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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문학상 3관왕에 오르다

2004년 10월 1일 경북 안동에서 동인문학상 최종심이 열렸다. 심사위원들은 김영하의 장편 『검은 꽃』을 수상작으로 결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김영하가 이미 그해 이산문학상과 황순원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었다. 김영하는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로 이산문학상을 받았고, 그 책에 실린 단편 「보물선」으로 황순원 문학상도 거머쥔 상태였다. 동인문학상까지 돌아간다면 한국문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한 해 문학상 3관왕의 위업을 쌓는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문단에서 한 작가에게 상을 세 차례나 몰아준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잠시 주저했다고 한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동인문학상의 원칙은 작품 외적 요인들을 일절 배제한다는 것’이란 심사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검은 꽃』은 앞서 다른 상을 타지 않았다. 결국 김영하는 『검은 꽃』으로 동인문학상까지 받아 등단 10년 만에 가장 화려한 한 해를 보내게 됐다.

『검은 꽃』은 1905년 망국을 코앞에 둔 조선인 1,033명이 외국인 업자들에게 속아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사실상 노예로 팔려간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약소민족 구성원들의 허망한 인생 유전을 그린 소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가장 약한 나라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인생경영을 이렇게 강렬하게 그린 작품은 일찍이 만나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올해의 한국문학이 배출한 최고의 수작이라고 서슴없이 말해도 좋으리라”고까지 했다.

이산문학상 심사위원들도 김영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를 만장일치로 뽑았다. 한 심사위원은 이렇게 평했다. “내 생각으로는 소설은 독자들에게 결정된 정치적 행위나 윤리적 가치를 드러내놓고 설교하면 안 된다. 그것은 소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소설은, 채만식의 뛰어난 작품들처럼, 그것들이 은밀하게 함축된 인간의 여러 가지 행위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가운데 독자들이 자연스레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번 심사를 통해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그 점을 새로 발견했다. 그야말로 시종일관 막돼먹은 인간들이 펼치는 막돼먹은 행동에서 건강한 집안을 만들기 위한 의식을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황순원문학상 심사위원들도 김영하의 단편 「보물선」에 대해 “구성이 치밀하고 어조가 힘찰 뿐 아니라, 후보작들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했다. “사실을 거짓말처럼, 꾸며낸 이야기를 사실처럼 믿게 하는 이 소설의 기세 높은 문체는, 실질 가치와는 무관하게 엄연한 현실로 군림하는 주가(株價)라는 하나의 유령과, 허망한 꿈이 역사의 가면을 둘러쓴 꼴인 또 하나의 유령으로서의 보물선을 그 자체로써 은유하고 표상하는 효과를 지닌다.”

김영하 소설은 이렇듯 여러 문학상 심사위원들로부터 한결같이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는 호평을 얻었다. 여느 심사평들이 묵직한 문학성을 먼저 내세우던 것과는 사뭇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김영하 소설을 보는 눈은 비슷했다. 기존 리얼리즘 소설처럼 정치와 윤리를 앞세우진 않았지만, 당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고, 소설의 상투성을 깨는 발랄하고 경쾌한 접근 방식으로 서사의 재미와 문학의 의미를 동시에 살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김영하는 통통 튀는 작가의 대명사로 꼽혔다.

▲왼쪽부터 김영하 소설 『오빠가 돌아왔다』, 『빛의 제국』, 『살인자의 기억법』

앞으로 한국 소설사에서 2000년대 초반은 김영하의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2004년 3관왕 달성이 그런 문학사적 위상의 증거로 오래 남으리라. 김영하는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이미 두 개의 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검은 꽃』에 대해 “기존 문학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문학상 그랜드 슬램을 달성함으로써 문학상 관행도 뒤흔들었다. 김영하가 선도적으로 3관왕 씨앗을 뿌린 효과는 지난해 일어났다. 정영문이 장편 『어떤 작위의 세계』 한 편으로 한무숙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차례로 받는 대기록을 세웠다.

