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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에 젖은 계몽주의자에서 중독된 괴물 과학자까지 - 한국문학 작품에 그려진 과학자의 모습

1. 계몽주의 과학자와 그 희화화

1883년 <한성순보>가 발행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이다. 이 신문의 주요 역할중 하나가 ‘과학’소개였다. ‘과학’이란 단어가 있는 줄도 몰랐던 시기(당시엔 ‘과학’을 ‘문학’이라고 번역했었다), 신문은 지구에 대한 정보, 전기, 전보, 기선, 천문학, 현미경, 망원경 등을 순차적으로 소개했다. 이를 계기로 과학, 혹은 지구라는 단어는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다. ‘땅의 모양은 귤처럼 둥글다’라는 기사를 읽은 당대 시민들은 무슨 상상을 하였을까?(상상력에 도움을 주기 위해 북반구와 남반구의 그림까지 싣고 있다) 백여 년 전만 해도 우리민족에게 과학이란 단어자체가 엄청난 발견의 대상이었다. 대중에게 과학을 알리려 한 <한성순보>의 집요한 노력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의 개화에 대한 열망을 읽어낼 수 있다.

근대문학 초기에 지속적으로 ‘과학’의 중요성을 주창한 사람은 춘원 이광수이다. 춘원은 장편『무정』과 『개척자』, 『흙』등에서 지속적으로 과학자 혹은 계몽주의자 주인공을 선보인다.『무정』의 주인공 형식은 영어선생이자 생물학을 전공하려 하는 지식인. 그는 교육을 통해 강점기 우리민족을 (근대적으로) 개화 ․ 선도하려 한다. 부잣집 딸 선형과 약혼한 그는 미국으로 유학가기 위해 경부선열차를 탄다. 이 열차는 홍수로 인해 삼랑진역에서 멈추고 만다. 집과 땅을 잃은 불쌍한 농부들을 보면서, 민족이 살 길은 오로지 그들에게 ‘과학’을 주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겠다. 지식을 주어야겠다. ‘과학! 과학!’하고 형식은 여관에 돌아와 앉아서 혼자 부르짖었다. 세 처녀는 형식을 본다.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과학을 주어야 하겠어요. 지식을 주어야 하겠어요.”

(이광수, 『무정』 본문 중에서, 강조는 필자)

홍수와 같은 자연의 힘에 모든 운명을 맡기고 있는 조선 민중들의 지식 따위는 과학을 앞세운 서구근대의 지식 앞에서는 무지몽매와 동의어로 인식될 뿐이다. 따라서 당대의 지식인들은 우리국민을 영원한 미개인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계몽담론으로서 과학을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결심을 하고 있는 형식조차도 실상 과학이 무엇인지 확연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정』의 마지막 부분, 여관방에서의 주인공들의 대화내용은 유학 가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 포부를 밝히는 장면이다.

“나는 교육자가 되렵니다. 그리고 전문으로는 생물학을 연구할랍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 중에는 생물학의 뜻을 아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형식도 생물학이란 참뜻은 알지 못하였다.

(이광수, 『무정』본문 중에서, 강조는 필자)

과학은, ‘구더기가 들끓는 무덤’과 같은 미개사회를 문명사회로 이끌기 위해 반드시 알고 또 알려야 할 우선과제였다. 특히 작가는 문학을 계몽의 수단으로 생각하였으므로,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주인공으로 하여금 과학을 공부하게 하고, 그것을 민중에게 나누어주어야만 한다는 강박적 사명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과학은 담론이자 당위 그 자체였다. 문제는 그러한 담론을 문학 속에서 적실하게 형상화하지 못해냈다는 데 있다.

