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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문학포럼 후기 - 오직 정확해야(Only correct)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라는 ‘폭발적인’ 용어는 『옥스퍼드 영문학 편람』 제6판(2000년 발행)에 이르러 마침내 등재되어 우리에게 수용되었다. 여기서 폭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서술 언어가 선동적이어서가 아니라(그것은 객관적이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서술이라고 정평이 나있다), 주제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 편람의 모든 항목들이 그렇듯이, 이 용어의 집필자도 밝혀져 있지 않으나, 책의 서두에 가이아나 출신 작가 잔 로 샤인본(Jan Lo Shinebourne)이 관여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녀는 대담하게 이 말썽 많은 용어의 소개를 맡고 나섰는데, 나는 세계의 어디를 가든 그녀의 이 차분한 정의를 부적인양 지니고 다니면서 그것을 기억해내곤 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문화적 전유는 “일반적으로 서구 세계가 비서구적 또는 비백인적인 문화 형식을 차용하는 것을 가리키며, 여기에는 착취와 지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샤인본은 여러 문화가 교차하는 경계 지역 출신의 작가이다. 그러니 만큼 그녀의 설명에는 베닌의 청동상, 라코타족의 전투복, 엘긴 대리석상에서부터 아프리카 예술에 대한 모더니스트 작가들의 열광 등이 언급되어 있다. 그녀는 문학 작품의 ‘목소리 voice’와 연관해서도 전유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성(gender)의 전유,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인종(ethnicity)의 전유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가 다루는 영역은 한마디로 지뢰밭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최근 나는 “평화를 위한 글쓰기”라는 문학포럼 참석차 서울에 다녀왔다. 거기에서 나는 남북한을 갈라놓는 휴전선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비무장 지역(DMZ)에 들어서자, 우리 측 인솔 병사(내가 보기엔 한국인처럼 보였으나, 미국에서 온 시인들은 그가 미국 중서부 지방 출신의 병사일 것이라고 추정했다)는 인근의 골프장을 가리키고는 “골프공을 지뢰밭에서 줍지 마시오”라고 씌어있는 표지판을 보라고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 말은 양측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변경을 둘러보는 우리의 여정, 낯선 긴장감이 감도는 그 극적(theatrical)이기조차 한 여행에서 우리의 행동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암시해주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휴전선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회담장의 마주보는 좌석에서 양측 대표들은 마치 체스판의 말처럼, 혹은 천 조각을 어긋나게 자르는 가윗날처럼 서로가 서로를 꿰뚫는 것이다. 우리는 불과 몇 발짝 떨어진 장소에 서 있는 북측 병사들과 눈짓이나 몸짓을 나누지 말라는 경고도 받았다. 어떠한 유형의 의사소통도 허용되지 않았다. 웃거나 찡그리는 것조차도 선전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냉랭하게 얼어붙은 적대적 분위기로 인해 우리는 동서양 문화의 경계, 언어와 언어 사이의 경계라는 것이 정치적인 경계보다는 침투하기 쉬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회의라는 것이 의사소통이나 생각의 교환, 혹은 상호 번역을 위한 논의의 장이 아니라면, 그것은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참여자들은 평화와 우정을 간구하는 진지한 의견들을 발표했으며, 우리는 공통의 관심 영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학자들은 칸트와 데리다, 에드워드 사이드, 칼 슈미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본의 소설가인 오에 겐자부로는 T. S. 엘리어트와 R. S. 토마스, 윌리엄 블레이크의 글을 인용했다. 케냐 출신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Ngugi Wa Thiong’o)는 “문화간의 접촉은 인간 문명에서 산소와 같다”는 에메 세자르(Aimé Césaire)의 아포리즘을, 나는 E. M. 포스터의 “오직 소통하라 Only connect”를 이야기했다. 조지 오웰의 망령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한편으로 우리는 서로 아주 잘 어울려 지냈고, 언어와 문화를 주고받고, 시를 암송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화기애애한 표면의 배후에 들어서면 의사소통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잠들어 있던 원망과 오해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문화 소통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다고 불평했다. 영어는 지배적이고 착취적인 언어로 인식되었다. 나는 자녀교육에 열정적인 부모에 의해 어린 나이부터 영어를 배우도록 강요받은 한국의 아이들이 일체의 언어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정신 질환 현상을 겪기도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번 포럼의 숨은 공로자로, 구어 담론에서는 재치 있는 어눌함으로, 글쓰기에서는 탁월한 명료성으로 유명한 김우창 교수는 “세계 문학”이라는 말은 보통 “서구 문학”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많은 소설이 외국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한때 옥고를 치르기도 한 투쟁적 소설가 황석영 씨는 소위 보편성(universality)이라는 것은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라는 오류로서,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두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괴테가 “세계 문학”을 주창했을 때, 그가 세계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유럽이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은 바 있는 저명한 여류 소설가 박완서(1931년생) 씨는 1997년 프랑스에서 가진 한 인터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당시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한국의 작가 서넛과 서구 작가 한둘을 언급했지만, 인터뷰 기사에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체호프만이 포함되고 한국 작가들은 삭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언급했던 한국 작가들은 마치 개미처럼 짓밟히고 말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서구인들의 인식 상의 문제에는 얼마간 정당성이 있다. 김, 박, 이 씨가 단연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성씨에 대해 한국인들 자신도 그 비슷비슷함에 대해 농담을 하는 바이지만, 이 이름들이 영어로 옮겨지면서 또한 각기 다르게 표기되는 수가 많기 때문에 서양인들로서는 이를 익히고 기억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박완서 씨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온 참가자들은 한국 문학과 연계 관계를 맺고, 한국의 시를 듣고, 쌍방 간의 대화의 장을 열고, 문화 수출입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이는 실상 이번 포럼의 잠재적 주제인 것이다.

