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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문학상을 넘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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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제도의 한 귀퉁이를 이루는 문학상의 부문들은 그 사회가 중요성을 부여하는 문학 장르를 드러내면서 그 장르의 글쓰기를 북돋운다. 지금 한국에서 문학상들은 대체로 시와 소설, 평론에 주어지고 있다. 그것은 한국 문단에서 이 세 장르가 문학을 대표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단 바깥에서 이뤄지는 쓰기와 읽기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시는 독자의 수에서 소설에 크게 못 미친다. 시인들의 수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의 언어는 문단 바깥에서 점점 덜 향유되고 있다. 그래도, 문학의 탄생 이래 이 장르에 부여돼 온 오래고 특별한 존엄을 생각하면, 시를 대상으로 한 문학상이 흔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평론은 사정이 크게 다르다. 평론의 독자는 시의 독자에 견주어도 훨씬 적거니와, 평론이 시나 소설에 견줄 만큼 문학의 순금부분을 대표해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평론문학상이 적잖은 것은 문학장 안에서 평론가들이 누리고 있는 권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평론이 시, 소설과 함께 문학 영역을 삼분하고, 문학상이라는 인공호흡기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부정은 모든 생물체에게 힘든 일이어서, 당장 평론부문의 문학상들을 없애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평론을 포함한 논픽션문학 일반을 문학상의 한 부문으로 정하면 어떨까? 따지고 보면 문학평론이라는 이름의 에세이는 논픽션문학의 한 갈래다. 헤아릴 수 없이 쏟아지고 있는 논픽션문학 작품들 가운데 오로지 평론에만 문학상을 주고, 그로써 이 장르의 위엄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기행문이나 일기나 자서전이나 편지글이나 평전이나 르포 같은 갈래가 문학평론보다 덜 문학적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논란이 따르기는 했지만, 처칠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회고록을 통해서였다. 베르그송도 철학적 에세이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우리 쪽으로 눈을 돌려도, 문기(文氣)를 그윽히 품고 있으면서도 단지 그것이 시도 소설도 문학평론도 아니라는 이유로 문학공화국의 시민권을 얻지 못한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얼른 떠오르는 것이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수태의 『어른 되기의 어려움』, 김상환의 『해체론 시대의 철학』, 진중권의 『앙겔루스 노부스』 따위다. 이들 저자의 이름이 문인주소록에 올라있지 않고 이들 책이 가장 좁은 의미의 문학에서 비껴있다 해서 이 작품들을 문학에서 제외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더 우스운 일은 같은 저자가 같은 문체로 쓴 책이 다루는 대상에 따라 문학이 되기도 하고 문학 아닌 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유종호의 많은 평론집이 문학에 속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의 회고록 『나의 해방전후』를 문학작품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문학상이 주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구별은 얼마나 자의적인가?
문학상의 한 부문을 평론에서 논픽션문학 일반으로 넓혀 여러 갈래의 글에 문학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은 글쓰기 자체가 문학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그럼으로써 모든 분야의 글이 아름다움과 정확성을 지향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제도권 문학으로부터 시민권을 얻지 못한 분야의 글은 아무래도 미적 세련과 문법적 단정함에 신경을 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어의 모범이라고 할 만한 글들이 가장 좁은 의미의 문학 쪽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위에서 철학자 베르그송의 예를 들었거니와, 바그너나 베를리오즈 같은 작곡가, 드골 같은 정치가도 훌륭한 문장가들이었다. 그것은 유럽에서 한두 장르가 문학을 독과점하고 있지 않다는 사정, 특히 문학을 좁게 이해하는 문학평론이 제도권 문학장에서 과잉대표되고 있지 않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뛰어난 글이 먼저 있고 거기에 인정(문학상)이 따르는 것이 상례이지만, 권위 있는 문학적 인정이 어떤 분야에 주어질 때 그 분야에서 뛰어난 글이 나오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문학평론의 특권을 폐지하고 평론을 포함한 논픽션문학 일반을 문학상의 한 부문으로 정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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