『개척자』,『흙』등의 장편소설에서도 춘원은 ‘민족에게 과학을 주어야’ 한다는 당위의 계몽담론을 지속적으로 구현한다. 『개척자』의 남자주인공은 화학자. 주인공 김성재는 동경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발명을 하기위해 실험에 몰두한다. 그러나 7년 내내 실패만 거듭한 채 가산만 탕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흙』의 주인공 허숭 또한 비록 과학자는 아니지만 고향농촌으로 돌아가 계몽활동을 펼치는 한편,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를 응급처치하거나 전염병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과학을 알고, 그것을 적극 활용하는 계몽주의자다. 이 작품의 중간쯤에 외국에서 돌아온 박사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발명가요, 다른 한 사람은 교육자다. 그러나 춘원은 두 사람의 활약상을 적절히 써먹지 못한다. 발명가는 소설의 전면에서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며 교육자는 요란한 연애만 하다 회개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생물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계몽주의자가 소설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 과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밖에 없었을 것이다.

춘원의 막강한 라이벌이었던 김동인은 그의 『춘원연구』에서, 「무정」, 「개척자」는 소설을 설교기관으로 삼았고 공상에 젖은 비현실적 인물을 그렸기에 감동도 정열도 없는 작품이 되어버렸다’고 혹평하며 춘원의 계몽담론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또한 이런 작가의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희화화된 과학자를 내세운 단편을 선보인다. 「K박사의 연구」가 그것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멀지않은 미래에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닥칠 것이다’라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받아들인 K박사의 연구과제는 대체식량의 생산이다. K박사는 연구에 매진하여 대체식량을 만드는데 성공, 사회의 중요인사들을 초빙하여 시식회를 겸한 기자회견을 갖는다. 여기까지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서 나온 인분이 대체식량의 주원료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이 사실을 발표한 순간, 시식회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대체식량으로 인류를 구출하겠다는 K박사의 꿈은 좌절되고 만다.

김동인은 왜 하필 인분으로 대체식량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과학, 혹은 과학자를 부르짖으며 민중을 계도하려던 춘원 소설들에 대한 패러디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학문으로서 과학을 항문으로서 과학으로 바꾸어버린 김동인 작품의 주인공 역시 비현실적이고 공상에 빠져있기는 춘원의 주인공에 못지않았다.

2. 권력자 아버지, 혹은 치유자로서 과학자

‘저들에게 힘을, 지식을, 과학! 과학!’ 의 근대담론은 해방이후 국가의 지상명령이 되었다. 1965년 과학기술연구소(KIST) 탄생, 1967년 과학기술처 발족, 1968년 과학의 날 제정 등 아는 것이 곧 힘이며 과학입국이 국가의 핵심정책인 시대가 되었다. 근대화시기 내내 과학자는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며 개인의 신체와 내면을 치유하기까지 할 수 있는 전지전능의, 권력자 아버지의 역할을 자임한다.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는 정신분석학을 전공한 의사가 등장한다. 빙의에 시달리던 한 여성이 무당, 심령술사, 퇴마사 등등의 치료사들을 거쳐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이 의사였다. 여기서 여주인공은 프로이트식 정신분석 치료를 받게 된다. 그녀는 대화요법을 통해 최초에 경험했던 트라우마와 마주한다. 철들기 이전의 그녀에게 커다란 사랑과 상처를 동시에 안겨준 자들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였다. 작가는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치료자(정신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과거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생물학적 부모와 대면하게 한다. 근대 의료과학은 어떤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개인의 신체 혹은 정신을 하나의 물질로 객관화한 뒤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제거하거나 봉합하여 더 나은 상태로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맹신적인 믿음이 의료과학에 권력을 부여한다.

이 점을 잘 파악한 것이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다. 제목의 ‘당신’은 끊임없이 주체인 개인의 몸을 교정하고 치유하며, 때로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에까지 깊게 침투하여 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의료권력자이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인들과 병원장 조백헌 대령 간의 이야기이다. 소록도의 역사는 일본의 무자비한 폭력행위의 역사와도 같다. 나병, 즉 한센병이 치명적인 이유는 이 병이 신체를 손상시킨다는 데 있다. 신체손상은 대일본제국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이미지를 가장 격렬하게 훼손하는 것이라 파악했다. 1916년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설립한 일본은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격리, 수용하기 시작했다. 한센인들은 전염된다는 빌미로(한센병은 전염되지 않는다!) 부모자식이 강제로 격리 수용되고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남성들은 무조건 단종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여성의 경우 결혼 후 임신하지도 못하게 했다. 이는 정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의료가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신체에 개입 ․ 강제하는 권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이다.

