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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여기'의 청소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향해
그 가능성을 열어놓자

‘오늘, 여기’의 청소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향해 그 가능성을 열어놓자

▲이옥수 © 운영자

요즘『닥치고 정치』라는 책이 뜨고 있다. 참으로 경박스럽고 험악한 제목이다. 그런데 마침, 청소년소설 작가로서 느끼는 청소년 문학에 대한 원고를 주문 받고 있는 터라 나도 모르게 그 책을 보는 순간, 닥치고 글 써, 라는 말이 툭 튀어 나왔다. 닥치고 글 써! 정말 닥치고 글만 쓰고 싶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오직 작가는 글로만 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런데 결국 원고 마감 날짜를 어기면서까지 속을 끓이고 있으니 점잖게 원고를 마감하기는 틀린 모양이다. 그래, 기왕에 깔아놓은 멍석이니 닥치고 있던 말이나 한번 내지르고 볼 일이다.

그 동안 청소년소설을 몇 권 펴내고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제는 어디 가서 자연스레 저는 청소년소설을 쓰는 작가입니다, 라는 소개를 서슴없이 하게 된다. 이런 내 소개에 나타나는 반응은 대부분 두 가지이다. 청소년소설가, 그런 것도 있었나? 그 생소함에 겸연쩍어하는 사람. 청소년소설가? 소설이면 그냥 소설이지 청소년소설은 또 뭐야, 아예 대놓고 그 자리에서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 이런 반응에 이젠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길만한데도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언제나 춘치자명(春雉自鳴)하게 된다. 그러나 이왕 드러내는 스스로의 허물이라면 부대끼는 속내나 드러내 볼까나.

두어 해 전, 어느 출판사의 송년 모임 때 일이다. 마침 어떤 소설가 한 분이 초면인 나를 보자 반색하며 내가 쓴 소설을 잘 읽었노라고,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이 양반이 꽤 유명한 소설가지만 청소년소설집을 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심 반가웠다. 그런데 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이 소설가 왈 “청소년소설, 그거 뭐 별거 있나요. 아무렇게나 한 권 묶어서 내면 되지.” 아, 그 말 한마디에 난 그만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렇게나 한 권 묶어서 낸다?(그 작가는 그 별거 없는 것을 올 해도 한 권 더 펴내었다) 짐작컨대 그 작가는 성인소설을 쓰는 틈틈이 청소년소설을 대충 한 권 묶어내고 꽤 쏠쏠한 인세를 챙겨보니 재미가 났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대거리 한 번 못하고 이렇게 자괴감에 휩싸여 찌질하게 뒷담화나 하고 있는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이해하시라, 솔직히 청소년소설을 쓴다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정신연령이 그 수준에 딱 멈추어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아직도 어설픈 객기와 반항으로 세상과 맞짱 뜨고 싶기 때문에 이런 무모한 투정도 들이밀 수 있는 것이리라.

정말이지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고달프다. 삶의 참다운 가치관을 보여주고 도덕적 기준을 세워주어야 할 부모는 자신이 못 다 이룬 한을 풀기 위한 마구잡이로 아이들을 몰아가고 학교에서는 성적 제일주의로 억압하며 줄을 세운다. 어디 그뿐인가. 천박한 자본주의는 거침없는 소비문화로 아이들의 정신을 함몰시키고, 자극적인 대중문화는 질풍노도인 이들을 포획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한다.