이러한 무언의 제안이나 협상에는 고통스러운 아이러니가 뒤따르곤 했다. 나는 2000년 제1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초대되어 5년 전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는데, 1회 포럼의 주제는 “경계를 넘어 글쓰기: 다문화 세계 속에서의 문학”이었다. 당시 나는 탈식민주의를 주제로 한 순수하게 학문적인 논문을 발표했다(『템페스트』, 콘래드, 치누아 아체베, 나이폴, 마리나 워너, 『맨스필드 파크』에 대한 사이드의 해제 등에 관한 논의). 내가 아는 한 이 논문은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 방문을 통해서 나는 한국 문학의 명작인 『한중록』에 대해 알게 되었고, 훗날 런던 대영박물관 동양 유물 부서에서 일하는 한 학자가 추천한 번역본을 읽었다. 이 책은 1815년 80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한국의 왕세자빈이 쓴 회고록이다. 나는 이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후 그 인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세계 문학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다면, 이 작품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여성과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다른 번역본을 구해 읽었고, 아울러 영어로 번역이 되어 있는 동시대의 다른 자료들(그 중에는 훌륭한 시 작품들도 있었다)도 가능한 한 많이 찾아서 읽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화랑과 전시회, 강연을 찾아다녔으며, 이 왕세자빈이 성인이 된 후 오랫동안 칩거해 살았던 궁궐의 내전을 보기 위해 한국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만약 이 포럼이 한국 문화에 대한 나의 관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나는 이 놀라운 왕세자빈의 이야기와 이에 대한 나의 감흥을 토대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나의 느낌이란 물론, 18세기 조선 왕실의 생활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은 물론 오늘날 서구 사회의 삶으로부터도 자극된 것이다. 일종의 통문화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나의 작품은, 문화 상대주의와 본질주의, 가정의 역학, 지적 및 선천적 반응, 진화 생물학,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보편성(또는 비보편성) 등에 관한 문제 제기를 담고 있다. 내가 염두에 둔모델 중의 하나는 마크 트웨인의 시간 여행 판타지 소설로 미국의 자본주의와 카멜롯 기사도를 암울한 희극적 방식으로 다시 조명한 『아서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1889년)였다. 나의 왕세자빈은 200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며, 미국의 사형제도 또는 영국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남용을 지켜보면서, 문명의 진보를 통렬하게 비판하게 될 것이었다.

나의 소설 『레드 퀸 The Red Queen』을 한국의 이야기에 의탁하여 쓴 것은 무모한 일이긴 하다. 나는 그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험은 내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의 하나이기도 했다. 나는 올바른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뉴욕에 있는 가장 최근의, 가장 학구적인 번역자와 접촉하고, 그 번역자를 통해 미국 발행인들을 만나 나의 관심사를 이야기했다. 번역자와 나는 자료 이용에 대한 감사, 그리고 저작권이 있는 자료 사용에 대한 경제적 보상 문제들을 매듭지었다. 나는 또한 그 번역자에게 서문과 후기를 쓸 것을 제안했는데,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소설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보면 순진할 정도로 유치한 생각이지만, 나는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의 장의 가능성을 꿈꾸었던 것이다.

