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대산문화
 
망각과 파렴치- 독도 문제를 둘러싼 일본 여론의 ‘상상력’
 
올해 2월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의회가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제정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욘사마 붐’으로 들떠 있던 한일 관계가 일거에 냉각 무드로 들어간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반응은 지금까지의 그것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4월부터 일본 대학의 강단에 서게 되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일본 여론이 이 문제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 ‘무지’나 ‘몰이해’의 증상이 예전에 비해서 더 심해진 게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와 비슷한 현상은 독도 문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 일어난 반일 시위 문제에 대해서 일본 언론이 보여준 보도 자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한마디로 반일 시위의 원인이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왜 중국 국민들이 일본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북경 올림픽을 이런 상태로 개최할 수 있느냐”느니 “공산당이 뒤에서 조작하면서 중국 국내의 반체제 운동을 억압하고 있다”느니 전혀 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백 보 양보해서 중국에서 그런 여론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시위에 참여한 중국 시민들의 심정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해서 보여주는 것이 언론이나 평론가들의 역할일 텐데, 이 문제에 대해서 일본의 언론은 일찍부터 그런 역할을 포기한 듯 보인다.
독도 문제에 관해서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일본 여론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점은 1905년 2월에 일본 시마네현이 이것을 편입했다는 사실인데, 우선 이 역사적 사실 자체가 일본이 독도(=‘다케시마’)를 일본 고유의 영토로 생각해 오지 않았던 증거가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왜 ‘편입’해야 했을까? 더구나 이 ‘편입’이 이루어진 당시, 일본 정부는 바로 대한제국 정부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그 해 11월에 을사조약을 체결해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다음 1906년 4월에 그 사실을 ‘통보’했다. 아무리 국제사법재판소라도 일본에 의한 이런 일련의 침략 과정에 대해서 모르는 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 언론은 그 1905년 편입의 사실만을 보도할 뿐,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우익 세력들도 ‘국제법으로 처리’하기를 강하게 주장할 뿐이다. 나는 일본의 우국지사가 아니지만 이렇게 모순된 주장을 하면서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태연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일본 우익들의 태도가 오히려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뭔가 한국 측에 가세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지금까지 이 문제에 관해서 한국 정부가 계속 이상적인 태도를 보여 왔는가 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다. 가장 큰 문제는 1965년에 한국과 일본이 국교 정상화를 했을 때 이 문제를 사실상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그 당시 한국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와 기본조약의 내용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컸다는 점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만큼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한일기본조약을 놓고 이것을 개정해 나가려고 하는 한국 국내의 움직임이 현실화될 조짐이 있었다. 일본과 북한 사이의 국교 정상화를 북한에 유리하게 지원하면서 성취시킨 다음에 한일조약을 바꾸자는 내용의 국민운동이다. 일본과 북한이 국교를 정상화하면 한일조약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은 적어도 바꿔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계기로 조약 전문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북한의 관계가 납치자 문제로 냉각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현재, 두 나라 사이에서 국교 정상화 교섭이 급속도로 진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만큼 조약 개정 운동도 앞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체결 당시부터 문제성이 지적되어 온 한일조약이 개정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독도 문제를 놓고 일본 여론들이 이렇게 무지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을 만큼, 일단 한국측, 아니 나를 포함해서 이 사태를 우려하는 모든 사람들이 해 볼만한 노력이란, 이 문제를 둘러싼 종합적인 홍보와 침착한 토론이 아닐까? 물론 낙관적으로 사태를 바라볼 수만은 없다. 일본 국민들의 그러한 ‘무지’가 거의 자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계속 논의를 해 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독도 문제란 어떤 ‘결정’만이 남아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측의 무지와 파렴치는 생각보다도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성질의 무엇이다. 일본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양쪽 사정을 다소나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문제의 재연은 한국측에 그저 미안하기만 하지만, 서로를 내셔널리즘의 광적 열광으로 몰면서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그러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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