이들을 위해 기성세대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글쟁이인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아이들의 가슴에 가득 찬 원망을, 아직 어려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어떻게 대신 전달해 줄 수는 없을까? 그런다고 시대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 어른들이 별 신통한 해결책을 내려주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아우성에 한 번쯤 귀 기울이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아니, 어른들이 아니라, 자기들끼리라도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어 혼자서 끙끙대던 문제들이 결국 모두의 문제였다고 확인시켜 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다. 이런 고민에서 결국 청소년 문학은 시작되었고 부족하지만 문학으로라도 그들의 감수성에 접근하고 싶었던 것이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해서 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현실을 그들 스스로가 대응하고 자정할 수 있도록 돕는 문학적 역할을 감당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청소년문학은 처음부터 어떤 소설적 개념이나 미학, 한국 문단에서의 위치 같은 것을 따져 볼 겨를도 없이 암묵적 함의에 의해 자생적으로 발원된 문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시발점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사계절을 비롯한 몇몇 출판사들이다. 아동물을 출간하던 출판사들이 동화를 읽고 자라난 청소년들에게 연계해서 읽힐 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기존 문학에서 성장의 내용이 담긴 책들을 선별해서 출간하는 한편, 기존 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면서, 공모를 통해 신인작가들의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렇다고 청소년소설이 오롯이 출판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작가와 독자가 그 중심에 서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작가는 대상 독자들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창작하고 독자는 작가들의 작품에 신뢰를 보이며 그 결속점을 찾아 함께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장에서 독자들을 만나보면 금방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일 년 열두 달 끊임없이 전국의 학교에서 청소년 작가들을 만나고 싶다고 앞 다투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온다. 청소년 작가들의 책상 위에는 청소년들이 보내온 갖가지 색깔의 편지가 쌓이고, 언제 어디서 만나도 작가와 독자는 물리적인 나이를 뛰어 넘어 금방 친구가 된다. 매스미디어가 세상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 이 시대에 종이책을 생산하는 꼰대작가가 청소년들과 믿음과 신뢰로 서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소설에 대한 혐의는 다분히 남아있다. 그것은 먼저, 청소년 문학 작품들은 문학성보다는 교육적 측면에 더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이다. 이 복잡다단한 세상살이에 성인들은 성인들만의 문제가 있고 아동은 아동들만의 문제가 있듯이 청소년 또한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의 중심이 교육이다. 그러므로 청소년작가들도 당연히 교육을 완전히 배제하고 글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작품을 통하여 그들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하고 그들의 정체성 형성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를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과서에 실린 문학성 높은 작품들, 그러니까 이미 검증을 거친 고전들이나 권장도서 목록에 올라 있는 책들을 학교에서는 부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그 작품들이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문학적 감성을 고취시켰으며 그들을 수준 있는 독자로 이끌었는가에 대한 해답은 각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청소년 문학을 문학성과 교육의 합목적성으로 따지기 이전에 다니엘 페나크(Daniel Pennac)의 말처럼 어린 독자를 성인 독자로 연결시켜 주려는 애정과 관심, 그리고 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 다음 혐의로는 성장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는데 굳이 성장소설을 청소년소설이라고 우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장소설에 청소년소설을 그대로 뭉뚱그려 눙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면 관계상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나열할 순 없지만, 인간이 평생토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장의 단계를 겪고 있음을 주지한다면 이 성장이란 말은 어느 특정한 한 시기에 해당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청소년들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성장이라는 이름만으로 포괄하기에는 어딘가 미진함이 있고, 청소년소설이라고 모두 성장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청소년소설의 발생 초기에는 작가들의 자전적 성장 경험담이 주류를 이룬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요즘에 출간되는 청소년소설 작품들을 보면 ‘오늘, 여기’ 청소년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문학의 혐의를 하나 더 들자면 청소년소설이 가볍다는 것이다. 가볍다? 고만고만한 소재들을 가지고 임팩트한 플롯 없이 쉬운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소년들의 일상이 그러하듯이 소재면에서도 학교, 친구, 이성, 성적, 왕따, 자살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성인문학에서 쉽게 다룰 수 있는 작금의 청년 백수문학이나 절망 속에 해체되고 있는 적나라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는 고개를 가로 젓게 된다. 그래도 청소년 문학에서는 어느 정도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그나마도 희망을 외쳐야 하지 않을까? 또한 쉬운 문장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은유나 지루하도록 세밀한 묘사로는 그들의 호흡을 붙잡아 놓을 수가 없는 고뇌가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청소년 문학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나 로망스(romance)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제까지 부끄러움을 모르고 변명 같은 속내를 들춰내긴 했지만 고백하건대, 청소년소설 창작자로서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 노력해야할 일들은 부지기수다. 먼저 청소년소설의 올바른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이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환경에 시선을 집중하고 그들과 괴리되지 않도록 늘 보폭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좀 더 그들의 생활과 밀착되어 그들의 다양한 삶과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그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를 찾아내어야 한다. 또한, 그 동안의 천편일률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지양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면서 그들이 겪고 있는 좌절과 고통을 조명할 수 있는 개성 있는 인물들을 창조해나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가독성과 소통을 위하여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날 것으로 삽입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좀 더 세련된 문장과 문학적 표현으로 그들의 언어문화를 정화하고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궁극적 목표인 수준 높은 청소년 문학을 위하여 각고의 노력과 정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청소년 문학, 어느 날 소리 없이 나타나 대형서점에 청소년 코너를 버젓이 탄생시켰고, 출판시장에 블루오션을 불러왔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먼저 읽고 선생님한테 재미있다고 읽어보라고 권하는 문학 전도 현상까지 이끌어내고 있는 이 희한한 작태. 그러나 무슨 일이든 그 시작은 어설프기 마련이고 순기능과 역기능 또한 공존하며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아직도 뭔가가 좀 어정쩡한 것 같고, 좀 마뜩찮아 보여도 우선은 그 가능성을 열어놓고 보자. 단언하건대, 앞으로 청소년 문학에 대한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질 것이며 그 위치와 위상도 곧 정립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