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 21세기 문학의 창 -

웹진 대산문화

해방과 한국문단(1)

편집자 주) 『대산문화』에서는 광복 60주년을 기념하여 해방 전후 우리 문단의 분위기와 이를 맞이하던 문인들의 초상을 인하대 윤영천 교수의 글로 2회에 걸쳐 연재한다.

1.

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 일본 천황의 사뭇 건조하고 상창(傷愴)한 ‘항복 선언’으로 우리는 갑자기 ‘해방’을 맞았다. 함석헌의 절묘한 비유처럼, 실로 그것은 “도둑같이 뜻밖에” 들이닥쳤던 것이다. 꼭 60년 전의 일이다.

이 나라의 지사․사상가․종교가․교육자․지식인․문인에, 이 나라가 해방될 줄을 미리 안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해방 후 참 분한 일은, 이 해방을 도둑해 가려는 놈들이 많은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이를 자기네가 보낸 것처럼 말하여 도둑해 가려는 심장에서 하는 소리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제4판, 제일출판사, 1974, 330～331면

바빌론에 끌려가 종살이하던 구약시대 ‘유다 민중’의 설움과 질곡을 절절하게 노래했던 ｢시편｣(137: 1～9) 기자처럼, 우리 민족의 간고한 역사를 충일한 시적 직관과 예언자적 통찰로 간명하게 개괄한 함석헌의 글(『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성광문화사, 1950)에 잘 암시되어 있듯, 해방 후의 혼란과 갈등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독립국의 회복, 민주주의 원칙하의 발전, 일본통치의 폐해 청산’ 등을 목표로 5년 이내의 ‘조선에 대한 4개국 후견의 협정’(신탁통치안)을 확인한 ‘미․영․쏘 모스크바 3상회담’의 후속적 논의체인 미소공동위원회의는 결렬되었다. 결국 한반도는 남쪽의 이승만 ‘단정’과 북쪽의 김일성 체제로 양분되었다.

그러나 해방기의 혼란은 분명 ‘의미 있는 혼란’이었다. 외형상 그것은 좌우익의 첨예한 대립, 계급적 이해의 상충 등의 극심한 난맥상을 연출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민족사의 전진적 구심점을 모색하기 위한 민중의 비상한 열정과 고투로 점철된 격동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역사의 혼돈을 걷어내고 통일된 자주적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일로매진한 시기, 그것이 다름아닌 해방기였다.

연합국 측의 승리에 따른 ‘덤’처럼 일단 손쉽게 주어진 형국이어서 더욱 그러했겠지만, 해방직후사는 사실상 파행 일로로 치달았다. 전후 한국문제를 둘러싼 국제열강 사이의 복잡미묘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의 첨예한 표출, 남북한에 각각 진주해 온 미․소 정치세력들에 재빨리 편승한 정치모리배의 군웅할거, 특히 남한의 경우 숨죽여 정세의 추이를 예의 관망한 끝에 새로이 발호하기 시작한 친일잔재세력의 반민족적 작태 등이 이 시기의 어두운 상황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구체적 지표들이다.

2.

1945년 8월 26일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은, 북한 주둔 ‘제25군 사령관’ 이름으로 8월 15일 ‘포고문’을 발포하였다.

조선 인민들이여!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화려한 과수원은 사람의 노력과 고려의 결과이다. 일제의 통치하에서 살던 고통의 시일을 추억하라! 담 우에 놓인 돌멩이들까지도 피땀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가? 이제는 모든 것이 죄다 당신들한테 달렸다.

- 『해방 후 10년 일지: 1945～1955』, 조선중앙통신사, 1955, 1면

포고문 치곤 꽤나 서정적이다. 이에 비하면, 인천을 거쳐 서울로 진주하기 이틀 전 ‘태평양 미국 육군 최고지휘관’ 맥아더가 발동한 ‘포고 제1호’(1945. 9. 7)의 “일본측 천황과 정부와 대본영을 대표하여 서명한 ‘항복 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 휘하의 전첩군(戰捷軍)은 본일 북위 38도 이남 조선 지역을 점령”(위책, 1면) 운운은 자못 사무적이고 엄의(嚴儀)적이다.

‘해방’에 대한 지배적인 문학적 반응은 특히 시의 경우 감격과 울분의 단선적 포효이기 일쑤였다. 월북시인 배호(裴晧)의 예리한 표현처럼, 그 “흥분의 물결은 넘치었으나 그것은 조리 없는 함성의 탁류”(1948)에 불과하였다. 우후죽순과도 같이 정치․사회 단체들이 재바르게 난립하였으며, 문학예술 분야도 거기서 예외일 수 없었다.

