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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성과 시장성의 경계에 흐르는 강박

문학성과 시장성의 경계에 흐르는 강박
- 청소년문학 시장의 빛과 그늘

청소년문학 시장은 청소년소설 시장이다

▲김이구 © 운영자

대산청소년문학상은 중고등학생이 쓴 시와 소설을 공모한다. 여기서 청소년문학이란 청소년(중고등학생)이 쓴 시와 소설을 말한다. 올해 2회째 수상작을 낸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은 청소년이 읽을 장편소설을 공모한다. 11월에 5회째 수상작을 발표하는 창비청소년문학상 역시 청소년이 읽을 장편소설을 공모한다. 여기서 청소년문학이란 청소년소설 즉 청소년이 읽을 장편소설이다.

청소년문학이란 말은 자주 청소년소설의 동의어로 쓰인다. 청소년소설 중에서도 장편을 말한다. 청소년문학 시장 혹은 청소년도서 시장과 관련해서는 영락없이 청소년 독자층을 겨냥한 청소년소설만을 가리킨다. 그렇지 않은 경우 ‘내가 쓰는 청소년문학 개념에는 청소년 대상 시도 포함되어 있다’ 식으로 전제를 달아주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용법이다.

청소년문학을 규정하는 기준은 세 가지 정도가 주요한 것일 텐데 독자, 필자(작가), 주제가 그것이다. 즉 청소년이 읽는 문학, 청소년이 쓰는 문학, 청소년의 삶의 문제를 주제로 한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당연히 각각은 모든 장르를 포함한다. 따라서 청소년 독자에 맞게 쓰인 문학을 청소년문학이라는 용어로 지칭하면서 소설이라는 특정 장르에 한정해 다루려면 미리 그러겠다고 전제를 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소설뿐 아니라 시, 수필, 희곡 등을 두루 다루고자 할 때 여러 장르를 다 포함한다고 일러두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용어 사용의 여건에서 청소년문학이 생산, 유통, 소비되는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청소년문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처음 시작할 때는 출판사와 작가 모두 청소년문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지금은 웬만한 출판사는 죄다 청소년문학을 하겠다고 나선다. 작가도 마찬가지. 동화작가든 일반문학 작가든 기회만 되면 청소년 독자용 작품을 쓰겠다고 벼른다.

왜 그럴까? (……) 먼저 공급자인 출판사 측 이유인데, 아주 노골적이다. “돈 있는 곳에 마음 간다!” 불편한 표현 같지만 진실이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영리를 우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기획’한다. 그게 바로 청소년소설에 ‘꽂혔다.’ (……) 그럼 작가는? 작가들한테도 경제적 측면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일반 소설은 초판도 소화하기 힘든데, 듣자하니 청소년소설은 속된 말로 ‘떠서’ 해를 넘겨 가며 꾸준히 팔린다더라! (……) 그 다음으로는 수요자 측면의 이유다. (……) 초등학교 때 동화 읽기의 즐거움을 맛 본 일부 아이들은 다음 단계의 독서 욕구를 지니게 되었다. 이를테면 실수요 독자군이 형성된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청소년문학 활성화 사유에 해당된다.

- 박상률 「청소년문학의 자리」, 『청소년문학의 자리』, 나라말 2011, 12~14면

1990년대 후반부터 청소년소설을 발표해온 대표적인 청소년문학 작가의 진단이다. 요컨대 청소년 독자 시장이 열렸다, 청소년문학이 생산되고 읽힌다는 것이다. 청소년문학 시장은 청소년소설 시장이다.

