 2003년 여름부터 올해 봄까지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글들로 그야말로 유쾌한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준다.
독특한 문학세계를 대표하는 작가 배수아의 신작 『당나귀들』(이룸)은 지적인 분석과 사색, 그리고 관념이 두드러지는 소설이다. 배수아는 이번 작품에서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자신의 전작 『독학자』 속 문제의식을 그대로 이어온다. 세상을 등지기로 한 어느 몽상가의 조롱 가득 찬 언어가 펼쳐진다.
초여름 직전으로 잠깐 돌아가 보자면 가수 이적(31)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5월에 출간된 그의 소설집 『지문사냥꾼』(웅진닷컴)은 자신이 평소에 자주 풀어냈던 여러 가지 유머와 상상에 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으로 총 12편의 단편으로 꾸며져 있다. 극도의 절제된 분량과 치밀하게 골라낸 단어만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과 분위기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이적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돋보인다.
다시 한여름으로 돌아와 보자. 7월에는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57)이 단연 돋보인다. 그의 신작 『개: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푸른숲)은 날것 그대로인 두 발바닥과 몸뚱이 하나로 척박한 세상 속을 뒹굴며 묵묵히 지내온 진돗개 보리의 세상살이를 통해 생명체의 고단한 삶의 흔적과 꿈의 기록들을 읽어낸다.
작가는 생명을 지닌 것들이라면 누구나 감당할 수밖에 없는 삶의 지난함과 그 속에 숨겨진 보석처럼 빛나는 생의 의미를 잔잔하고도 찬란하게 그려나간다. 더불어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은 진돗개 수놈 보리의 눈에 비친 인간 세상의 부조리들, 즉 덧없는 욕망과 집착, 의미 없이 떠도는 말들, 그로 인한 인간의 나약함과 슬픔 역시 놓치지 않는다.
김훈은 “개발바닥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며 어쩌면 개 짖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며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도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해 2월 김별아와 공지영을 뒤이어 7월을 장식한 여류 작가로는 고은주(38)와 이신조(31)가 있다. 지난 99년 『아름다운 여름』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던 고은주는 장편 『신들의 황혼』(문이당)을 펴냈다. 소설에서는 제주 4·3 살육에서 살아남아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던 ‘아버지’의 굴곡 많은 인생과 신세대 전문직 여성인 ‘나’의 자유롭고 쿨한 삶이 교차한다. 작품은 주인공인 내가 혼전임신을 한 뒤 자연스럽게 생명체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근본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상도시백서』로 화제를 몰고 온 작가 이신조는 두 번째 창작집 『새로운 천사』(현대문학)를 펴냈다. 이번 소설집에도 역시 작가의 디테일한 분석과 냉철한 안목은 여전하다. 현실세계를 그린 작품과 가상세계를 그린 작품이 작가의 적절한 안배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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