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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객 이주와 진도의 금골산

진도대교를 건너면 무쇠처럼 굳건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 금골산(金骨山)이 보인다. 비록 200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산이지만 그 강건한 기상이 돋보이는 산이다. 행락객이 먼발치에서 사진을 찍고 가지만, 이 산에는 유배객 이주(1468～1504)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다. 당시 서른한 살이던 이주는 김종직(金宗直)의 문도로 붕당을 맺어 국정을 비판하고 시사를 훼방했다는 혐의로 곤장을 백 대나 맞고 진도로 유배되었다. 이주는 철성 이씨(鐵城李氏, 固城李氏라고도 한다)로 고려 말 이래 명문가였다. 게다가 엘리트코스를 밟아나가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그러나 언관(言官)으로서 지나칠 정도로 강직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니, 연산군이 “이주 등은 분명히 나를 용렬한 임금이라 여겨 나의 신하가 되려 하지 않는구나”라고 전교를 내릴 정도였다. 결국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예전에 연산군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성종(成宗)은 나의 임금”이라 하였는데, 여기에 연산군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들어 있다는 죄목이 추가되었다. 이때 이주는 이종준(李宗準)의 은행정(銀杏亭)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그를 체포하러 사람들이 오는데도 태연자약하였다. 마치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한 것처럼. 이주는 80대의 장(杖)을 맞고 천애원지(天涯遠地) 진도(珍島)로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진도로 떠나기 전, 이주는 벽에다 “임금에게는 충(忠)을 잃고 어버이이게는 효(孝)를 잃어 인륜을 저버렸으니 바닷가 도깨비에게 몸을 던지겠노라”는 글을 썼다. 한강변의 살꽂이 다리에서 지인들과 헤어지면서 이주는 이렇게 시를 썼다.

전교의 고운 풀은 파랗게 자리를 깔아놓은 듯

저자도 바위틈의 꽃은 늦봄이라 지는구나.

한강물이 나와 함께 바다로 들어가니

흘러흘러 벽파나루에 닿을 수 있겠지.

箭郊芳草綠鋪茵楮子巖花落晩春

漢水與人俱入海可能流到碧波津

이주, 「전교에서 헤어지면서 주다 箭郊贈別」(『忘軒集』)

그리고 도성문을 나서 중랑천을 따라 살꽃이 다리가 있는 곳에서 친지들과 이별하고 배에 올랐다. 흘러가는 한강물을 따라 뱃길로 서해를 이르러 다시 벽파나루를 건너 진도에 들어섰다.

이주는 진도에서 6년의 세월을 보내었다. 유배지에서 상심의 나날을 보내던 그는 병이 들어 한달이나 앓다가 일어났다. 그나마 대궐에서 피리를 불던 뛰어난 악공이 마침 진도로 유배되어 왔기에 가끔 달밤이면 그의 피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더욱 위안이 된 것은 고을의 사또가 보내준 희아(姬兒)라는 여인이었다.

눈앞에 있는 천금의 값어치 술뿐이요

산중의 귀한 것은 육관음(肉觀音)이라.

온 계곡 달빛 비치는 절간의 밤

정녕 하늘 끝 편치 않은 마음을 위로하네.

眼底千金惟是酒山中貴物肉觀音

一谿蘿月禪窓夜政慰天涯未了心

이주, 「세진이 밤에 술을 들려 희아를 보내 위로하기에 장난삼아 써서 사례한다 世珍夜遣姬兒持酒致慰戱書以謝」(『망헌집』)

돌아갈 수 없는 절해고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술이나 마시며 소일하는 것뿐이었고, 가장 좋은 벗은 잠동무로 온 기생 희아였다. 그러나 희아 역시 늘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밖에는 찾아오는 벗도 거의 없었고, 절방에서 거처하던 그가 만나는 이라고는 스님 밖에 없었다. 덕택에 한적한 맛을 주는 아름다운 시를 지을 수 있었다.

우수수 지는 낙엽 소리 차마 듣지 못하여

절방의 문을 열고 아침 햇살을 들이노라.

소금 넣어 죽 먹으니 배불러 편안한데

따스한 송엽차 한 잔 더욱 좋아라.