청소년소설, 얼마나 팔리나
출판계에서는 오랫동안 청소년문학 시장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청소년문학의 선구적인 기획으로 1997년부터 출간을 시작한 <사계절 1318문고>가 꾸준히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되며 안정적인 시장 진입을 이루었지만, 청소년문학 출판이 열기를 띠기까지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강숙인의 『뢰제의 나라』(2003)로 첫발을 내디딘 푸른책들의 <푸른도서관> 시리즈, 이경혜의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2004)로 화제를 모으며 출범한 바람의아이들의 <반올림> 시리즈, 이현의 『우리들의 스캔들』(2007)로 장도에 오른 창비의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가 잇따라 선보인 2003~2007년을 청소년문학 출판의 제2기의 시작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기획회의》 247호(2009.5.5.)에서는 ‘주목할 만한 청소년문학 시리즈’를 특집으로 다루며 위 시리즈들 외에 비룡소 <청소년문학선>(2002년 시작)과 시공사 <시공청소년문고>(2005년 시작)를 더 살펴보았는데, 두 출판사의 시리즈는 외국 작품을 번역 소개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청소년문학 출판이 열기를 띠면서 출판사의 공모가 줄을 이었고, 이를 통해 청소년소설 작가가 탄생하였다. 그전까지는 소설가나 시인, 아동문학 작가들이 청소년소설을 써서 출판해 청소년소설 작가가 되었다면, 이 시기부터는 출판사 등의 공모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청소년소설 작가군을 형성하여 안정적인 작품 공급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청소년소설 공모의 상금을 보면 대부분 2천만원(사계절, 창비, 비룡소, 문학동네)인데, 책값을 1만원으로 계산하여 인세로 환산했을 때 2만부 인세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즉 공모하는 출판사 쪽의 판매 기대 수치가 2만부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3회(2009)까지 운영하다 중단된 세계청소년문학상의 경우 5천만원의 상금을 내걸었는데, 5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대했다고 볼 수 있다.

공모 수장작의 경우 완성도가 뛰어나고 가독성이 높으며 화제성이 있다면 5만부 판매 기대가 꼭 높은 수치라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청소년문학상 수장작들은 여러 작품이 3만~5만부 이상 팔리고 있으며 2008년 출간된 『완득이』(김려령)는 일약 30만부를 넘어서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한겨레 2010. 4. 26. 기사). 『완득이』는 최근 개봉된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청소년문학 베스트셀러 1위로 올라서는 등 올해에만 12만부 이상 팔렸다.

하지만 매년 화제작이 나올 가능성이 낮으며, 너도나도 공모를 해서 작품을 뽑아내려는 상황에서는 한정된 창작 자원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모 수상작 출간도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해줄 수 없고 장기적으로는 수지 타산을 맞추기도 만만치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인 작가나 기성 작가가 작품성이 뛰어난 신작을 쓰더라도 공모 수상작에 들지 못하면 출판 기회를 잡기가 어렵고, 출판 기회를 잡는다 해도 적극적인 마케팅 대상이 될 가능성이 낮으니 독자 눈에 띄지 않고 묻혀 버리기 십상이다.

『완득이』의 힘과 가족 서사의 가능성
청소년소설은 주독자층이 중고등학생이지만 중고등학생만이 읽어야 할 까닭은 없다. 공지영 ‧ 신경숙의 소설이 중고등학생 독자를 겨냥해 씌어진 것은 아니지만 중고등학생들도 많이 읽듯이, 대부분의 문학 장르는 타깃 독자층 위아래로 넘나들며 독자층을 형성하게 된다.

청소년소설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기가 어렵다. 독서 인구를 10대에서 60대까지라고 볼 때, 중고등학생 독서 인구는 통틀어서 그 10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일반 베스트셀러의 판매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반짝하고 팔리기보다 오래 꾸준히 팔리는 장점도 있다. 책의 재미와 의미가 평가를 받아 입소문이 나고 권장도서로 여기저기 소개되기 시작하면 탄력을 받아 사오년 이상 안정적으로 판매된다.