조백헌은 강점기의 병원장과 관리인들이 행했던 부당한 일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소록도 주민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축구선수단을 만들어 건강인과 축구시합을 하게하고, 간척사업에 착수해 소록도민들의 삶터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러나 소록도민들은 조백헌의 헌신적인 노력에 쉽게 동화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것은 오직 ‘당신’들을 위한 천국일 뿐이야 하는 불신이 걷혀지질 않는다. 뿐만 아니다. 간척사업이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이자마자 국가권력이 개입, 소록도주민과 병원장의 노력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조백헌은 자신이 병원장이자 관리자(아버지)로 남아 있는 한 지배/피지배, 건강인/환자, 주체/비체의 뚜렷한 분리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모순을 실감한다. 통치자로서 누구를 ‘위해서’라는 명분은 끊임없이 그 ‘누구’를 대상화 혹은 타자화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을 병원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조백헌을 오직 ‘주민’으로서 소록도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이로써 통치자/피치자, 주체/타자 정상/비정상 간의 견고한 빗금은 틈새가 생긴다. 그 틈새 사이로 ‘소록도’ 주민 아닌 소록도 ‘주민’이 마음의 빗장을 걷어치울 가능의 햇살이 언뜻 비친다. 또한 작가는 우생학, 생물학, 의료라는 냉철하고 준엄한 과학의 얼굴 위에 주름살 잡히고 훼손된 인간의 얼굴을 오버랩함으로써, 과학권력자가 아니라 진정한 치유자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3. 열린계적 상상력과 괴물로서 과학자

‘저들에게 힘을, 지식을, 과학! 과학!’ 의 정언명령은 새로운 글쓰기 주체를 탄생시키는 데도 한몫했다. 과학을, ‘너무’ 주었던 탓일까?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만들었듯, 과학맹신의 문화와 교육과 대중화가 새로운 글쓰기 주체들을 생산해냈다. 소년중앙이나 과학동아 등 어린이잡지를 보며 자란 세대, TV, 만화, 만화영화 등과 함께 성장한 SF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세대, 가상을 현실로 사는 속도전의 디지털세대 등이 새로운 작가 군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정착민의 자손이 아닌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민족이나 국가, 이데올로기라는 상상의 공동체 안에서 인간세계를 탐구하던 윗세대의 서사범주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따라서 이전세대 서사의 대원칙, 오이디푸스적 가족로망스 안에 틀 지워진, 인과관계의 의한 그럴 듯한 거짓말이라는 서사의 법칙은 무시되거나 삭제된다. 대신 태양계나 우주, 혹은 우주공간 안에 포함된 생명체 중의 하나로서 지구공동체를 상정하는 열린계적 상상력을 구사한다. 마치 땅에서 솟아나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듯 유목하는 그들은 그들의 신화를 새로 쓰거나(손흥규 「사람의 신화」, 박진규 『수상한 식모들』), 「풍금이 있던 자리」(신경숙)나 「시계가 걸렸던 자리」(구효서)처럼 하얗게 빈 아버지의 자리를 기린이나 펠리컨 등의 동물 혹은 외계인 등의 생명체로 대체시킨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어라? 어쩌다 이런 일이? 에라, 믿거나 말거나….”