나는 한두 해 동안은 경계를 넘어선 중립 지대에 있는 것처럼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내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있다는, 또 문화적 전유라는, 비난에 직면하였고, 무지, 냉소주의, 표절을 범했다고 비판하는 전쟁터에 들어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설가는 3년간에 걸친 고독한 노동의 산물을 새로운 독자에게 넘겨줄 때 긴장하게 마련이다. 나는 나의 작업에 대해 염려하긴 했지만, 뉴욕의 첫 번째 독자가 보내준 반응의 내용이나 어조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올바르게 처신하고자 노력했지만, 충분하지는 못했다. 미국 학계의 의견에 따르면, 원전에 대한 나의 태도는 “엄청난 오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옹호하고 한국의 입장에 서서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 미국 학계는 『레드 퀸』은 잘못 투성인데, 예컨대, 18세기 한국을 동토(frozen land), 다시 말해 ‘은둔의 왕국 hermit kingdom’이라고 암시하는 표현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은둔의 왕국”이란 말은 수세기 동안 한국인과 서구인들이 조선왕조의 명백한 고립주의를 지칭하면서 사용해 오던 문구이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인들이 오늘날 은둔자가 아닌 것처럼 과거에도 결코 은둔 상태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문화 교류와 논의를 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둔의 왕국”이란 문구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내 소설의 출판에 동의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2004년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만남: 아시아와 유럽의 교류, 1500～1800”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에서, 중국, 일본, 인도의 그림은 다수인데 반해 한국의 예술품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내가 언급하자, 큐레이터는 이는 한국과의 교류가 거의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런데도, “은둔의 왕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이 미국에서 조소를 받기 십상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미국의 “교양 있는 독자들”이라면 다문화주의의 이슈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게다가 많은 대학들이 비서구 사회의 문명에 대해 공부하는 1년 과정의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인가? (사이드의 견해는 나의 소설에 깊이 새겨져 있고, 소설의 끝머리에서는 그의 이름까지 거론된다. 그러나 나의 검열관들은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한 듯하다)

또 나는 『나비 부인』에 대한 논쟁을 들어본 적인 없단 말인가? 나는 왕세자빈을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인가 ― 아니면, 그녀를 서구화시켰단 말인가? 양측 모두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다. 왕세자빈을 너무 나약하게 또는 너무 강인하게 그렸는지 여부는 나 자신에게도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사람들은 그것을 묵과하지 않았다. 나는 공정을 기하기 위해 로마노프 왕조를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묘사하고, 시공간을 여행하는 내 소설의 화자로 하여금 이 왕조의 야만적인 가정생활 행태를 비판하도록 했다(20세기 미국에서 자행된 미성년자와 정신이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처형하는 관행 - 이에 대해 21세기를 몇 달 앞두고 미국 대법원은 잘못된 것이라는 평결을 내렸다 - 에 대한 나의 코멘트는 주목받지 못했다). 혜경궁 홍씨에 대한 나의 해석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름을 어떻게 표기해야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조차도 불분명했다.

나에게 감명을 주고 소설을 쓰도록 고취한 이 작가는 1815년에 사망했다. 살아생전에 여러 제약 속에서 고통을 겪은 그녀는, 죽어서도 검열로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나에겐 비쳤다. 하지만 비판적 의견은 그녀의 나라인 한국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을 앞세우는 오늘의 미국사회의 관점에서 제기되었다. 이들은 이런 입장에서 내 소설의 발간을 저지할 권리를 주장했다. 그들은 나에게 묻는다. 영국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먼저 동료에게 읽혀 평가받는 관행이 없는가? 소설쓰기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흔치 않은 것인가?