청소년소설이 『완득이』처럼 1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면 대개는 일반 소설 독자도 끌어들였다고 보아야 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조앤 롤링)도 어린이나 청소년 독자를 넘어 전 독서층에 읽힘으로써 대형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다. 청소년소설이 다루는 주제가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완득이』의 예에서 보듯 가족 구성원이 두루 읽을 수 있는 성격의 작품이 될 가능성은 크다. 또한 청소년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나 연극, 텔레비전 드라마 등을 만든다면 ‘가족 서사’를 강화하고 ‘가족이 즐기는 서사’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더 많이 열려 있다. 영화 <완득이>(감독 이한)는 이러한 맥락에서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제작되었고, 이런 요인은 가족 영화가 부족한 현실에서 관객몰이를 하는 데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을 위한 문학인가, 문학을 위한 시장인가
잔잔하던 청소년문학 시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진한 청소년문학 시리즈들로 달아오르며 국내 창작 중심으로 재편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학교와 도서관 등의 권장도서, 학부모의 선택에 따른 영향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의 재미와 흡인력으로 일본 소설이나 장르 소설을 즐겨 읽는 청소년 독자들까지도 끌어 들이는 매력을 발휘하고 있다. 억압적인 현실을 춤으로 돌파하려는 비보이들의 꿈을 그린 『몽구스 크루』(신여랑, 2006), 자신의 가난과 불행을 직면하고 명랑과 유머 코드로 날려버린 『완득이』, 세상의 위선과 욕망을 비추어주는 마법의 빵집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판타지인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2009), 문제아들의 자기 응시와 성찰을 담아낸 여로(旅路)형 서사인 『하이킹 걸즈』(김혜정, 2008) 등은 청소년소설의 몇 가지 길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작품이다.

시장의 요구는 상품의 지속적인 공급을 요구하는 동시에 독자의 입맛을 달콤하게 만족시키는 소화하기 좋은 물건을 선호한다. 지속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생산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하려면 창작의 틀이 되는 장르적인 규범이 필요하다. 잘 빠진 장르 규범은 그 위력으로 일정하게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 아직 장르적 발전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청소년소설이 당분간 이런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며 몇 가지 방향에서 장르소설로서의 특징들을 갖추어 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박상률은 요즘 작가들이 “문제적 인물을 다루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극단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설정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로지 독자의 재미를 자극하기 위해 소재나 제재가 선정적이거나 극단적으로 흐르”고, “밑도 끝도 없는 엽기 혹은 만화 같은 얘기를 즐겨 다룬”다는 것이다.(앞의 글, 23~26면) 남발되는 외래어 제목들, 엽기적인 그림으로 장식된 표지 등도 시장에 호소하려는 전략일 것이다. 대중성과 문학성의 행복한 일치는 대개 성사되기 어렵지만, 나로서는 시장에 적응하고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문학적 전략 자체는 늘 필요한 것이며 추구할 만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박상률이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선정적인 소재주의 유행의 유혹’에 넘어가 ‘청소년의 겉으로 드러난 삶의 양태’에만 끌려 다녀서는 자기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할 수가 없다.

청소년소설만이 청소년문학의 전부인 양 호들갑스러운 분위기에서 독자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청소년시가 있다. 박성우 시인의 『난 빨강』(창비 2010)이 그것이다. 최근에 나온, 공고 학생들이 쓴 시를 엮은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나라말 2011)에도 독자의 손이 자주 간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세일즈 포인트를 보면 『난 빨강』은 4,509점,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는 4,935점이다. 2010년 블루픽션 수상작 『번데기 프로젝트』(비룡소)가 2,786점, 2011년 사계절문학상 수상작 『내 청춘, 시속 370㎞』가 6,855점을 기록하고 있으니(2011. 11. 8. 기준) 서로 비교해 보면 괜찮은 성적이다. 독자들은 청소년의 삶을 진실하고 날카롭게 다룬 청소년시, 청소년이 자신들의 삶과 마음을 직접 곡진하게 드러낸 시를 꽤 찾아 읽고 있다는 이야기다. 청소년문학 시장은 출판계의 상투적인 인식과 다르게 청소년소설 밖으로도 열려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