그것은 상상력의 문제다. 그 상상력이란, ‘냉장고의 전생이 훌리건이었을 것’(박민규, 『카스테라』)이라는, 기계 혹은 과학 자체가 인격화되는 상상력이다. 또한 ‘고모는 여간첩 마타하리야’가 아니라 ‘고모는 미 우주항공국에서 근무하는 우주인’(정한아, 『달의 바다』)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이 더 믿음직한, 달라진 상식세계의 상상력이다. 따라서 이들 세대가 구사하는 서사는 충분히 SF적이거나 SF 그 자체이다. 뿐만 아니다. 이들 작품 속의 과학자는 전지전능한 아버지에서 괴물로 자리바꿈을 했다. 그들은, 자신이 창조해낸 프랑켄슈타인에게 거꾸로 지배당하거나 약물중독자의 비체적 삶을 사는 자들이다. 이는 한때 존경받는 서울대 교수였으나 뇌가 손상되어 먹을 것만 밝히며 침 질질 흘리는 짐승으로 변한(배수아, 『일요일 스키야키식당』) ‘마’처럼, 바이러스나 약물로 은유되는 거대자본에 침식당하고 중독된 괴물 과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Ebook으로 선보인 뒤 종이책으로 만들어진 백민석의 SF소설 『러셔』에 등장하는 과학자는 하나같이 사이보그거나 약물중독자다. 작품속의 공간과 사회는 ‘호흡중추’가 지배하는 지구와 지구의 쓰레기가 버려지는 ‘샘 샌드 듄’이라는 가상사회로 나뉘어져 있다. 『멋진 신세계』와 후속의 유사 SF소설, 컴퓨터 게임 세계의 법칙성과 통속성을 철저히 따르는 이 작품이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인도 여행을 다녀온 직후 여행소설을 쓴다는 것이 한 편의 SF가 되’었다는, 창작동기 자체가 새롭다면 새로운 점이다.

『러셔』의 주인공은 능력자계급 ‘모비’나 ‘메꽃’, 초월자계급 ‘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속도’이다. 호흡중추라는 컴퓨터 시스템을 부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퍼부어대는 강력한 공격력은, 속도자체를 즐기며, 속도의 폭력성에 의해 계급이 결정되고 승패가 좌우되는 시뮬레이션 게임에서의 그것과 닮아있다.

절대권력에 대한 무지막지한, 새디즘적 공격이 『러셔』의 특징이라면 박민규의 「깊」은 아래로 더 아래로 깊이 숨고자 하는 인간의 마조히즘적 욕망을 다루고 있다. 서기 2387년, 사상 최고의 해저 지진이 일어난 이후 19251미터 깊이의 새로운 해구가 코코스판과 나스카 판 사이에 생겨났다. 그 후 100년 뒤 지구대연합 인류의 관심은 심해로 모아진다. 지구의 밑바닥에 닻을 내리기 위해 수중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티모 합금으로 된 잠수정을 만든다. 심해거머리의 채액에서 힌트를 얻은 대체 체액 R-71도 개발, 인간의 체액과 교체한다. 이 물질을 주입한 지원자는 약 1킬로미터 정도까지 잠수하는 데 성공하고, 여기에 힘을 얻은 해양생물학자 얀은 총통을 등에 업고 실험에 실험을 계속한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듯 얀은 전혀 새로운 종의 인간, 즉 심해수중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디퍼를 낳은 괴물-어머니이다. 따라서 박민규 소설의 주인공은 속도라기보다는 압력이다. 심해의 압력을 견뎌내며 아래로 아래로 파고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이란, 전지구적 자본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태초의 어머니, 자궁과도 같은 심연 속으로 도망가고 싶은 작가의 무의식적 상상력의 표출이 아닐까?

근대문학이 시작된 이래 우리 소설은 엄격하게 순수혈통주의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조금만 달라도, 조금만 대중적이어도 허용되지 않는, ‘순수’라는 이름의 혈맥만으로는 문학을 빈혈상태에 이르게 할 뿐이다. 과학입국의 기치를 내건지 40년, 바야흐로 과학적 상상력과 문학적 상상력이 아름답게 교접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2007년 한 문학상 수상작 후보 작품에 SF소설 한 편도 버젓이 끼여있을 만큼 문학지형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보수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 새로운 글쓰기 주체들의 행보는 박민규의 표현을 빌리자면 ‘왜들 이러셔’로 집약되는 황당무계와 갈팡질팡의 세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가 황당무계한 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 않는가. 이제라도 문학은 각종 장르와 이종교배를 해야 한다. 순수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종들을 고사시키지 말고 유전자결합이라도 해서 풍성한 문학적 합성물을 쏟아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위대한 거짓말의 세계는 지속될 것이며, 믿거나 말거나의 풍성한 열매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