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현길언    © 운영자

집안에서도 둘째로 심술쟁이 악동으로 동네에 소문이 났고, 조상 숭배가 철저한 집안의 가풍을 어기듯이 어릴 때부터 교회를 드나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제주 옛날이야기를 즐겨 들으면서 자란 나는 성경 이야기에 빠졌다. 내 문학의 저변에는 제주설화와 기독교가 양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모순이지만 버릴 수 없는 내 것이다.
이러한 내 모습은 내 글쓰기에 지금도 작용하고 있다. 내가 학문에 매력을 갖게 된 것은 제주설화때문이었다. 첫 저서도 제주 설화를 분석하여 해석한 『제주도 장수설화』(홍성사, 1981)이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성경을 문학적으로 읽는 작업에 매달려 있다. 그 결실이 『문학과 성경』(한양대출판부, 2002)이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고 제주 설화에서 떠난 것은 아니다. 올 해 안에 첫 저술을 보완해서 인문학으로서의 설화연구서를 낼 계획이다. 성경과 제주설화, 이 양편에 내 문학이 있고, 내 인생이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드나들었던 교회가 내 삶의 자양이 되어 예수를 믿게 되었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서울의 한 교회의 중직인 장로가 되었다. 그러나 난 아직도 설익은 신앙에서 허둥대고 있다. 내가 속한 한 학회에서는 내가 성경에 대한 문학적 관심을 자주 이야기하기 때문에, 철저한 신앙으로 무장된 사람으로 생각한다. 제자들도 나를 까다롭고 냉정한 교수로 생각하지만, 나만큼 허술하고 정에 약하고 원칙에서 빗나가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러한 밖과 안의 엇갈림은 나를 늘 허둥대게 만들었고, 결국 어느 곳에도 탄탄히 자리 잡을 수 없는 정신적 변두리인으로 머물게 만들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할 때쯤 되어서 작가이면서 문학을 연구하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되었고, 그럭저럭 보낸 대학 생활을 보충하기 위해 대학원을 갔으나, 공부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석사 학위를 받고 고향 고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대학입시 전담 교사로서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그 와중에서도 대학 강사로 출강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몇 번이나 문학과 학문에의 꿈을 포기할까 했고, 과중한 학교 일과 문학적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강박관념, 오랜 객지 생활 때문이었는지, 건강이 무너져 어려운 수술을 받기도 했으나, 번잡스러운 일들은 나를 따라다녔다. 담석증으로 담낭까지 잘라내어, ‘쓸개 빠진 놈’이 되어 버렸는데, 그래도 생활은 ‘쓸개 빠진 놈’으로 여유작작하지 못하고, 오히려 ‘쓸개를 두어 개 더 달고 사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내가 40대부터 사람들에게 받는 인사는 ‘요즈음 건강은 좋은가’라는 인사였다. 노인들이 받아야 할 그 인사를 받았으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만큼이라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건강에 대한 주변의 걱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한다.
변두리에서 맴도는 처지인데도 내 뒤에는 항상 일들이 따라다녔다. 나는 주어진 일을 피하지 못하였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유약한 성미라서 그런지, 고교 교사 시절에도 그랬고, 잠시 쉬려고 도피했던 교육행정기관에서도 그랬고, 12개월 단기 군 복무 기간에서도 그랬다.
변두리 인생은 문학의 길에 들어서도 여전했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불혹의 나이에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는데, 나는 대학 교수로서도 소설가로서도 어느 한쪽에 정착할 수 없어서 왔다 갔다 하면서 그렇게 살아 왔다. 그런데 이러한 변두리인 의식이 내 신앙과 문학에 잘 맞는다는 논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기독교인은 지상의 가치에서 보면 주변인이고, 문학 역시 중심이데올로기에서 보면 주변적 가치를 추구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신앙인으로서의 주변성과 소설의 본질로서의 주변성이 만나는 접점을 찾게 되었다.
한국의 변방 제주에서 살아온 나의 체질, 그리고 중심부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그 극복을 도모하려는 고통이 내 문학의 토양이 되었고, 신앙과 살아온 시간과 내 일인 소설, 이것들을 결국 ‘주변성’이라는 틀에 모을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나를 못 견디게 해온 변두리 사람의 처지와 그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주신 야훼께 감사하고 있다.
내가 이룬 문학이 빈약하더라도 그것이 내 삶과 생각과 더듬어온 삶의 과정에서 의미를 얻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 동안 창작과 연구가 내 신앙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이러한 일들이 단순한 삶의 방편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허망한가를 생각했다. 대학에서 소설을 강의하면서도 소설 쓰기와 소설 읽기 연구를 하나로 합치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고 했다. 소설 연구를 통해서 창작 방법을, 소설쓰기를 통해서 작품의 읽기와 연구가 보다 폭 넓게 이룰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소설 쓰기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을, 이어서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한국현대소설론』을 썼다. 소설 읽기와 쓰기에 대한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소설의 본질 문제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는데, 그것을 충족해주는데 성경이 크게 도움을 주었다. 문학의 개념으로 정리하자면 ‘리얼리즘 정신’이다. 창작이나 연구나 인간과 자연과 사회와 역사를 탐색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막연하게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문학의 본질로서의 리얼리즘 정신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문학과 그 연구가 결국에는 인간과 세계의 탐색이라는 넓은 의미의 인문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여기에서 학문과 문학의 몫과 문학의 주변성이 감당해야 할 부분도 찾게 되었다. 학문은 인간과 세계의 실체의 중심부적인 것밖에 탐색할 수 없는데, 이 한계를 소설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치와 이데올로기와 통계적 의미에서 벗어난 주변적인 것, 더구나 인간 존재성과 그 실체는 학문의 방법보다는 소설적 형상화를 통해서 그 탐색이 가능하다. 그리고 작가가 인식한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재구성해 놓은 작품을 연구함으로 인간과 세계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 문학 연구의 몫이다. 이러한 창작과 그 연구의 인문학적 의미는 성경과 만나는 접점이기도 하다.
결국 성경을 통해서 문학 창작과 연구가 기독교 세계관과 아주 가깝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성경은 신과 인간의 존재성과 인간의 역사의 실체와 그 회복을 언어의 구조로 형상화한 작품과 다르지 않다. 그 책은 인간들이 써놓은 문학의 총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회복을 위하여 그 존재성을 탐색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학과 모든 학문의 기독교적 의미가 있다. 이 틀은 내 창작과 문학 연구의 중심이다.
그 동안 써온 제주 4·3 사태와,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진실의 문제,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관계성’의 문제도 결국 이 큰 틀의 한 부분이다. 창작이나 연구나 그것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대응의 한 양식이기에, 설사 그 결과가 타인의 박수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고 족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광대하고 깊은 인간과 세계의 실체에 대해 인간이 탐색한 결과가 얼마나 하찮겠는가. 그렇다고 그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것은 모순처럼 생각되는 불가사의한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작가와 야훼를 믿는 사람은 땅에서는 영원한 주변인이다. 그러기에 나는 주변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내 처지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