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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본 것이 바로 지옥이다”
플로베르와의 대담

▲귀스타브 플로베르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_프랑스 작가. 1821-1880

초기 작 『성 앙투안의 유혹』에 이어 1857년 발표한 『마담 보바리』가 대중적인 도덕률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소설 『살람보』(1862)는 고고학적인 세부 사항의 외형적 묘사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감정 교육』(1869)과 희곡 『후보자』(1874)가 잇따라 실패한 이후 『세 개의 우화』(1877)만이 성공을 이루었는데, 사후에 그의 미완결 유작 『부바르와 페퀴셰』와 『서한집』이 출간되며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 동시대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19세기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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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플로베르 선생님, 우선 전집의 완간을 축하합니다. 전집은 이미 여러 차례 출간되었지만 편지의 날짜 확정 작업까지 정교하게 마무리된 정본은 이제야 완성되었으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 외에도 수첩, 여행기, 희곡 등 선생님의 글은 거의 모두 공개된 셈입니다.

플로베르 : 편지, 수첩과 같은 사사로운 글까지 낱낱이 공개되니 마음이 그다지 편치 않습니다. 친구에게 편한 마음으로 쓴 편지마저도 공개되니 민망하기도 하고 습작품도 원래 출간을 목적으로 쓴 것도 아닌데 멋대로 출간해도 이제 내가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살아서는 저승을 동경했는데 죽었더니 예기치 못한 불편한 점도 있군요.

▲이재룡

이 : 소설도 그렇지만 선생님의 서간문을 프랑스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앙드레 지드를 비롯한 작가들이 평생 머리맡 애독서로 삼는 것이 선생님의 서간집이었습니다. 정작 소설은 『마담 보바리』, 『감정교육』, 『성 앙트완의 유혹』, 『살람보』, 『세 이야기』 그리고 미완으로 남은 『부바르와 페퀴세』까지 포함해서 딱 여섯 작품인데 비해 편지는 지금까지 발굴된 것만 해도 사천 통이 넘고 선생님이나 가족이 태워버린 부분까지 염두에 둔다면 작품보다 편지를 더 많이 쓰신 셈입니다. 결례를 무릅쓰고 비교한다면 집필활동 기간이 비슷한 발자크의 소설이 백여 편이 넘는데 여섯 편은 너무 적은 것 아닐까요? 물론 선생님의 작품은 밀도 높은 순수문학의 최고봉으로 상찬 받고 있습니다. 소설의 문체가 빈틈없이 절제된 것에 비해 편지는 선생님의 서정적이며 동시에 가끔은 다혈질의 성격이 느껴져서 그 대조가 흥미롭더군요.

플로베르 : 작품 수가 적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나의 수고본을 열람한다면 내가 게으른 작가가 아니란 것을 알 것입니다. 여섯 편의 소설을 위해 쓴 초고와 수정본은 원작 분량보다 수십 배는 될 테니까요. 집필 분량으로 치면 다른 작가에 뒤지지 않지요. 예컨대 『감정교육』과 『성 앙트완의 유혹』은 여러 판본을 완성했지만 최종본만 발표한 것인데 각기 판본을 별개의 완성된 작품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또한 『마담 보바리』라는 한 작품을 위해 오년간 수천 매를 쓰고 고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리고 편지를 많이 쓴 것은 두문불출하다보니 외부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 편지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또한 이집트 여행처럼 긴 시간을 떠돌아다니다보면 안부편지를 쓰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한 여자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지낸 적이 없다보니 떨어져 있는 여자와 대화하는 길이 편지였어요.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그 Ü나뿐작가라면 누구나 나만큼 편지를 쓰지 않았나요? 그리고 편지는 순간의 느낌이나 생각을 가감 없이 쓰다 보니 아무래도 감정에 치우치고 문체가 성기죠. 누구나 마음속에 두개의 성향, 즉 낭만주의와 사실주의가 공존하니 어느 쪽이 실제 내 모습이라고 단정할고 문체고 모두가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편지는 수신자에 따라 내용이나 문체가 달라지는데 그런 이유로 나의 서간문에서 모순과 역설만을 읽는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 자체가 모순투성이니까 아주 틀린 독법도 아닐 테지요.

