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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아웃사이더들

참 곤혹스런 ‘문패’다. ‘이 계절의 문학’이라니. 최근 몇 달치 문학을 총정리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을 피할 길 없다. 그러나 누가 무슨 소설을 쓰고, 무슨 시를 짓고 하는 식의 ‘동향보고서’는 고심 끝에 피하기로 했다. 검색어 하나로 순식간에 답을 얻는 인터넷 시대에 문인들의 신작들을 죽 열거하는 일은 무모하기도 하려니와 무성의하다는 오해까지 덮어쓸 수 있겠다.
문학 담당 7개월째. 기자 생활 12년 동안 손바닥 뒤집기 하듯 출입처를 바꿔온 터라 변신에 능한 일류 배우가 다 됐다고 생각했지만, 웬걸 문학판은 또 달랐다. 시쳇말로 ‘코드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취재의 가시권에 둬야 할 작가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나의 명함 돌리기는 아마 앞으로 1년이 더 지난 뒤에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어디를 가든 ‘비주류’ 혹은 ‘아웃사이더’에 관심을 두는 편이다. 그것이 당당한 고집과 합당한 소신에 의한 결과라면 얼마든지 그쪽을 공대할 용의가 있다. 이번 봄에 ‘아웃사이더’ 소설가 5명을 만난 건 좋은 경험이었다. 분명히 밝히자면 여기서 아웃사이더란 말은 그 당사자의 작품 혹은 성품에 결함이 있다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것이 행실이든, 작품이든 주류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에서 이 용어로 통칭했을 뿐이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내 이름과 겨우 한 획 차이여서 평소 심정적 거리가 가까웠는데 이제 ‘작가와 독자’라는 평범한 관계에서 ‘취재원과 기자’라는 1촌의 단계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대표작 『태백산맥』이 지난 3월 국가보안법의 사슬을 벗었다. 우리 문학사에 기록될 일대 사건이었다. 전화를 넣자 그는 “내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은 느낌”이라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내친 김에 그를 따라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었던 전남 벌교를 다녀왔다. 때가 때인지라 일반 문학기행과는 의미가 달랐다. 소설 속의 현장을 누비면서 그가 말했다. “나는 우리 문단이 권력화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태백산맥』은 평론가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어요. 특히 창비 쪽 평론가들은 이 대하소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요. 『태백산맥』을 살려낸 건 독자들이었습니다.”
문단의 주류세력으로부터 낙점을 받지 못했던 그는 오로지 작품으로 조·정·래 이름 석자를 새겼다. 그러나 그를 아웃사이더로 가두려는 기운은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이른바 주류 언론들의 푸대접이 그것이다. 검찰의 『태백산맥』 무혐의 처분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몇몇을 빼고는 상당수 일간지들이 이 사건을 참 인색하게 다뤘다.

영원한 이방인 이외수
그를 기인이라 칭하는 연유는 아마도 8할이 외모 탓일 것이다. 치렁치렁 기른 머리와 콧수염은 단박에 그를 별종으로 낙인찍게 만든다. 올해로 문학 인생 30년. 봄비 내리던 어느 날 그를 만나러 춘천으로 갔다. ‘춘천 시대’의 막을 내리기 직전이었다(그는 자신의 삶과 소설의 터전인 춘천을 떠나 얼마 전 강원도 화천으로 거처를 옮겼다).
직접 만나본 그는 기인이기는커녕 너무도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작품에 관해서는 지독할 만큼 완벽주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곧 나올 신작 소설에 매달려 진을 다 빼버린 나머지 꿀벌의 액을 담은 ‘봉침’을 맞고 기진맥진해 있었다. 자학한다 싶을 만큼 글쓰기에 매달리는 이외수는 “글을 깎고 다듬는 데 남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냈다 하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그의 독자 침투력도 이만하면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편견은 접자. 그는 기인이나 천재라기보다는 싸이월드에서 ‘싸이질’을 하고, 소설 내용을 리얼하게 하기 위해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도전하기도 하는 지독한 노력파였다. 새로 터 잡은 화천에서 제2의 작가 인생을 펼칠 그가 앞으로도 변치 않는 문단의 기대주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 장르 개척자 김용규·성규 형제
작가의 대중적인 지명도가 한참 떨어지는데다 출판사마저 신생이라면? 볼 것도 없이 시장에서 남아나기 힘들다. 그래서 이 두 형제의 소설 『다니』(지안) 출간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통과의례와도 같은 ‘등단’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이들을 주목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작품 때문이었다. 전혀 색다른 재미를 맛봤다.
먼저 이 작품은 ‘지식소설’이라는 낯선 외피를 두르고 있다. 소설적 구성 요소에다 인문·자연과학적 지식을 이식해 전혀 색다른 맛을 낸 것이다. 침팬지들간의 집단학살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폭력성을 성찰한 작품으로 형제가 공동집필로 일궈냈다.
서울 청파동 자택에서 만난 두 형제에게 “앞으로 이런 소설을 계속 낼 것이냐”고 물었더니 “독자들이 이번 작품을 알아준다면 힘을 얻어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을 흐렸다. 재능있는 마이너 작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잔처럼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엽기적 인물묘사로 주목받은 이평재
40대 중반의 주부인 그는 소설의 지평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7년 전 등단해 두 번째로 펴낸 소설집 『어느날, 크로마뇽인으로부터』(민음사)는 초현실적이고 비가시적인 것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요리해낼 수 있는지를 선보인 ‘교본’이다. 그가 구현해낸 환상 문학은 기특한 상상력과 글재주에 힘입어 장르 문학을 별로 대접하지 않는 국내 문단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원래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문단에서 별로 친한 이가 없다. 작가 윤후명, 이인성 두 분을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을 뿐 문단의 어느 모임에도 끼지 않는다고 했다. 성격 탓이려니 하겠지만 문단 내부의 은근한 왕따 의식도 있는 것 같다. 그는 옛날 한 문인들 모임에 갔다가 “고생한 적 없고 배 고파본 적도 없는 당신이 무슨 문학을 한다고 그래”라는 비아냥을 듣고는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더 열심히 작품을 쏟아낼 생각”이라고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웃사이더’는 주류가 상대를 타자화(他者化)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은 모든 아웃사이더 작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