소련 점령군과 심각한 마찰 없이 북한정국을 기민하게 장악한 김일성 체제와 견줄 때, 남한 국면은 매우 복잡다기하였다. 좌파의 경우, 조선문학건설본부(중앙집행위원장 임화), 조선프로문학동맹(위원장 이기영), 이 두 단체가 통합․결성된 조선문학동맹, 그리고 그 명칭 변경을 포함한 공식적 출범 절차에 해당하는 ‘조선문학자대회’(1946년 2월 8일～9일)를 계기로 좌우파를 망라한 범문단적 성격의 ‘조선문학가동맹’이 잇따라 출현한다. 그러나 문학단체들의 구성에서마다 번번이 임화 등에게 선편(先鞭)을 빼앗긴 ‘구 카프계’(비해소파)의 이기영, 한설야, 안함광, 한효, 송영 등은 1945년 11월 경 서둘러 월북, 북한문단의 중추적 핵을 이루며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물론 여기엔 계급모순을 간과한 임화 등의 ‘문건’ 문학노선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이 깊게 작용하였다.

조선문학가동맹은 그 결성 초기 단계부터 실질적으로는 박헌영 주도의 남로당 외곽단체임이 점차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미군정이 테러, 파업 등 ‘신전술에 대한 지시’의 주동자로 ‘박헌영 체포령’을 발동하면서 남한 문단은 또 한차례 크게 요동한다. 반미의식이 점차 노골화하는 과정에서 1946년 초엽 이태준, 동년 10월 박헌영․김남천․오장환 등을 비롯, 1947년 전반기엔 이동규․윤기정․박세영․박아지․홍구 등이 줄줄이 월북한 것이다(임화․이원조 등이 남로당 선전책으로서 황해도 해주로 넘어간 시점은 아마도 1947년 가을쯤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평양문단에 정식 진입한 시점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무렵인 듯하다).

조선문학가동맹 회원들의 세 번째 집단월북은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1947년 7월 10일) 후 미증유의 대규모 좌익검거 선풍이 몰아닥친 1947년 여름부터 ‘단정 수립’(1948년 8월 15일)까지의 본격적인 반미투쟁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이를 가속적으로 촉발한 현실적 계기는, 김구․김일성으로 대표되는 ‘남북연석회의’(1948년 4월 19일)였다. 이 무렵의 주요 월북문인은 박팔양․조벽암․조영출․조남령․박영호․안회남․함세덕․엄흥섭․허준 등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6․25전쟁’ 기간 중의 월북이다. 여기엔 1)이승만 정부 수립 후 ‘보도연맹 가입’이라는 전향절차를 거치거나 2)서대문형무소 등에 수감돼 있다가 북한군의 ‘서울 점령’으로 풀려난 경우 3)북한 ‘조선의용군’ 입대 4)또 다른 경로의 월북 5)납북 등을 상정할 수 있다. 아마도 1)설정식․임학수 2)이용악 3)김상훈․우봉준 4)박태원․현덕․상민 5)김기림․정지용 등이 각각의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처럼 크게 4단계에 걸쳐 월북한 조선문학가동맹 회원 상당수의 행적은 오랫동안 일종의 진공상태에 갇혀 왔다 해도 좋을 만큼 매우 불투명하다. 남한문학사에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들이 귀착한 북한 문학사에서도 각각의 정치적 행로에 따라 그 종적이 묘연한 경우가 허다한 때문이다.

우익 문학단체 또한 좌익의 그것을 능가할 만큼 신속하고 기민하게 결성되었다. 주요한 것으로는 중앙문화협회(변영로․김영랑․김광섭 등), 전조선문필가협회(회장 정인보)와 그 문학투쟁적 전위라 할 조선청년문학가협회(회장 김동리), 그리고 바로 위의 두 모임의 연합체인 전국문화단체총연합 등을 들 수 있는데,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후 이 단체들은 결국 한국문학가협회로 총결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들이 앞서 언급한 좌파 문학단체들의 운동단계에서마다 매우 조직적으로 대응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문학예술단체 결성은 기본적으로 정당사회단체들의 그것과 긴밀한 상응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해방 직후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전개된 문학운동의 작품적 성과 - 예컨대 함흥의 한설야․리찬․한식 등이 크게 역할한 ‘해방 1주년 기념시집’ 『려명』(함흥예술련맹, 1946)이 그 구체적 사례이다 - 들이 축적되는 한편, 소련과의 우호적 문화교류 증대를 위해 조소문화협회가 발족하면서 기관지 『조쏘문화』가 창간된다.