이 : 선생님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마담 보바리』의 집필을 위해 오 년간 하루에 열댓 시간 이상 원고에 매달렸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지요. 동굴 속의 곰, 빙하 위의 곰으로 자처하며 외부 세계로부터 초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속물들에 격분하는 적도 많으셨지요. 초연함과 분노, 차가운 문체와 열정적 내면, 이렇듯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태도 때문에 뭇사람들이 선생님의 본래 모습에 의문을 품습니다. 우리 독자를 위해 선생님께서 지상에 머무셨던 58년을 잠깐 일별하지요. 1821년에 태어나서 1880년에 돌아가셨고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은 1857년에 단행본으로 나온 『마담 보바리』입니다. 물론 십대에 습작으로 쓴 작품도 꽤 많지만 서른 중반에 발표한 이 작품을 계기로 선생님의 공적인 삶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사적인 삶을 엿본다면 1848년 1월 에베크 다리에서 겪은 사건이 선생님 삶의 전환점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사건의 실체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았지요.

플로베르 : 남들보다 글을 조금 늦게 깨친 점을 고려한다면 나의 전 생애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바쳐진 것이었지요. 열 살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만든 문학잡지에 희곡과 단편소설을 쓴 것도 그 무렵입니다. 가족의 바람이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법대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묘한 병에 걸려서 결국 나의 뜻대로 학업, 나아가 세상을 등지고 글만 쓸 수 있게 된 겁니다. 1848년에 결정적으로 악화된 병세를 두고 후대의 전문가들이 여러 가지 진단을 내렸지만 앓은 당사자는 증세만을 알고 병명이야 의사가 붙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흔히 간질이라고도 하고 혹은 그냥 신경증, 히스테리 등과 같은 병명도 붙이더군요.

이 : 혹자는 선생님이 법관뿐 아니라 아예 직업 자체를 워낙 혐오해서 그것이 육체적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라 해석하더군요. 저도 어릴 적에 학교가기 싫어서 배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더니 진짜 배가 아팠거든요. 선생님은 중등교육을 마쳤을 무렵, 앞으로 어떤 직업, 혹은 신분도 갖기를 원치 않는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이 부르주아지라고 불렀던 세상살이에 뛰어드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지요. 도대체 부르주아가 뭐 길래 그토록 증오하셨나요?

플로베르 : 내가 생각하는 부르주아지는 재산이나 직업, 혹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구분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나는 모든 것을 천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부르주아라고 했습니다. 내가 살았던 시대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이상한 종류의 인간이 출현해서 우글거렸던 때였습니다. 속으로는 돈과 출세를 추구하면서도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고, 예술과 문화를 장식품처럼 달고 다니는 위선과 허세가 난무하던 때였지요. 소위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선악과 미추의 기준을 모두 실질적 이해득실의 여부로만 가늠하는 사람들, 이런 부류를 내가 부르주아라고 했던 겁니다. 싸구려 소설을 읽으며 짐짓 감상에 빠지고 피아노를 치고 극장에 드나들면서 스스로 고상해졌다고 믿은 보바리 부인 같은 여자가 그런 축에 끼지요.

이 : 일찍 돌아가신 것이 천만다행이고 특히 이곳으로 환생하지 않고 무덤에 계신 것은 축복입니다. 그때는 새롭게 등장한 부류였을지 모르지만 그 종족이 그동안 무척 번성했거든요. 선생님이 어릴 적이 쓴 습작품 중에서『지옥의 꿈』이 있지요. 거기에서 주인공이 악마의 날개를 얻어 타고 지옥구경을 갔는데 정작 지옥이 아니라 그냥 현실 세상 구경만 시켜줘서 약속을 어겼다고 따지자 악마가 “네가 본 것이 바로 지옥이다”라고 했지요. 하긴 선생님은 부르주아만 미워한 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증오했고 인류를 면전에서 비웃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지요. 만약 프로이트란 분을 만났다면 그런 증오와 냉소가 가족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을 법하거든요.

