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대산문화
 
"중요한 것은 과학이론이 얼마나 재미있느냐이다" - 나의 문학적 상상력
 

이번에 내가 요청받은 글의 제목은 나의 과학적(또는 SF적) 상상력이다. 덜컥 받아놓긴 했지만 쓰자니 암담하다. 그 이유는 ‘과학적’이라는 단어와 ‘SF적’이라는 단어는 늘 쉽게 교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둘이 별다른 무리 없이 합쳐지는 영역이 있다. 아서 C. 클라크의 「낙원의 샘」에 나오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예로 들어보자. 정지 궤도를 도는 위성을 이용해 우주로 가는 거대한 엘리베이터를 세운다는 아이디어는 과학적과 SF적이라는 표현 모두를 충족시킨다. 이론상 완벽한 과학적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고 있고, 심상은 드라마틱하고 장엄하며, 지금으로서는 기술의 한계 때문에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다. SF소설이 나오기 딱 좋은 기반인 셈이고 아서 C. 클라크는 그를 이용한 것이다.

과학적이지만 SF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는 무엇이 있을까? 역시 아서 C. 클라크가 모범적인 예를 제공해주고 있다. 소련이 스푸트닉 위성을 쏘아 올리기 12년 전에, 그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전지구적 통신망의 아이디어를 담은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결과는 지구문명이 우주시대에 돌입하자마자 실현되었고 그 결과는 여러분도 다 아는 바다. 그렇다면 이건 SF적인가? 시작은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러분은 통신위성을 소재로 삼은 걸작 SF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일단 드라마의 가능성이 많지 않고, 아이디어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실현화되어서 SF의 영역에서 비교적 빨리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인터넷을 주요 소재로 삼은 걸작 SF 소설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은 SF작가들의 상상을 뛰어넘어 급성장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는 가전제품이나 기술은 SF작가들에게 대단한 영감을 주지 못한다. 만약 준다면 그건 아주 엉뚱한 방향일 것이다.

SF적이지만 그렇게 과학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는? 기왕 시작했으니 아서 C. 클라크 영감을 계속 이용해 보자. 그의 대표작 『유년기의 끝』을 보면 인류의 진화를 돕겠다고 등장하는 악마와 같은 외모의 외계인과 은하 전체의 진화를 지배하고 통제한 거대한 초월 이성이 등장한다. 이는 굉장히 멋진 SF 아이디어지만 그렇게까지 엄밀하게 과학적이지는 않다. 막연한 장르 공식과 철학적인 사색이 만들어낸 도전적인 아이디어일 뿐이다.

제목을 ‘나의 과학적(SF적) 상상력’이라고 달았으니, 이제 나 자신의 예를 들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렇게까지 ‘과학적’인 소설을 쓰는 편은 아니다. 지금의 과학지식을 노골적으로 왜곡하는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처음부터 과학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펼치는 경우도 별로 없다. 그리고 SF에서는 그게 허용된다.

그래도 어디 뭐가 있나 보자. 최근에 난 외계인들의 지구 침략을 다룬 「대리전」이라는 경장편을 썼는데, 여기에 나오는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이나 초광속 통신 기술과 같은 것들은 모두 과학적이라기보다는 SF적이다. 물론 이런 아이디어가 과학적이던 시절이 있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 SF작가들은 그냥 그런 것이 있고 이것으로 이야기를 편리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냥 그 재료를 쓴다. 과학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에 과학적인 면이 전혀 없느냐... 꼭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나는 외계인들의 비밀 통신을 위해 중성미자 통신기라고 하는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구 기술로 잡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신호가 지구를 뚫고 지나가므로 위성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약간 과학적인 맛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아서, 나는 알고 지내는 물리학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베타 붕괴를 이용한 중성미자 방사체를 단 수신기를 하나 만들어 이야기 속에 넣었다. 그러나 그게 이야기 속에서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중성미자 통신기가 없어도 이야기는 잘만 흘러간다. 이건 그냥 디테일일 뿐이다. 물론 중성미자 통신기라는 아이디어가 전적으로 내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순진무구한 분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또 뭐가 있을까? 경력 초기에 난 농담 삼아 거대한 다이슨 스피어를 소재로 삼은 단편을 하나 쓴 적 있다. 솔직히 쓰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 소재를 다룬 훌륭한 SF 소설들이 있고 내가 이론을 다루는 방식은 너무 건성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건 좀 지나쳤다.

