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문인보국회를 대체하기 위한 조선문학건설본부의 핵심인물이었던 임화(왼쪽),이태준(가운데)과 이들에 반발해 조선 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건설했던 윤기정(오른쪽)© 운영자

하지만 이러한 흐름도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지는 못하였다. 조선문학가동맹에서 주최한 조선문학자대회가 그렇게 널리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를 주최하였던 조선문학가동맹에 대해서는 남쪽중심주의가 강하게 지배하여 온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물론 해방 직후에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 결합하여 조선문학가동맹이 결성되는 과정과 이후 조선문학자대회 과정에서 조선문학건설본부 출신들이 주도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였기 때문에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출신들이 반발하여 갈등이 터지는 과정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삼팔선 이남에 한정된 극히 편파적인 이해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파악에서는 그 중요한 1945년 12월 13일의 의미가 제대로 부각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회의는 삼팔선 이남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이북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라 그 양쪽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1945년 12월 13일 날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방 직후 삼팔선 이남의 문학계 동향과 더불어 삼팔선 이북의 문학적 정황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해방을 맞이한 작가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문학가 단체의 수립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일제 말에 문학가조직이었던 조선문인보국회가 해방되기 전까지 건재했기 때문에 이를 어떤 식으로 해체하고 그것과 단절하는 것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문인보국회의 주축이었던 이들이 하나같이 일본 식민주의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던 이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해방 후에 약간의 모습을 달리한 채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문학인으로서는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최재서를 비롯하여 유진오, 김용제 등을 대신하여 새로운 문학가 단체를 만드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했다. 특히 일제의 탄압 하에서 불가피하게 카프를 해산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극복도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 임화와 이태준 등이 중심이 되어 1945년 8월 16일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수립하였다. 이 단체는 조선문인보국회를 근절시키고 그것과의 단절을 행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쫓겨 적절한 절차를 밟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이후 갈등의 씨앗을 남긴다.
과거 일제하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학단체였던 카프가 일제의 압살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산된 터라 일제가 물러간 자리에서 마땅히 카프라는 조직의 성격과 위상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토론이 선행되어야 했다. 카프와 프로문학이 지녔던 문제점에 대해서 구성원들 사이의 민주적 토론이 이루어져야 이에 대한 극복의 대안이 구체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문인보국회와 단절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쫓긴 나머지 이러한 지적 절차를 밟지 않았다. 당시 임화를 비롯한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추진한 문학인들은 이러한 절차를 과거 일제하에서 거쳤다고 대단히 주관적으로 보았던 때문에 이러한 손쉬운 선택을 하고 말았다. 한달이 채 못 되어 이러한 행동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고 이는 새로운 문학가 조직의 구성으로 이어졌다. 1945년 9월에 만들어진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 그것이다. 한효, 윤기정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은 조선문학건설본부의 방식에 대해서 강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독자적인 조직을 설정하였다.
두 개의 문학단체가 대립하는 동안에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었다. 건준 중심의 정부 건설이 인민공화국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미군정의 견제가 만만치 않게 되었다. 미국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반도가 만들어지는 것을 원하였기 때문에 주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주장과 방향을 고수하였다. 현실적으로 일본군을 무너뜨리고 들어온 미군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고 새로운 독립 국가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미군이 인공을 하나의 정당 정도로 간주할 뿐 정부를 구성할 대안으로 보지 않기 시작한 것은 당시 양 문학 단체를 만들었던 사람들에게는 여간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승만과 김구를 대표로 하는 상해 임정 세력이 속속 국내로 들어오고 이들이 미군정의 후원을 얻어가기 시작하는 터라 상황은 더욱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주변으로부터 문학계의 통합이 강하게 요구되기 시작하였다. 두 단체가 분열되어 있는 것은 미군정과 이에 연줄을 대고 정권을 인수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빌미만 줄 뿐이라는 사회적 민중적 압력이 거세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1945년 12월 3일 양 단체의 대표들이 회합을 가져 합동 논의를 하였고 12월 6일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11명이 합동위원회를 열고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에 합의를 보았다. 이것이 조선문학가동맹의 시작이다. 당시의 합동 성명은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실질적 방향타 구실을 하는 것으로 매우 역사적인 문건이다.

우리 문학운동의 정당한 노선과 기본 방향의 모색과 수립에 있어 우리의 갖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내의 의견의 차이로 말미암아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 일시적이나마 분립되었다는 것은 극히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중략-인용자) 두 단체를 해체하고 조선문학가동맹으로서 새 출발을 하는 바이다.