木葉蕭蕭不耐聞贊房排戶納朝暾

和鹽喫粥多安飽更好松茶一味溫

이주, 「즉흥적으로 짓다 卽事」(『망헌집』)

연산군 8년(1502) 9월, 왕세자 책봉을 기념하여 대사면이 내려졌다. 이주는 자신도 풀려날 것이라 기대하였지만, 무오사화에 귀양간 사람들은 사면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이주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금골산으로 들어갔다. 세사를 완전히 끊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주는 「금골산록 金骨山錄」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군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충과 효로 스스로를 기약하는 법. 지금 나의 죄악이 심하여 성스러운 조정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구나. 신하가 되고자 하나 임금께 충성을 다할 수 없고, 자식이 되고자 하나 어버이에게 효도를 다할 수 없구나. 형제와 벗과 처자가 있건만 형제와 벗과 처자와의 즐거움을 얻을 수가 없구나. 나는 사람이 아니로다.

이주, 「금골산록 金骨山錄」(『망헌집』)

결국 사람이기를 포기한 이주는 산사람이 되고자 금골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금골산록」에서 500년 전 금골산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금골산은 진도군 관아 서쪽 20리에 있다. 가운데 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사방이 모두 바위로 되어 있다. 바라보면 마치 옥으로 만든 연꽃 같다. 서북쪽으로 바다까지 산맥이 구불구불 뻗어, 남으로 2리쯤 가면 간점(艮岾)이고, 다시 동으로 2리를 가면 용장(龍莊)이다. 금골산은 벽파도(碧波渡)에 이르러 끝나며 산 주위는 약 30여리다. 그 아래 큰 사찰의 옛 터가 있는데 해원사(海院寺)다. 9층석탑이 있고, 탑 서쪽에 버려진 우물이 있다. 그 위에 굴이 셋 있는데, 가장 아래에 있는 것이 서굴(西窟)이다. 서굴은 산 서쪽 기슭에 있다. 어느 때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근래 승려 일행(一行)이 향나무 불상과 십육나한(十六羅漢)을 만들어 굴 속에 안치하였다. 굴 옆에는 예닐곱개 정도의 기둥이 있는 오래된 절이 있어 승려들이 살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 상굴(上窟)이다. 상굴은 가운데 산의 정상 동쪽 기울어진 벼랑에 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높아 원숭이처럼 잽싸다 해도 지나갈 수 없을 정도다. 동쪽에서부터는 손으로 잡거나 발을 붙여 갈 수 있는 방도가 없다. 서굴에서부터 동으로 올라가면 길이 매우 험하다. 절벽을 타고 바위를 끼고서 조금씩 앞으로 1리쯤 가면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어 날아서라도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포개진 바위가 13층으로 사닥다리를 이루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닥이 보이지 않아 심장과 눈이 모두 어찔할 정도다. 여기서 올라가면 바로 정상이다. 정상에서 동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30보쯤 되는 곳에 바위 윗부분을 뚫어 오목하게 만든 곳이 있는데, 12계단으로 발을 대고 오르내리게 되어 있다. 여기서 아래로 10여보 내려가면 상굴이다. 또 그 북쪽 바위에서 몇 보를 가면 허공의 벼랑 꼭대기를 뚫어놓은 곳이 있다. 동쪽으로 곧바로 내려와 8～9보 가면 동굴(東窟)이다. 앞쪽에 몇 칸의 부엌이 있는데 모두 비바람에 무너져 있다. 굴의 북쪽 벼랑에는 깎아 만든 미륵불(彌勒佛)이 있다. 절간에서는 예전 군수 유호지(柳好池)가 창건한 것이라 전한다. 이 산은 예로부터 신이한 영험이 많았다. 매년 빛을 뿜어 신이함을 드러내었으며, 역병이나 염병, 장마나 가뭄 등 기도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효험이 있었다. 그런데 이 미륵불을 깎아 만든 이후로는 이 산에 다시는 빛이 뿜어 나오는 일이 없어졌다. 저 유호지는 분명 외도(外道)의 김동(金同)과 같은 무리이거나 산을 억누르는 귀물일 것이다. 그의 말이 허망하고 요사스럽지만 들어볼 만은 하다.

- 이주, 「금골산록」(『망헌집』)

이주는 동자 한 명에게 술통을 들려 서굴로 가서 하루를 묵은 다음 승려 언옹(彦顒), 지순(智純)을 데리고 곧바로 상굴로 올라갔다. 상굴은 불당과 부엌을 합쳐 2칸인데, 비어 있은 지 오래되어 낙엽이 문을 막고 흙먼지가 방에 가득하였다. 산에서 부는 바람이 여기에 부딪치고 바다 안개가 끼며, 흙비와 장기(瘴氣)가 가득하여 거처할 수가 없었다. 이에 먼지와 모래를 떨고 창과 벽을 새로 칠하였다. 나무를 베어 아궁이에 불을 때고, 문을 열어 공기가 통하게 하였다.

