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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친구로 둔 인간, 피뢰침이 된 인간 - 문학작품에 나타난 (비)과학적 내용

문학은 상상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에 동의 할 것이다. 꿈을 꾸는 듯한 작가의 얼굴표정(약간은 나른한), 혹은 우리를 알 수 없는 세계로 안내하는 다양하고 오랜 이야기들의 먼지 냄새를 떠올려도 좋다. 아니면 한권의 책을 들고 가로수 낙엽 위를 거니는 익숙한 장면도 생각날 듯 하다. 요컨대 문학이 건네는 다정한 말소리는 우리를 지루한 일상의 쳇바퀴에서 끄집어내 상상의 하늘로 날아오르게 한다. 그렇다면 과학은 상상이라는 말에 대해선 어떨까? 책갈피 사이에 낙엽을 만지작거리던 사람들도 좀 당황할 것 같다. 과학은 과학이고 상상은 상상이지 않느냐고, 이것은 내가 자장면을 좋아하고 당신이 짬뽕을 좋아하는 것처럼 자명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사실 과학하면 흔히 형형색색의 물이 끓고 있는 실험실, 아니면 최첨단의 인공위성기술, 비행체 등이 연상되곤 한다. 검증 가능한 엄격한 논리와 반복적 실험을 통한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 과학이다. 관찰자의 주관이 배제된 상태에서 오직 정확함과 세밀함으로 승부를 거는 과학자의 이미지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하면 생각하게 마련인 실험과 엄밀한 수학적 정산과정 등은 사실 과학자의 창의적 가설을 확증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뒤따라올 뿐이다. 과학은 상상에서 발원하는 측면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가령 주로 소주안주로 바라보던 참새가 자유롭게 날아가는 모습을 우연히 본 어떤 사람이 “나도 저 참새처럼 날아갈 수는 없을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한국의 라이트 형제가 될만한 과학적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고 참새는 참새라는 데서 멈춘다면 그는 평생 참새를 술안주로만 벗할 뿐이다. 그렇고 보면 창의적일수록 기존의 사유패러다임을 벗어난 ‘깨는’ 상상에서 발원하곤 한다. 현대과학의 틀을 바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그가 아직 물리학자가 아니었을 때, 한번도 이론 물리학자를 만난적도 없을 때 만들어졌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은 과학이나 문학이나 중대차한 문제제기의 시발점이다. 과학도 자유로운 상상이라는 측면에서 문학과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과학이 문학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대표적으로 소설을 살펴보자. 원래 소설은 자신의 외부에 있는 다양한 사회적 개념과 대상물들을 집어삼키며 증식, 생존해가는 장르이다. 생태문제를 다루면 생태소설, 역사적 소재를 다룬다면 역사소설, 여성문제를 이야기하면 페미니즘소설 등등이 되겠다. 이질적인 체계와 사유를 포섭해 들어가는 소설의 장르적 속성을 보면 과학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본격적인 SF소설이 아니고선 과학적인 법칙과 내용을 소설에 들여오는 방법이 빈번한 편은 아니었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해부학적 장면,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수학적 공리 등이 널리 알려진 경우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소설에서 과학적 내용은 소재적 차원에서, 혹은 “현실을 비틀어 바라보는데 필요한 요소”(유철상, 「한국 현대소설에 나타난 과학 인식」) 정도로 차용되었다. 중요한 점은 과학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과연 인간이해에 어느 정도의 접점을 부여해주느냐가 과학을 바라보는 문학의 솔직한 속내일 듯 하다. 그러니 현상적으로 과학적 내용을 ‘많이’ 적용하면 좋고 ‘적게’ 활용하면 나쁜 경우라 말하긴 힘들다. 인간이해라는 잣대를 가지고 제대로 만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 작가들은 이 이질적인 외계인과도 같은 과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자. 박민규의 「카스테라」(『문학동네』, 2003 겨울호)는 냉장고 이야기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가난한 자취생의 방, 엄청난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낡은 냉장고와 주인공, 작품의 무대는 이정도이다. 불쾌지수 높은 여름날 못지않게 “불쾌할 정도로 외로운” 주인공은 냉장고를 소란스런 영국 훌리건(hooligan)으로 생각한다. 냉장고가 내는 소음은 한 인격의 강한 발언권으로 화하고 주인공은 곧 냉장고와 친구가 된다. 작품에선 이렇게 평가한다. “1926년 제너럴 일렉트릭이 세계 최초의 현대식 냉장고를 생산해낸 이후, 인간과 냉장고가 친구가 된 최초의 사례였다.” 여기서 작가가 반문하는 것은 인간과 냉장고가 친구인 게 이상한 점이 아니라 인간이 불쾌할 정도로 외로운 점이 이상하다는데 있다. 때문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바로 자신의 곁에 냉장고가 있음을 알게 된다”는 언급은 타인에게 무관심한 현대사회에 대한 지독한 조롱이다.