플로베르 : 선천적 기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체질이란 타고나는 것이지 않습니까. 가족이나 주변 환경이 다소간 영향을 미쳤겠지만 저는 모든 것이 기질 탓이라 생각해요. 나는 죽음의 갈망을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기 때문에 나는 누이동생과 함께 병원 부속건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우리는 해부대 위에 놓은 시체를 해부하는 아버지, 매일 서너 구의 시체가 마당을 통해 나가는 것을 보며 살았지요. 필경 그런 환경이 나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이후에 그런 기질에 맞춰서 일상의 환경을 내가 의도적으로 조성하기도 했지요. 나의 책상과 원고, 방 분위기 등을 내 기질에 맞춰 놓고 그 속에서 정밀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게다가 내가 스물다섯 살에 아버지와 누이동생이 두 달 간격으로 죽고, 2년 후에는 내가 평생 가장 사랑했던 친구마저 세상을 떴습니다. 친구가 죽었을 때 이틀간 시신을 지켰고 마지막으로 시체의 이마에 작별의 입맞춤을 하며 느꼈던 촉감은 죽을 때까지 나의 입술에서 떠난 적이 없어요,

이 : 그런 일을 겪고 나서 훌쩍 긴 여행을 감행한 것도 약간 의외입니다. 어머니가 건강문제로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서까지 써놓고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몽땅 탕진하며 이년 여 간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스, 로마 등지로 여행을 떠나셨지요. 일상생활은 굴속의 곰처럼 칩거하다가 바깥으로 나갔다하면 냅다 먼 길을 떠나는 것도 선생님의 이중적 성격이 보여주는 일면 같습니다.

플로베르 : 동방은 어릴 적부터 꿈의 대상이었지요. 고대의 중동 지방은 나의 작품세계에서 자주 배경으로 등장했습니다. 현대산업사회는 인간으로부터 고귀한 품성을 앗아가 버렸지요. 원시의 순수성, 본능, 과감성, 그리고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잠재한 잔인성 같은 위대한 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지금은 자질구레한 재고 정리에 평생을 소진하는 잡화상 주인처럼 쩨쩨해진 것이 우리 현대인이지요.

이 : 먼 옛날, 먼 나라에 대한 그리움과 지금, 이곳에 대한 혐오감과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군요. 그런데 정작 『성 앙트완의 유혹』은 동방여행을 떠나기 전에 초고를 완성하셨지요. 그것이 묘합니다. 테바이의 은수자가 여러 유혹에 시달리는 이 작품이 친구들에게 혹평을 받은 후 낙담해서 이집트로 떠났고 나일 강을 따라가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구경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프랑스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마담 보바리』를 구상했다는 점이 신기합니다.

플로베르 : 얼핏 두 작품은 전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닮은 점이 많습니다. 인간을 악행으로 유혹하는 요인은 많겠지만 기독교 사회에서는 흔히 일곱 가지 죄악을 꼽지요. 색욕, 식욕, 물욕, 오만, 나태 등등 우리를 유혹하는 여러 가지 악마가 성 앙트완을 유혹했다면 현대에 와서도 인간은 여전히 악마에 씌워 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추한 본성은 더욱 교활하게 위장되고 끈질기게 강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담 보바리』의 인물들은 이런 죄악 중에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을 몸으로 구현한 인간들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중에서 여자 주인공은 한 몸에 모든 죄악을 구현한 인물이지요. 이런 내 생각을 꿰뚫어 본 사람은 백년도 지난 후 미셀 뷔토르라는 다소 전위적 소설가더군요. 당대에도 마담 보바리가 양성구유의 성격을 지녔다는 꽤나 예리한 지적을 한 사람도 평론가가 아니라 시인 보들레르였죠.

이 : 사실 그 작품의 어느 인물에게도 선생님은 따뜻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어요. 그 점이 독자, 나아가 우리 인간을 불편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은밀한 치부가 가차 없이 노출되는 상황을 직시하기 힘드니까요. 그에 비해 『감정교육』은 비교적 편하게 읽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친구 막심 뒤캉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실제인물이며 선생님의 짧았던 파리 생활이 짙게 밴 자전 소설이라고 증언하기도 했지요. 특히 주인공이 사랑한 여자는 투르빌의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여인이 실제 모델이라고 간주되고 있죠. 선생님의 연인 중에서는 슐레진저 부인과 사교계의 스타였던 루이즈 콜레가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날이 갈수록 연구자들은 선생님의 연인을 발굴해내서 지금은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물론 직업여성은 뺀 숫자일 테지요.