과학적이라기보다는 과학사적인 아이디어를 하나 멋대로 동원한 적이 있긴 하다. 지금 나는 「용의 이」라는 제목의 경장편을 다듬고 있는 중인데, 이 이야기는 우주선과 외계 행성이 등장하는 SF지만 유령과 좀비들이 등장하는 판타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파괴할 수도 있고 조립할 수도 있는 영혼의 개념을 도입했는데,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심상을 만들기 위해 이미 폐기된 이론 하나를 멋대로 개조해 이용했다. 그건 바로 19세기 원자론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물리학자 캘빈 경의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것인데 당시 그는 원자를 무한 회전하는 에테르의 소용돌이로 상상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이미 폐기된 구닥다리 아이디어로 SF를 쓰는 데에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심상을 이용해 소용돌이 모양을 취한 영혼의 심상을 만드는 건 그렇게까지 심한 규칙 위반이 아닌 것이다. 난 그렇게 했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나머지는 뭘까? 난 인공지능이 지구를 지배하고 인간들은 그들에 사육되거나 벌레처럼 시스템에 기생하는 미래를 상상한 「기생」이라는 단편을 쓴 적 있다. 이건 과학적으로 특별히 무리한 설정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특별히 도움을 주는 설정도 아니다. 여기서 과학은 인공지능이나 거대한 강철도시와 같은 배경을 제공해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물론 이런 것들을 만들려면 과학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처럼 ‘그런 도시가 있었다’라고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사람에겐 그 도시를 만들기 위해 도입한 과학기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필요가 없다. 필요한 건 가상의 기술이 낳은 결과물이지 기술 자체가 아닌 것이다. 아마도 이건 과학적/SF적 상상력의 표준점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조금 더 과격한 주제인 시간여행은 어떨까? 최근 몇 십 년 동안 시간 여행은 물리학자들의 퍼즐 게임과 같았다. 전엔 절대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 설정이 미니 블랙홀, 우주끈 (슈퍼스트링과는 다르다), 웜홀을 이용한 온갖 과격한 아이디어들을 통해 심각한 과학논문에 등장하고 이들은 모두 그럴싸하다. 심지어 그들 중 적당히 다듬어 SF에 적용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 SF작가들은 이 이론에 지나치게 매달리지는 않는다. 그들에겐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이론이 무엇인가라는 것보다는 시간 여행과 그 자체의 논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고르는 것과 같다.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멋대로 역사를 바꾸게 두려면 평행우주로 갈라지는 다층우주를 선택한다. 패러독스를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려면 단선우주를 선택한다. 한꺼번에 하지 않을 거라면 둘 다를 선택해도 된다. 나도 시간 여행을 다룬 이야기를 몇 편 썼는데, 설정이 모두 다르다. 「느뵈변주곡」에서는 시간여행을 이용해 다층우주를 탐사하는 여행자들을 등장시켰고 「얼어붙은 삶」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를 바꿀 수 없는 단선우주를 만들었다. 한쪽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잡아가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SF작가들은 사실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이론이 옳은가가 아니라 이론이 얼마나 재미있느냐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판타지와 SF의 경계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내가 가장 편하게 여기는 곳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유령과 좀비들이 나오는 'SF 소설'을 쓰는 중이다!) 이 영역에서는 더 이상 과학이 필요 없고 필요하더라도 그 의미는 왜곡된다. 무엇을 예로 들면 좋을까? 난 우주의 인과를 조작해서 미래를 보고 세계를 통제하는 초능력자들을 다룬 「나비전쟁」이라는 단편을 쓴 적 있다. 내용과 제목을 보면 이건 꼭 카오스 이론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내용을 보면 그게 아니다. 주인공들은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인과의 결과를 무조건 알고 있고, 심지어 그 혼란스러운 인과의 사슬을 계산해서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뭔가 심하게 잘못되어 있지만 상관없다. 이야기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나비전쟁」은 그래도 카오스 이론이나 나비 효과 같은 말들이 붙어 있어서 과학소설 비슷하게라도 보이지만 「면세구역」은 그런 것도 없다. 나는 도시가 계속 복잡해지만 그 복잡성이 자체적으로 증식해서 여벌의 복잡성을 만들어내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만들었는데, 이걸 지지해주는 과학 법칙 따위는 전혀 없다. 이건 순전히 우리에게 도시에 인간이 닿지 않는 여벌의 시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핑계이다. 물론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이론 자체가 재미있다는 점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다 이런 식이다! 안다. 이건 쥘 베른이 『해저2만리』에서 잠수함을 꿈꾸었는데 그게 20세기에 현실화되었고... 운운의 답변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점을 알아두었으면 한다. 쥘 베른이 잠수함을 꿈꾼 건 사실이고 이후의 수많은 잠수함 설계자들이 『해저2만리』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쥘 베른은 『해저2만리』를 통해 미래 과학기술을 예언한 것이 아니다. 그는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서 『해저2만리』를 썼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거대한 대왕오징어가 배를 잡아먹고 아틀란티스의 폐허에서 금을 파내고 거대한 소용돌이가 배를 통째로 삼키는 환상세계를 탐사하기 위한 핑계였다. 이런 면에서 SF와 판타지는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꿈과 이야기의 재료를 어디서 얻느냐는 것이다. 19세기부터 과학은 판타지를 위한 훌륭한 재료들을 제공해주었고 그 재료들은 장르 안에서 재활용되며 또다른 판타지를 만들어내왔다. 그들 중 하나를 규칙에 따라 이용하면 SF작가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SF 작가들이 엄격하게 과학기술에 대한 현대의 지식에 충실한 모범적인 일꾼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서 SF를 쓰는 게 아니다. 우리가 SF를 쓰는 것은 그게 재미있는 작업이고 손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 그게 전부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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