이곳에서 이주는 아예 승려처럼 살았다. 낮에는 밥 한 사발을 먹고 아침과 저녁은 차 한 사발로 때웠다. 아침이면 시원한 샘물로 양치질을 하고 저녁이면 학을 벗 삼아 지냈다. 새벽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새벽임을 알았고, 조수를 보고 계절을 짐작하였다. 원래 상굴에는 닭이 없었고, 마을이 멀어 닭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동네 아이 하나가 잘 우는 닭을 묶어 조롱에 담아 보내주었다. 이주는 묶인 발을 풀어주고는 스산한 비바람이 칠 때에는 울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 소리가 비감을 돋우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이주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다음 작품도 이때의 것이다.

음산한 바람 불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바다 기운이 산 속의 깊은 석굴까지 이르네.

이 밤, 덧없는 인생은 흰머리만 남아

등불 켜고 때때로 초년의 마음을 돌아본다.

陰風慘慘雨淋淋海氣連山石竇深

此夜浮生餘白首點燈時復顧初心

이주, 「밤에 앉아서 夜坐」(『망헌집』)

이주는 조정에서 벼슬할 때 연산군이 재(齋)를 올리려 하자 그토록 강경하게 불교를 비판하였으면서도, 여기서는 승려처럼 살았다. 지난날의 자신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으리라. 이주는 상굴에 살면서 오게(五偈)를 지어 지순으로 하여금 매일 밤 나누어 새벽에 창하도록 하고 누워서 이를 들었다. 오게는 푸른 솔(靑松), 지는 잎(落葉), 조수(潮), 흰 구름(白雲), 대나무(竹)를 두고 지은 글이다. ‘게(偈)’라 하였으니, 이 역시 승려로 자처한 것이다.

어느 날 사또 이세진이 막걸리를 가지고 와서 그를 위로하고는, 상굴이 너무 위태하다면서 반드시 중들과 함께 있고 싶다면 서굴로 옮기라고 하였다. 벗들도 그가 상굴에 산다는 소식을 듣자 편지를 보내어 군자의 태도가 아니라 하였고, 서울에서 어사로 내려온 손여림(孫汝霖)도 심하게 꾸짖었다. 이주의 처신은 유자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이주는 하산을 결심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이곳에 산 자취를 남기기 위하여 「금골산록」을 지어 서굴에 두었다.

6년의 진도 생활을 마친 이주는 연산군 10년(1504) 4월 제주도로 이배되었다. 이때 수찬(修撰)으로 있던 아우가 따라왔는데, 그에게 보낸 시가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떠나는 배를 애써 멈추고 지난날을 통곡하니

밝디밝은 저 해는 우리 형제 마음 비추리라.

정령위를 시켜 바다를 메울 수만 있다면

탐라섬까지 걸어서 갈 수 있으련만.

强停鳴櫓痛平生白日昭昭照弟兄

若敎精衛能塡海一塊耽羅可步行

이주, 「제주로 이배될 때 배가 떠나려하는데 아우가 따라왔기에 멀리서 시 한 수를 지어서 영결한다 移配濟州時將發船舍弟追及之遙詠一詩以訣」(『망헌집』)

제목에서 ‘영결(永訣)’이라 하였으니 자신의 최후가 멀지 않았음을 예견한 것이리라. 그러나 제주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주는 갑자사화가 절정에 달한 5월 다시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주는 22일 군기시(軍器寺) 앞에서 백관이 보는 가운데 효수형을 당하였다. 대간청(臺諫廳)을 대궐 안에 짓자고 한 죄가 추가되었다. 재산은 적몰되고 부친과 아들도 참형을 당하였으며 딸들은 노비가 되었다. 그가 처형당하던 날은 대낮인데도 어둑해지더니 비가 퍼부었고 거센 바람이 동남쪽에서 불어와 나무를 뽑고 기와를 날리는 이변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연산군은 조위와 함께 연좌된 조지서(趙之瑞), 한훈(韓訓), 홍식(洪湜), 이세좌(李世佐), 이극균(李克均) 등이 살던 집을 헐어 물에 잠기게 하고 돌을 세워 그 죄명을 새기도록 하였다. 그러나 연산군이 쫓겨나고 중종이 즉위하자 이주의 충절은 높이 평가되었다. 중종은 그를 이조참의(吏曹參議)에 추증하고 어필로 정려(旌閭)를 써서 내렸다. 훗날 이주는 청도(淸道)의 명계서원(明溪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