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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 외로움을 벗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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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기억하는 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열한 살 때였고 그 만남은 서먹서먹하기보다 냉랭하였습니다. 수개월 걸려 38선을 넘어 온 소년을 보고 너 많이 컸구나, 넘어오느라 고생했지,라든지 아니면 그냥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버리지 못합니다. 소년을 못본 듯이 아무 말 없이 집안으로 들어가신 아버지는 차라리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사회적으로 알려진 공인이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렇게 공개하는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만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기 때문은 정녕 아님을 아버지는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아버지가 태어나신지 100주년에 이르러 아버지를 생각하는 간절함과 그리움이기도 하며, 부자의 정(情)을 새기지 못한 채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과 아픔이고 변명인지도 모릅니다.
그 소년이 이제 70을 바라보면서 아버지가 남긴 글 등을 통해서 다시 돌아보면 당신은 평생을 외로움(고독)과 함께 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됩니다. 외아들로 태어나 열세 살에 혼인하여 열여섯에 아버지가 되자 홀로 고향을 떠나 서울과 동경에서 지낸 학창 시절과 사회 생활, 2차 세계대전에 대학 졸업반인 둘째 아들을 잃은(전사) 슬픔, 6․25 동란 때 큰아들(세 아들의 아버지)과 헤어진 아픔, 소학교 다닌 아내와의 겉도는 부부생활 등등. 당시 신문학을 한 사람으로 촌부(村婦)나 다름없는 아내와 그래도 평생을 함께 한 것이 위안이 된다고 며느리에게 이야기한 아버지는 실로 외로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밤늦게 들어와 잠자고 아침 일찍 나서는 아버지에게 “이것이 가정입니까, 여인숙이지”라고 투정하는 아들에게 “이나마 한 집에서 같이 산다는 것을 고마워해야지”라며 스스로에게 화가 나신 듯하던 모습에서 외로움을 보았을 것입니다. 대리석이라는 별명도, 또 구상 선생께서 “한 평생 풍상 속에서도 한란(寒蘭)인 듯하셨네”라고 쓰신 비문의 한란도 어찌 보면 쓸쓸함, 외로움의 뜻이 담겨있다면 억지일까요.
아버지에게는 집이 안식처가 아니라 집밖이 오히려 안식처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버님, 중학교 시절 “똑똑함 보다 참됨이 소중한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저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리하셨듯이 어렵고 힘들거나 괴로울 때에도 늘 버팀목이 되어 오늘까지도 저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아버님 떠나시기 일년 전에 쓰신 마지막 육필일 「막다른 골목길에서」를 보며 눈물을 삼키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쓰신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을 옮겨 봅니다.
“내일도 미래도 그런 것에 구애됨이 없이 자연 속에 동화되어 생사를 초월하는 무한대 속에 나의 삶을 매끼는 것이다.
저 먼나라 동화의 세계가 나를 부른다.
그 속에 나의 편안한 잠을 찾아 호흡을 멈춘다. 나의 종말도 시작도 아닌 그런 경지로 나는 간다. 거기에 나의 참된 잠의 자리를 찾아서 쉬어야 한다”
아마도 쓰시고 싶은 마음을 다 쓰지 못한 채 펜을 놓은 듯싶은 이 글을 두어 달 전에야 찾았습니다.
뵙고 싶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실컷 나누고 싶습니다. 외로움이 혼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끼는 70을 바라보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아버님 평생의 그 외로움을 생각하는 못난 자식의 아픔이라고 받아 주십시오. 아버님의 외로움은 정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님, 그 높은 곳에서 더 큰 복과 낙을 누리시며 부디 편히 쉬시옵소서.
2005년 4월
아버님 탄신 100주년에 즈음하여
불효자 재복이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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