나는 분명 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나 또한 그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던 사실적 오류들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리고 그들 중의 어떤 것들은 좀 더 요령 있게 썼더라면 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국의 중앙난방식의 방바닥(유명한 온돌 바닥)이 목재로 되어 있다고 기술한 것은 실수였다. 사실 온돌은 돌로 만들어졌고 광택을 낸 장판이 그 위에 덮여있다. 한국인들도 악명 높은 중국식의 ‘팔고문’(八股文)을 창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언급은 잘못된 것이었다. 왕세자빈이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 가져왔던 서구의 예술품을 얼마간 보았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은, 그다지 있을 법한 일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이는 당시 한국에 소개된 예술적 관점의 문제를 거론할 필요 때문에 암시된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동시대인인 볼테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라는 내 추측은 옳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녀가 프로이트나 제임스 프레이저 경의 『황금 가지』를 읽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면 옳지 않을 것이다. 또는 면역결핍 장애나 줄기 세포 연구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그 역시 옳지 않을 것이다.

악몽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분명한 것은 오해의 정도가 매우 깊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기된 비판들이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고 내가 쓰고자 했던 책이라기보다는 그와 전혀 다른 책을 상정하고 거기에 겨냥되었다는 점이다. 제기되었던 저작권 문제 또한 나에게는 일종의 위장된 검열로 비친다. 왜냐하면, 옛 문헌의 어떤 한 번역본이, 특히 그것에 대한 또 다른 번역본들이 존재할 경우, 어떤 근거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 결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실은 역사의 영역에 속한다. 다시 말해 내가 실제로 쓴 소설은 적대적이건 호의적인 것이건 간에 아무런 비판적 조명을 받지 못한 셈이다. 나는 ‘전유’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그저 그 뿐이었다. 다문화주의적 입장의 검열관들은 그 이상의 것은 보지 않았다. 내 텍스트에 대해, 나의 의도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어떤 질문도 제기되지 않았다. 나는 물론 분명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책을 집필하였다. 아니 한 때 그랬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나에게 가해진 비판으로 심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어떤 의도로 소설을 시작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전유는 인종차별주의처럼 문제적인 용어이다. 그것은 쉽사리 비난의 대상을 찾아내지만,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문화 전달의 근본적 성격, 그리고 그와 연관된 윤리적 문제는 끝없는 관심의 대상이다. 문화적 차용이 언제 절도로 변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언제 문화간 교류의 상호 호혜의 표상이 될 수 있는가?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의 공통의 원천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소설의 주제가 어떻게 시대정신을 포착하는지를 살펴보면 기이하기 짝이 없다. 최근 헨리 제임스의 삶을 토대로 숱한 소설들이 출시되는 것을 보라(웬디 레서의 소설 『정원의 탑 The Pagoda in the Garden』도 곧 발간될 예정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주제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는 라클로(Laclos)의 1782년 작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를 들 수 있는데, 실로 기상천외한 여러 번안들이 나와 있다. 이 소설은 우선 1985년에 크리스토퍼 햄튼에 의해 각색되어 무대에 올려 졌고, 1988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햄튼과 스티븐 프리어스가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동안, 밀로스 포먼 감독 또한 동시에 이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1989년 ‘발몽 Valmont’이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었다. 이는 햄튼의 영화가 원제목을 먼저 전유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붙여진 명칭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라클로 소설의 한국판이 제작되고, 2005년 영국에 수입되어 ‘스캔들 Untold Scandal’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는데, 이 영화는 『한중록』의 사건들과 같은 시기인 18세기 조선 왕조를 배경으로 한다. 화려하면서도 격조 높은 이 영화는 원작인 프랑스 소설의 차용, 각색, 오리엔탈리즘적 번안의 분명한 보기가 된다. 또한, 그 주제가 영국을 통해 한국에 도달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우회적인 길이었다. 그러나 라클로와 햄튼은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야기들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이야기는 그 스스로의 생명을 가졌다. 이 점에서 이야기는 공예품과는 다르다. 이야기들은 여러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대영박물관에는 혜경궁 홍씨와 이미 오래 전에 처참하게 처형당한 사도세자의 60회 결혼기념일(1809년)을 축하하는 화려한 의식을 묘사한 삽화가 실려 있는 서책이 있는데, 그 출처는 불확실하다. 프랑스의 어떤 해군 제독이 한국에서 이 사본을 반출해 왔고, 이를 영국이 1891년에 다시 사들인 것이다. 이 또한 우회로를 통한 것이다. 이런 문제들도 다루고 있는 내 소설은 최근에 일부 삭제된 형태로 한국에서 출판되었다. 나는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소설을 대폭 수정하였는데, 내 스스로 검열을 행했다는 기분에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책이 출판된 후 나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초대받았고, 물론 이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 가서 지뢰밭에 있는 내 골프공들을 회수하는 것이 명예를 지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독자와 학자들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내가 역사물을 오용한 것으로 생각할까? 아니면, 다른 차원의 해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소설이 한글로는 어떻게 읽힐까?