조선문학가동맹의 실질적 창립은 12월 6일 합동회의와 성명서 발표로 이루어진다. 1946년 2월의 조선문학자대회는 바로 이 조선문학가동맹이 주최한 것이다. 그러면 12월 13일은 어떤 점에서 의미를 갖는가? 실제 이 날은 조선문학가동맹의 총회였기 때문에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통합으로서의 조선문학가동맹의 결성이란 차원에서 보게 되면 이 날의 총회는 어쩌면 형식적 완결성를 얻는 절차 정도로만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그 동안 해방 이후의 문학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1945년 12월 13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냥 흘러 보내거나 혹은 아주 제한된 의미로만 보았던 것은 이런 식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날의 회의는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을 추인하는 총회라는 그런 형식적 절차에 그친 것이 아니다. 이 회의는 그 동안 한반도에 거주하는 문학인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삼팔선 이남과 이북의 미소 군정의 확립과 이로 인한 분단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남북 문학자의 노력의 결정체인 것이다.

▲ 조선문학가동맹 총회를 위해 서울을 방문한 이북의 작가들. 왼쪽부터 최명익, 한설야, 김사량, 이기영     © 운영자

1945년 12월 13일 회의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삼팔선 이북에서 한설야를 비롯한 19명의 작가들이 서울에 내려온 점이다. 해방 이후 삼팔선 이북에서도 독자적인 문학가 조직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결성된 평남예술연맹은 결코 삼팔선 이북 전체를 대표하는 문학가 조직을 표방하지 않았다. 평양이 고향이었던 최명익과 중국 태항산 망명지에서 고향 평양으로 온 김사량 등이 주축이 되었던 이 조직은 조직명 그대로 평안남도 지역 문학인들을 대표할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평양은 단순히 평안남도의 중심도시의 성격에 머물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평양은 삼팔선 이북 전체를 대표하는 도시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따라서 평양의 문학 조직이 단순히 평양이나 평안남도를 대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삼팔선 이북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조직으로 재편성될 것을 주변 정치세력으로부터 끝없이 종용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평양에 머물고 있던 이들 문학인들은 전체 판도에 대한 이해 없이 가볍게 나설 성향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또한 평양 이외의 함흥의 한설야, 철원의 이기영 등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삼팔선 이남과 이북의 통합을 고려하였기 때문에 쉽게 나서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삼팔선 이북의 문학인들은 향후 남북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독립국가 수립의 추세와 발맞추려고 신중하게 접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두 단체의 통합 소식 이후에 남쪽의 문학가들과 향후 남북이 통일독립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향을 견지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폭넓은 의견 교환을 위해 남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당시 이들이 서울로 내려올 때 삼팔선 이북의 정치세력은 그렇게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이 중심이 되어 이미 조선문학가동맹의 조직결성이 선포된 후라 삼팔선 이북의 문학인들이 독자성을 상실하고 남쪽에 흡수되는 모양이 될 것을 우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북의 문학가들은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통일독립국가의 건설에서 문학인들이 해야 할 역할을 심대하게 고려하였기 때문에 이런 적지 않은 난관을 넘어서서 서울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12월 13일의 모임은 단순히 조선문학가동맹의 결성을 추인하는 형식적 절차를 밟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분단된 상태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사려 깊은 노력이라고 규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 회의 이후 남북의 문학가들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으로 되고 말았다. 이 회의에서 결정된 조선문학자대회는 결국 삼팔선 이북의 문학인들이 참여하지 못한 채 진행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조선문학자대회가 아니고 남조선문학자대회가 되어 버렸다. 또한 이 회의의 주도성 문제로 하여 남쪽 문학인 사이에도 분열이 야기되었고 해결과정에 불만을 느낀 몇몇 문학인들은 삼팔선 이북으로 넘어가게 된다. 또한 이 회의를 주도했던 남쪽의 조선문학가동맹의 구성원들이 1947년 말 이후 대거 월북하게 되었을 때 이 조선문학자대회 때의 편파성이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조선문학자대회는 그 외적 규모와 내용에도 불구하고 반쪽의 대회가 되어 버렸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남북의 문학가들이 온전하게 만나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고 토론하던 12월 13일의 의미는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래지 않아 남북의 문학가들이 만날 것이다. 우여곡절로 하여 미루어졌던 남북의 작가회의가 곧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1945년 12월 13일의 만남에서 꼭 60년이 지난 후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만남을 생산적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과거 문학가들이 걸어온 길을 남과 북의 통합적 시각에서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