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날로부터 정확히 1백 년 전인 1905년 5월 12일 함경북도 명천(明川)에서 평론가이자 이화여대 문리대 학장을 지낸 소천(宵泉) 이헌구(李軒求)가 태어났다. 소천은 한국 현대문학의 여명기인 1920년대 중반 정인섭, 김진섭, 이하윤, 김광섭 등 일군의 동경 유학파와 손을 잡고 해외문학연구회를 결성, 외국의 문학작품과 문예사조를 국내에 소개하여 한국 문학계의 시야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문학사에서는 이들 해외문학연구회에 가담해 활동했던 문인들을 ‘해외문학파’라는 말로 통칭한다.
「앙리 바르뷔스의 일생」 「불란서문단종횡관」 「대전과 불란서문학」 등의 평문을 통해 특히 프랑스 행동주의 문학의 소개에 심혈을 기울였던 소천의 문학활동은 1925년 보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불문과로 진학해 이하윤, 김진섭, 정인섭 등에 의해 조직된 해외문학연구회에 합류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후 그는 신흥문학연구회, 극예술연구회 등의 단체를 잇따라 조직하며 폐쇄적인 국수주의 문학과 도식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맞서 순수문학, 자유문학을 옹호하는 정열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그는 보성학교 동문이기도 한 임화와의 논쟁을 통해 평론가로서의 입지를 굳히는데, 김치수 교수는 이러한 소천의 문학의 기저에는 “민족의 독립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으면서, 문학의 보편성에 대한 확신도 포기하지 않은 문학이 이상적인 문학”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파악한다.
소천의 문학인생을 되돌아보며 그의 친일 활동을 생략하고 지나가기는 힘들다. 소천은 태평양전쟁이 절정에 달하던 1940년대 초반 일제의 어용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와 조선문인보국회의 상무간사와 평의원 신분으로 여러 편의 친일 칼럼을 발표한 탓에 2002년 민족문제연구소,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 등이 발표한 친일문학인 42명의 명단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불문학을 전공한 이의 글답게 당시로서는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확하면서도 문학적인 향취가 물씬 풍겼던 그의 문장이 일제의 야만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됐다는 것은 이유야 어쨌든 그를 위해서나 한국문학사를 위해서나 커다란 비극이었다.
소천은 조선일보, 민주일보, 민중일보 등의 언론계 활동과 잠깐 동안의 공보처 차장직을 거쳐 1954년부터 이화여대 문리과대학 교수를 역임하게 된다. 소천비평문학상은 소천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9년 제정됐는데 이 상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소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문학상이 하나 더 있다. 아동문학가 강소천 선생을 기념해 만든 소천아동문학상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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