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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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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에서 중학교 1학년에 다닐 때였다.
외갓집은 안방과 옆방 골방, 방이 세 개 딸린 기와집이었다. 밤마다 뒤꼍의 대나무가 문풍지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골방 뒤꼍 문을 열고 나갔다. 뒤꼍에는 텃밭이 하나 있었다. 노지(露地) 딸기가 줄기를 늘이고 있었다. 나는 붉은 수채화 물감을 들고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 모르게 다락방에 올라가 젓가락을 꼬불쳐 두었다. 딸기가 열린 자리마다 젓가락 말뚝을 심어 두었다. 나는 붉은 수채화 물감을 아껴 짜 어린 딸기에게 정성 들여 입혔다. 희멀건 어린 딸기에게 딸기 향이 물씬 풍기도록 덧칠해 입혔다. 내 바람은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들인 정성은 딸기의 숨을 막히게 했다. 결국 익지도 못하고 곯게 만들었다. 나는 진득하게 기다릴 줄 몰랐다. 외할머니와 막내이모는 한 패가 되었다. 나는 그때마다 골이 나 방에 틀어박혀 밥도 안 먹었다. 한 종지 주근깨 막내이모는 문에 구멍을 뚫었다.
밭이랑마다 검은 비닐을 띄운 딸기밭이 외갓집 바깥마당 앞에 있었다. 나는 매일 밤 양심과 싸우고 있었다. 딸기가 익어갈 때마다 내 번뇌도 늘어갔다. 한 개만 따먹으면, 이 세상 모든 설탕 맛이 시시해질 것 같았다. 바깥마당을 서성이는 시간이 늘어갔다. 눈을 감고 딸기밭으로 걸어갔다 돌아왔다.
설익은 딸기밭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만일 들키는 날엔 내 얼굴은 어떻게 되나? 외할머니, 막내이모 얼굴은 어떻게 되나?
“딱 한 개만 따먹자. 그리고 이 세상에 딸기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자. 아냐, 뒤꼍 노지 딸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밤마다 딸기와 싸우고 있었다. 새벽마다 골방 문을 열고 나가 달과 별과 이슬과 싸우고 있었다.
“한 개만 따먹자. 딱 하나면 된다.”
나는 캄캄한 밤을 기다렸다. 나와 그림자가 평등을 되찾는 밤을 기다렸다.
딸기밭 주인은 영농후계자였다. 막내이모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다른 여자랑 결혼했다. 영농후계자 부인은 그 일을 알리 없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플래시를 켜들고 마실 오곤 했었다.
나는 딸기 맛을 그려보다 결국, 딸기밭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외갓집 뒷간에서 열 세 걸음을 내디뎠다. 중학교에 가면서 돌아오면서 보아둔 그 중 잘 익은 딸기에게 다가갔다. 잽싸게 딸기를 따들고 입을 맞추고 냄새를 맡았다. 외갓집 아랫집에서 플래시 불빛이 나왔다. 외갓집으로 마실 오는 영농후계자 부인이었다. 딸기밭은 숨을 데가 없었다. 나는 체육복 뒤 주머니에 딸기를 넣었다. 낮은 포복으로 길가로 기었다. 영농후계자 부인은 딸기밭으로 플래시를 내둘러 비췄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나는 서러움이 복받쳐 울음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포로가 되었다. 몸수색을 당할 것이었다. 나는 딸기밭 가장자리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내 곁으로 걸어 온 영농후계자 부인은, 깜짝 놀라 멈칫했다.
“너 누구야?”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어?”
나는 손에 흙을 묻힌 채 엉덩방아를 찧고 앉아 있었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여기다, 용돈을 숨겨 놨는데, 없어졌어요.”
“그래. 거기다 묻은 게 확실해?”
영농후계자 부인은 플래시를 비춰주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봐라. 정말 거기다 묻었는지?”
나는 눈물을 훔치며 딸기밭둑 위로 올라갔다. 영농후계자 부인은 몸뻬 주머니를 뒤졌다. 500원 지폐 한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때는, 집에까지 가는 차비가 20원할 무렵이었다.
“용돈 잃어버렸다고 말하면 혼날 테니, 아무 말 말아라. 알았지 아가.”
영농후계자 부인은 나를 앞장 세웠다. 영농후계자 부인이 비추는 플래시 불빛에 늘어난 내 그림자가 한없이 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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