다 알다시피 김영하는 1996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내면서 신세대 문학의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인터넷 시대에 자살하려는 고객을 모아 고민을 해결해주는 ‘자살 도우미’라는 인물 설정과 상황이 기상천외했기 때문에 처음엔 판타지 소설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자 인터넷에 자살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현실이 소설을 모방한 셈이었다.

김영하는 늘 “이런 것을 써도 되나 하는 소리를 들을 소설을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토니 모리슨의 말을 인용했다. “자기 서가에 보이지 않는 종류의 책을 써라”는 것을 창작 원리로 삼았다고 했다. 김영하 소설은 엉뚱하고 기발한 발상에 그치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풍속과 문화 코드가 깔려 있기 때문에 현실을 참신하게 조명하고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 평론가는 김영하 소설 속의 다채로운 메뉴를 이렇게 정리했다. 나르시시즘, 악마적 탐미주의, 에로티시즘, 물화된 성과 욕망, 급진적 허무주의, 변형된 후일담, 멜로와 신파, 댄디즘, 키치, 판타지.

김영하 소설의 재미는 언어와 국경의 경계를 넘어서도 인정받았다. 프랑스에선 이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주목을 받았다. 북한에서 잊힌 남파 간첩의 하루를 다룬 장편 『빛의 제국』 불어판은 현지 주요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르몽드는 “단지 야심에 찬 스파이 소설이 아니라 평범한 인생과 그 내면의 욕망에 대한 과감한 찬가이자 저항할 수 없는 소설”이라고 전했다.

▲김영하

김영하는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낙관적 입장과 자신감을 밝혀왔다. 그는 독일에 가선 “한국 독자는 독일 문학의 주요 작품을 읽고 있는데 독일 독자들이 한국 문학을 모른다는 것은 그 만큼 정신적으로 손해가 아니냐”고 받아쳤다. 한국 소설이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그는 “한국 문학과 영화에 잠재된 프랑스적 기원 때문이 아닌가”라고 했다. “알베르 카뮈 등의 실존주의 문학이 전후 우리 문학에 끼친 영향이나 누벨바그 등의 영화운동이 홍상수, 김기덕에 끼친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미디어 학자 마셜 맥루한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이 될 것이다. 이들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지만 어디에도 집은 없을 것이다.”

김영하야말로 맥루한이 예견한 21세기 디지털 노마드처럼 살아왔다. 그는 2008년 서울의 살던 집을 처분하고 나라 바깥으로 나갔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돌아다니다가 미국 뉴욕과 보스턴에서 강연을 하고 캐나다 밴쿠버에서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 뉴욕에서 오래 머물며 소설을 썼다. 귀국해선 서울을 떠나 부산에 살고 있다.
김영하는 지금껏 “1년에 1만부 씩 10년 동안 팔리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해왔다.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상태에서 쓰고 싶은 소설을 계속 쓰겠다는 자세였다. 실제로 김영하는 젊은 열혈 독자들을 적지 않게 거느리고 있다. 그가 홍대 앞 카페에서 유료 낭독회를 열었을 때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독자들이 몰려들었다.

김영하는 올 여름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을 내 문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대중성도 넓히는 효과를 거뒀다. 출간 3개월 만에 7만5000부 가량 나갔다고 한다. 김영하는 얼마 전부터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뉴욕타임스에 고정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첫 칼럼에서 그는 “21세기인 지금도 한국 경영인들은 전 세계의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경영상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점쟁이들에게 자문을 구한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몇몇 재벌 회장들이 글로벌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남몰래 풍수와 관상, 명리학에 의존해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고 꼬집은 것이다.

김영하는 최근 인터뷰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음…… 잠수함? 그걸 타면 나를 저 깊은 곳에, 평소에 갈 수 없었던 곳으로 데려다 주는 것.” 김영하는 요즘 신작 소설을 구상 중이거나 집필 중일 것이다. 그가 탄 잠수함이 언제 물 위로 떠오를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