예상했던 것처럼,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난조의 질문을 받았고, 또 『한중록』의 “실제” 세자빈이 ‘믿을 수 없는 화자 unreliable narrator’일 수 있다는 생각(그녀는 정녕 그렇다)을 받아들이질 못하는 독자들도 만났다. 또한, 보다 복합적이면서 덜 방어적인 반응도 있었다. 성균관대학교(1398년 설립)의 이영옥 교수는 내 소설을 영어로 가르치고, 학생, 동료들과 함께 비극, 희비극, 여성 내러티브, 통문화적인 아이 입양이나 책의 차용 윤리, 문화에 따라 특수한 의미를 지니는 아카시아와 까치의 의미 등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이 토론은 산소로 가득 찬 것 같이 활기차고, 즐거운 것이었다.

아카시아는 한국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다. 아름답긴 하지만, 침해성이 있어서 다른 토종 식물들에 피해를 입히다. 한편, 영국에서 까치는 도둑으로 여겨지고, 불운을 가져온다고 믿어진다. 하지만, 한국에서 까치는 전통적으로 행운을 가져온다고 생각되어 왔다. 한편 한국계 미국인들은 까치를 불운의 상징으로 간주하는데, 따라서 이들은 내 소설을 오독했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일이다.

서울에서의 일주일을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로 보낸 것만은 아니다. 민족성과 성에 관한 논의도 있었다. 성 연구(gender study)를 가르치는 것은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이 포럼에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서울 소재의 한국외국어대학교에는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펼치는 아프리카어학과가 있었고, 스와힐리어를 쓰는 사람들의 수가 놀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다문화 사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 참석자는 자신의 세 살짜리 아이가 검은 피부의 얼굴은 더럽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한 응구기의 답변은 전범으로 삼을 만큼 요령 있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인종 편견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이 아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응구기는 아이들은 직설적이라고 엷은 미소를 띠면서 응대하고, 세자르의 말로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듯 했다.

이 포럼의 주제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발표마다 반(反)부시 정서의 거대한 물결이 무력한 분노가 되어 넘쳐흘렀다. 5년 전 1회 포럼에서의 공식 주제는 데탕트(détente), 햇볕정책, 그리고 통일이었다. 이제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존”이 새로운 슬로건이다. 하지만 한국은 사람들이 날로 탐탁해 하지 않는 미군들이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약소국에다 분단국가이다.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라고 부른 것은 이미 많은 상처를 입어온 한반도의 평화 전망에 말할 수 없는 손상을 입힌 것이다. 이러한 유해한 분위기 속에서 작가와 지식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들은 진부한 말들로 스스로를 조롱하고, 평화선언에 서명하거나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재무장에 반대하는 지식인 단체를 결성하고, 고이즈미 수상이 일본의 평화 헌법을 개정하려는 것에 대해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오에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반대 운동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지만은 않을 것이다. 정치학자이자 고려대 아시아문제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최장집 교수는 일본과 미국의 우익 집단의 새로운 연대의 위험에 대해 열정을 담아 이야기했으며, 경제와 문화적 이해에 입각한 동아시아 국가연합의 형성으로 이에 맞설 필요를 역설하였다. 포럼장의 안팎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외과 수술적인 공격”(surgical strike), 그리고 오만하고 무모한 초강대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에 대한 명백한 우려를 감지할 수 있었다. 미국 외교관들은 이러한 새로운 냉전을 체스 게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38선에서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그것은 결코 유쾌한 놀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곳 아시아에서 탈식민주의를 외롭게 외친 영국의 여류작가인 나는 “오직 소통되어야 한다 Only connect”라는 말을 흉내 내 보았다. 하지만, 포스터 자신도 잘 알고 있었듯이, 소통은 더디고 힘든, 늘 오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과정이다. 전유나 침해에 대한 비난이 없는 소통을 이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