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대산문화
 
*나의 아버지 - 아버지의 뇌출혈과 「성북동 비둘기」
 

많은 문인들이 그러하듯이 아버지도 약주와 담배를 즐겨 하셨다. 특히 약주는 동료 문인들하고 밤을 세울 정도로 드시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그런 모습은 내가 대학을 들어가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소에 거의 말이 없으신 분이었다. 자식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머니하고도 거의 말이 없으셨다. 어머니와 좀더 다정한 모습을 바라기는 하였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당시 나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언니도 같이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렇듯 문학을 전공하는 우리 자매에게도 그다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형적인 시골분이셨던 어머니에게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문학도로서의 아버지가 특별하게 무슨 말을 살갑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듯 평소에는 거의 말이 없으신 분이었는데 약주를 과하게 들고 오신 날에는 자고 있는 당신의 자식들을 모두 깨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시곤 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아버지의 문학관에서부터 신변잡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자다 일어나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좋았고 비록 이해는 잘 하지 못했지만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서 열심히 귀 기울이곤 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그래서 때로는 약주를 많이 드신 날이 기대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건강이 염려되었기에 내가 늘 아버지께 약주를 줄이시라고 칭얼거리면 그럴 때마다 아무 말 없이 빙긋이 웃기만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964년경에 『자유문학』이 운영난으로 휴간되자 아버지는 적잖은 정신적 충격을 받으셨고 이로 인해 고혈압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주량은 줄지 않았으니 가족들의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야구를 좋아하셨다. 더욱이 마음이 심란할 때에는 더 자주 야구장에 가서 야구경기를 관람하시곤 했다. 마음이 맞는 문인들끼리, 혹은 혼자서도 자주 가셨다. 그러던 중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1965년 4월경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우리는 성북동 저택에서 살고 있었는데 사건이 일어난 날 아침에 안방의 천정에 금이 갔다. 지진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주변에서 공사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버지가 서울운동장, 즉 지금의 동대문운동장으로 야구경기를 보러 간다고 하셨다. 나를 비롯하여 모든 가족들은 징조가 좋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이를 말렸으나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며 아버지는 고집을 굽히지 않으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홀로 야구경기를 관람하러 서울운동장으로 가셨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집안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주치의처럼 우리 집안을 돌봐주던 한의사 선생님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내용인즉 서울운동장에서 야구경기를 관람하던 아버지가 뇌출혈을 일으키며 쓰러지셨다는 것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혼자 야구경기를 보시다 관람 도중에 뇌출혈 증세로 인해 혼절하셨다. 하늘이 도왔는지 우연히 한의사 선생님도 같은 경기를 관람하던 중이었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모여있길래 가 보았더니 사람이 한명 쓰러져 있는데 그게 아버지였다는 것이다. 한의사 선생님은 아버지를 국립의료원으로 옮기고 집에 연락을 주셨다.

그 당시 언니는 프랑스로 유학을 간 상태여서 어머니와 나는 두 남동생과 함께 국립의료원으로 향했다. 성북동 집과 국립의료원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동안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 택시에서 내려 정신없이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당연히 면회도 안 되었고 담당의사는 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현재 환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하였다. 가족들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오전에 야구경기를 관람하러 가시는 아버지를 끝내 말리지 못한 점과 같이 가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며 흐르는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샌 나는 다음날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진 아버지는 마치 잠을 자는 듯이 조용히 눈을 감고 계셨다. 지금이라도 “아버지” 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그 당시 어머니는 지병이 있으셨고 아버지의 일로 충격을 받으셔서 병세가 악화되었다. 그래서 우선 집으로 모셨고, 그렇게 되니 아버지의 병간호는 내가 하게 되었다. 대소변을 받아가며, 조석으로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했다.

한 일주일정도 되었을까 담당의사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뇌출혈로 생긴 혈액은 뇌의 조직으로 모두 스며들었지만 이후로 혈압이 상승하지 않고 있고 이런 경우 하루나 이틀을 넘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가친척들에게 이를 알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머니를 비롯하여 일가친척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달하였다.

그날 저녁에 일가친척들이 모두 병실로 모였다. 그 중에서 작은 숙부님이 유리병에 이상한 액체를 담아 가지고 오셨다. 언뜻 보아도 한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숙부님이 말씀하시길, 가지고 오신 약은 뇌출혈로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기적의 약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차피 병원에서도 포기했다면 한번 약을 복용해 보자고 하셨다. 긴급하게 가족회의가 열리고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약을 복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방법이라도 시도해봤을 것이다.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약을 먹이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잘못하면 기도가 막힐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조금씩 먹여야 한다. 또한 병원에서 알게 되면 이 또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에는 의사들이 미국인들이 많아서 이런 부분에 대해선 절대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밤부터 작은 숙부님이 아버지께 그 이름모를 한약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나는 병실 입구에서 속칭 ‘망’이라는 것을 보았다. 의사가 회진을 한다던지 간호사가 들어올라치면 조금 시간을 벌면서 한약을 감추곤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창문으로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아왔다. 한약병은 거의 비워있었고 작은 숙부님과 나는 탈진상태에 이르렀다.

그 이름모를 한약의 효과였을까? 아버지의 얼굴에 점차로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긴급하게 의사를 불렀다. 기적적으로 병세가 호전되고 있었다. 계속 낮았던 혈압이 점차로 상승했고 긴장이 풀리면서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날 저녁에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나를 쳐다보시면서 나지막하게 “너 왔니” 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행스럽게도 후유증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다리만 조금 불편한 정도였고 지팡이에 의지하시고 걷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 후로 한 일주일 정도를 더 입원하셨고 이후 퇴원하여 집으로 귀가하셨다. 그 이후로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두 번 정도 더 고비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행히도 금방 회복하시곤 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으셨다.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많으셨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약주도 끊으시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예전에 약주를 드시고 우리 형제, 자매들을 깨워 열변을 토하시던 모습이 떠오르고 그 때 그 모습이 못내 그리워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던 중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펜을 든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전에 비해 기력은 좀 떨어져 보였지만 단아하게 앉아서 원고지 앞에 펜을 든 아버지의 모습은 그 어떤 때보다 활기에 차 있었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 당시에 집필한 시작품이 아버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성북동 비둘기」이다.

당신께서 돌아가신지 어언 30여년이 돼 가지만 아직까지도 그때 아버지를 살렸던 그 이름모를 한약이 어떤 약인지 모른다. 숙부님들도 모두 돌아가시고 이젠 아무도 그 약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물론 그 약이 진짜로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사회생이 나와 숙부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염원과 정성에 기인한 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이러한 엉뚱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성북동 비둘기」는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나도 칠순을 넘어선 할머니가 되었다. 하지만 가끔씩 그 때 일이 떠오르면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마치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인 것 같아 혼자서 조용히 눈을 감고 그때의 일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무뚝뚝하지만 자상하시던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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