이 무렵 이기영․한설야․안함광 등 조선프로문학동맹의 주요 멤버들은 물론 이태준 등 상당수의 ‘문건’ 계열 인사들이 이미 북한문단 핵심부에 깊숙이 포진, 1946년 마침내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위원장 한설야, 부위원장 이태준) 및 북조선문학동맹(위원장 안함광) 등이 정식 출범하면서, 기관지 『문화전선』(1946년 7월) 및 『조선문학』(1947년 9월, 『문화전선』후신)을 각각 펴내기에 이른다. 물론 이런 문화예술단체들의 성립 배경에는 ‘김일성장군 조국개선 평양시 환영대회’(1945년 10월), 당시 문화예술의 기본방향에 대한 기본 지침이라 할 김일성의 대규모 대중연설 ‘문화와 예술은 인민을 위한 것으로 되어야 한다’(1946년 5월), 북조선로동당 창건(위원장 김일성, 1946년 7월) 등의 주요한 정치문화적 사건들이 깊숙이 연동되어 있다.

3.

일제의 식민지적 모순이 지양되지 않은 채 ‘이승만 단정’으로 낙착된 남한의 해방직후사 3년간의 숨막히는 반동화 과정은 끝내 냉전이데올로기에 덧씌워진 분단체제의 고착으로 이어졌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실로 막중하다. 단지 ‘즉각적인 현실감응 양식’이란 차원을 넘어 당대의 혼란과 갈등을 과감히 돌파하는 하나의 ‘혁명적 무기’로까지 인식되었던 해방기 시를 결코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이유이다.

아연 “도둑같이 온 해방”(함석헌)에 갑자기 노출당한 이 시기 문인들에게 부여된 첫 번째 과제는 다름아닌 ‘자기비판’의 문제였다. 당시 경기도 양주에 칩거하면서 일본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적함대를 찾았노라｣(『신시대』, 1944년 12월) 등의 친일적인 글을 쉬엄쉬엄 기고하는 한편 “온전히 무념무상의 심경으로 세계와 우리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명상할 여유”에 빠져 있었던 이광수는 8월 16일 오전에야 ‘해방’의 소식을, 그것도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 훗날 그는 그때의 심경을, “조국이 전장이 되지 않고 만 것, 동포가 일본의 손에 학살을 당하지 아니하고 만 것이 다 기쁜 일이었다”고 토로한 끝에, “전쟁 중에 내가 천황을 부르고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부른 것은 일시 조선민족에 내릴 듯한 화단(禍端)을 조금이라도 돌리자 한 것”(｢나의 고백｣, 1947년;

『이광수전집』7, 삼중당, 1971년, 282～283면)이라고 덧붙였다. 1939년 4월 박영희․임학수 등과 ‘황군위문작가단’ 일원으로 만주까지 다녀온 김동인이 ‘해방’을 접한 것은 8월 16일 오전 11시쯤, 그때 그는 “지금 모두 정치적 야망이 뒤끓는 판국에서도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지극히 담박한 욕망”의 실현에 골똘하던 중이었다(김동인, ｢亡國人記｣, 1948; 『김동인 문학전집』 11, 대중서관, 1983, 70면).

1946년 초, 조선문학가동맹 회원으로선 매우 일찍 월북한 이태준은 일제 식민통치 시절의 미덥지 못했던 삶의 뿌리를, 그의 소설적 주인공 ‘현’(｢해방전후｣, 『문학』, 1946년 7월)의 입을 빌려, 어떻게든 “정말 살고 싶었다. 살고 싶다기보다는 살아 견디고 싶었다”는 심정적 고백으로 대체하였다. 한편 채만식은 소설 ｢민족의 죄인｣(『백민』1948년 10월～1949년 1월)을 통해 ‘어느 누구도 죄인일 수 없다’는 일종의 순환논법으로 자기비판론을 봉합하는 데 그쳤다.

조선프로문맹의 제1차 월북 평론가 한효의 문제제기는 이광수나 김동인의 경우보다 한결 진취적이다. 일제강점기 “소시민의 비애―그것은 벌써 걷잡을 수 없는 하나의 체관(諦觀)이었다. 이 체관은 문학자로 하여금 오로지 소시민의 자위(自慰)에 안주케 하였을 따름”(｢문학자의 자기비판｣, 󰡔우리문학󰡕, 1946년 2월)이라는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서 “준열한 자기비판을 한다는 것은 결코 불명예스러운 일이라 할 수도 없다”(『중성』, 1946년 2월)는 자신의 입장을 오히려 떳떳이 밝히고 있는 까닭이다. 임화의 관점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간다. 자기비판의 근거를 ‘양심 또는 마음의 비밀’로까지 끌고 내려간 것이다. 그것은 “이번 태평양전쟁에 만일 일본이 지지 않고 승리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아가려 했느냐, 이것이 자기비판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앞의 ｢문학자의 자기비판｣)고 보는 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