작품은 곧이어 냉장과학의 역사를 언급한다. 14세기의 중국인들이 이용한 소금물의 증발을 이용한 냉장원리, 1834년 영국의 제이콥 퍼킨스가 에테르의 냉각효과로 만든 인공압축기, 1926년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의 최초의 밀폐형 냉장고까지. 다분히 백과사전적 지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냉장과학의 자세한 역사가 아니라 냉장고라는 매개물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바이다. 상상은 가시적이고 유한한 그 무엇에서 무한한 세계로 연상해 들어가는 사고의 연쇄이다. 그러면 냉장고에서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작품에서는 ①소음이 있다 ②부패를 막아준다 ③안에 무언가를 넣을 수 있다 정도를 떠올릴 수 있다. 소음은 듣기 싫은 소리를 가리킨다. 이 전제에서 유의할 점은 주체가 누구이냐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냉장고의 소음에 인격을 부여하는 작품의 의도를 고려해보건대, 소음은 획일화된 현대사회가 배제한, 혹은 배제하려고하는 그 무엇을 나타내려함을 알 수 있다. 전체주의적인 사회일수록 개인의 자유로운 의견을 소음처럼 여긴다. 결국 냉장고의 소음은 자신의 진정한 있음에 대한 강한 의견표시이다. 두 번째 연상은 작품의 다음부분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분명, 지금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거야.

냉장고를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충분한 공감이었다.

냉장의 세계에서 본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부패한 것인가.

-「카스테라」

부패한 세상과 대립하는 냉장의 본성과 접하게 된 순간 “세상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깨달음의 순간 낯익던 습관의 테두리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우리는 사물과 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썩은 세상을 향해 일갈하기 위해 우리는 훌리건이라도 되어야 한다. 도대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해본적이 몇 번이나 되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연상은 문학이 혼란한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엿보인다. 냉장고에 집어넣는 원칙은 “소중하거나, 세상의 해악인 것”이다. 타락한 세계에서 문학이 추구해야 하는 기준은 소중한 것은 잘 냉장보관하고 해악적인 것의 더 이상의 부패를 막는 데 있다.

「카스테라」는 냉장과학의 문학적 접목이다. 문학은 과학이 될 필요도 없고 과학도 마찬가지겠지만 생활 속 과학기술은 어떻게 문학적 상상력으로 어떻게 변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카스테라」가 비교적 과학기술에 대한 충실한 반영으로부터 인식론적 깨달음을 끌어온다면 김영하의 「피뢰침」(『작가세계』, 1998 가을호))의 경우는 작품의 문학적 상상력을 위해 과학적 사실을 수정한 경우이다. 작품은 벼락 맞고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에 여주인공이 가입해서 전격(電擊)체험을 다시 목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뒤늦게 자각한 공포가 소량의 배설을 지시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를 살린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게 없었다면 우린 숯덩이가 되었겠지요…….(중략)…….그때 전류는 우리 몸에 길을 냈기 때문에 또다시 맞는다 해도 전류는 그 길을 따라 마치 피뢰침을 지나듯 우리 몸을 지나갈 겁니다.

-「피뢰침」

벼락 맞는 순간, 배설로 인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설명과 한번 맞은 사람은 다시 맞더라도 죽을 확률이 거의 없다고 말하는 부분은 사실 과학적 근거가 없다. 그럼 작가는 왜 진짜가 아닌 거짓말을 말하는가? 작가는 과학적 근거 때문이 아니라 문학적 개연성을 위해 비과학적 사실을 쓰기도 한다. 배설행위는 내 몸의 무언가가 빠져나가 ‘대기와 대지’와 하나가 되는 상징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가령 벼락을 맞은 후 주인공은 ‘어린 소녀 하나가 몸을 웅크리고 귀를 막는’ 애벌레와도 같은 모습의 그림을 그려놓는다. 탄생이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배설된 순간의 다른 이름이라면 전격체험은 결국 새로운 나로 탄생하려는 의지로 번역될만한 근거이다. 그렇다면 다시 벼락을 맞으려는 설정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진짜가 찾아옵니다. 그때, 아주 잠깐, 다른 세상, 다른 나를 보는 겁니다. 나는 내 몸과 대기와 대지의 주인이 됩니다. 아주 잠깐,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한사람의 퍼포모인 셈입니다. 언젠가 지극히 완벽한, 공포와 전격을 일치시켜 자아를 뛰어넘는, 그 경지에 이를 때까지 나는 적락운을 쫓아다닐 겁니다.

-「피뢰침」

왜 벼락을 또 맞느냐는 화자의 질문에 전격모임의 리더인 J가 하는 말이다. 이는 왜 당신은 위험하게도 번지점프를 하려고 하고 왜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에 목숨을 거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벼락을 맞는 것은 지금까지의 낡은 가치와 자아를 벗어나는 찰나적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다. 벼락이 떨어진 J의 몸과 하나가 될 때 “내 몸 속의 전원들이 일제히 켜지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화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벼락의 흔적인 전문(電紋)이 암시하는 바대로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다만 흔적으로만 지니고 살고 있다. 전격체험 후 화자가 벼락에 타버린 시계를 계속 지닌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전격의 순간 멈춘 시계는 그 이후의 삶이 과연 진정한 삶이었는지를 묻는다. 진정한 순간은 사라지고 우리는 다만 ‘멈춘’ 시간 속에서 좀비(Zombie)와도 같이 살아간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말이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 물론 과거로써가 아니라 현재 삶의 과정으로 투과해내는 궤도를 밟아야 한다. 이미 사라진 그 흐릿한 흔적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가치로 승화한다.

지금까지 돌아본 대로 문학은 과학적 사실 그 자체보다는 사실을 인간적 진실과 사회적 정의로까지 안내하는데 관심이 크다. 분명한 점은 문학의 잣대가 가늠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냐를 묻는데 있지, 문학은 원래 비과학적이다거나 혹은 과학적 인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있지 않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집구석에 있는 냉장고를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그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치나 달걀이 아니라 나를 뒤흔들 어떤 것이 나올 수 있다. 아니면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붙잡고 과학적 명제를 다시 고민해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의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