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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문학포럼 후기 - 서울의 세 가지 목소리

여러 언어가 오가는 해외 심포지엄에는 싫증날 만치 줄곧 참가해 왔고, 영어나 프랑스어로 제 주장을 피력하는 스피치에도 꽤 익숙한 편이다. 국제적인 무대에서의 지적 사교도 웬만큼 경험을 쌓았고, 외국어로 청중의 마음을 붙잡는 비결쯤은 얼추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회의는 대개 지루하고 나중엔 무력감만이 몸 깊숙이 묵직하니 퇴적된다. 저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드는 발언을 접하는 경우가 있어도, 어쨌건 간행될 의사록을 읽으면 되는 일이니, 이 때문에 허비되는 이런저런 노력을 생각하면, 이런 집회에 참가하는 일에 얼마만한 의미가 있는지 잠시 생각에 잠기고 만다.

그런데 아주 최근 그런 생각을 씻어내기에 충분한 멋진 말을, 하루에 세 번씩이나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의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의 일이다. 그 첫날인 5월 24일,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장 마리 르 클레지오, 마거릿 드래블 같은 작가들의 육성에 마음 깊이 뒤흔들렸다. 다들, 젊어서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경력이 오랜 소설가들이다.

오에 씨의 기조 강연은, 이런 종류의 모임에서 이 노벨상 작가가 어떤 말을 꺼낼지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기에, 오후 분과 모임에서의 나의 발표를 위해 집중력을 방해받지 않으려고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안이한 자세는 단번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엘리엇의 시구 “우리는 고즈넉이 고즈넉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를 제목으로 삼은 그 일본어 강연은, 동시통역을 통해 한국 청중의 마음을 강하게 휘어잡아, 발언자에 대한 공감이 소리 없이 강연장에 퍼져 나가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따금 일본 지식인들이 해외 청중을 향해 늘어놓는 파렴치한 제 나라 비판과는 아예 무관하게, 오에 씨는 무척 조심스런 말로, 무슨 일이건 자폐적일 수밖에 없는 일본 소설가로서의 절망과 두려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퇴고 중인 장편을 씀으로써 절망이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을 심화시키는 일만은 가능하다. 이렇게 말하면서 미국의 비평가인 고(故)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에서 받은 격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좌우 양 날개로부터 조소적인 비판’을 받아왔다는 이 ‘전후 민주주의자’가 극히 사소한 것에 희망을 걸고 있는 모습을 아프게 실감할 수 있었다.

그 ‘극히 사소한 것’이란, 바로 관용의 공유이다. 동아시아에서의 관용의 공유를 향해, 일본인으로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더듬더듬 이야기하는 오에 씨를, 리얼 폴리틱의 결여로서 ‘좌우 양 날개’는 또다시 ‘조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수도에서, 그것도 일본 작가가 일본어로 관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떠한 정치적 언설보다도 ‘리얼’한 것이었다. 들으면서 등줄기에 전율이 훑고 지나갔다는 한 한국 여성의 감동을 듣고,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르 클레지오 씨의 「문학과 인간적인 보편성」은, ‘보편성이란 즉자적인 가치가 아니라, 어떤 다행스런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말로 마이너리티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옹호를 겨냥한 극히 짧은 텍스트의, 더없이 평온한 낭독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이 아닌 것에 호소하기를 애써 자제하려는 결벽성에서 프랑스 지식인이 빠지기 쉬운 화려한 웅변술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고, 그래서 문화의 무의식적인 제국주의를 벗어나, 듣는 이들을 보편성으로 끌어들이는 살아 있는 말이었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언어를 향한 작가의 흔들림 없는 확신에 깊이 감동했다.

『맷돌』 등으로 알려진 드래블 여사가, 첫째 날 밤 개최된 만찬회에서 신작 장편 『붉은 여왕』 서두를 몇 페이지 낭독할 때는, 진심으로 빠져들었다. 이름은 마거릿 드래블, 영국에서 왔습니다, 라는 밋밋한 인사로 시작된 그 낭독은, 여배우 경험이 있는 만큼 억양이 훌륭하다거나, 영국식 발음은 역시 미국 영어와는 다르다거나, 떠올릴 법한 그런 이유를 가볍게 뛰어넘어, 작가와 언어 간의 단 한 번으로 제한된 만남의 싱싱함으로 듣는 이를 매료시켰다. 방금 ‘매료’라는 단어를 나의 문장에 끼워 넣으면서, 첫날부터 예기치 않게 그 말의 진정한 의미에 똑똑히 닿을 수 있었던 행운을 ‘서울국제문학포럼’의 주최자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컨대, 오에, 르 클레지오, 드래블, 세 사람은 모두 자국어로 이야기했다. 거기에는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와는 무관한 언어의 생생함으로 넘쳐났고, 글로벌화된 영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으로는 도저히 체험하기 힘든 언어의 진정한 운동성이, 듣는 이를 감미롭게 무장해제시켜 갔다. 영어를 통한 한국 작가와 시인들과의 교류에서 그와 비슷한 감동을 누리지 못한 나는, 한국어 능력의 무참한 부재가 후회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이 회의의 위원장인 김우창 교수의 고결한 인품이나, 나의 스피치의 특징을 미크로코스모적인 해석이라 평해 준 시단의 중진 김종길 씨의 말은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정치적으로는 미묘한 이 시기에 서울에서 환대해 준 한국 벗들의 관용에, 일본의 비평가로서 어떻게 응답하면 좋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