플로베르 : 내가 편지에도 썼듯이 전기 작가는 위대한 인물에게 앙갚음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삶을 거의 하루 간격으로 파헤치고 침대를 거쳐 간 여자들까지 찾아내는 대학교수들을 보면 참으로 한가한 악취미의 사람처럼 보입니다. 나를 대상으로 쓴 이야기 중에서 줄리안 반스의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정도는 흥미롭지만 나머지는 모두 지루한 쓰레기입니다. 고백컨대 나의 마음을 평생 동안 떠나지 않았던 여자는 슐레진저 부인이지만 내가 여자에 관해 대단한 대식가였다는 어느 교수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군요. 따지고 보면 나는 공식적으로 평생 독신자였습니다. 전기의 대상이 되지 않은 뭇 수컷들 중에서 과연 평생 몇 여자를 거쳤는지 파헤친다면 과연 나를 비난할 사람이 얼마나 남겠습니까. 내가 여성을 오로지 육체로만 보았다고 비난도 하지만 내 작품 중에서 가장 호의적으로, 아니면 적어도 중립적으로 그린 인물은 『단순한 마음』의 펠리시테, 즉 여자였습니다. 알려졌다시피 실제 모델은 25년간 우리 집안을 헌신적으로 돌봐준 하녀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작품이던 간에 나의 삶과 연계시켜 해석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누차 말했듯 작품 속에서 나오는 작중인물은 작가의 대변인이 아니란 말입니다. 작가가 수시로 작품 속에 얼굴을 내밀고 잔소리를 하는 것은 삼류작가나 하는 짓이죠. 이집트 여행할 때 가이드가 있었는데 나도 눈이 있는데 끊임없이 풍경과 유적을 설명하고 게다가 어쭙잖은 인생철학까지 곁들이는 바람에 관광을 망친 적이 있어요. 가이드의 역할은 길안내를 하고 경치를 손가락질하며 간략한 설명을 하는 것으로 그쳐야 관광객이 제 눈으로 감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작중 인물 뒤에 숨어서 세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쳐야 합니다.

이 : 삼류작가는 언어구사에 자신 없으니 중언부언 말이 많고 추상적, 도덕적 훈계로 예술적 무
능을 감춘다는 말로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참조해야하지 않을까요. 해석이란 결국 작가 의도를 짚어보는 일로 귀결됩니다. 요새는 의도성의 오류설에 대한 맹신이 너무 깊은 것 같아요. 선생님과 관련된 연구서나 논문이 오천편이 넘고 실제로 전 세계에서 나오는 소소한 논문까지 더하면 족히 두 배는 넘을 겁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선생님의 작품과 삶에 대해 파헤칠 것이 남았고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연구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그중에서도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인 사르트르는 선생님을 삼십년간 골똘히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엄청난 분량의 전기를 남겼지요.

플로베르 : 그 책의 제목부터 불쾌합니다. “가족의 천치”라니요? 누가 말했듯이 그 책은 훌륭하지만 나와는 무관한 책입니다. 특히 부모님과 나의 유년기에 대한 분석은 사르트르가 꾸며낸 소설입니다. 내용의 진위여부를 떠나 너무 길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고 구성도 엉망입니다. 사르트르는 어릴 적에 보바리 부인이 자살하는 장면을 수십 번 되풀이해서 읽었다고 하던데 정작 글을 다듬고 정제하는 것은 전혀 내게서 배우지 못했더란 말이요. 나의 아버지, 어머니, 나의 어린 시절에만 구구절절 긴 글을 썼는데 나를 빙자해서 자기 이야기를 한 것이 틀림없어요. 그 자는 명부에서도 마주 앉기 조차 싫은 사람입니다.

이 : 사르트르도 선생님 작품에는 매료되었지만 인간 플로베르와 마주 앉아 커피는 마시는 것은 사양하겠다고 했지요. 아무튼 그 책은 선생님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읽히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화제를 돌리지요. 여러 소설가들은 사전에 철저한 자료조사와 현장방문 등으로 작품의 현장감, 생동감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선생님의 태도를 작가정신의 모범으로 삼기도 합니다. 꼼꼼한 고증과 현장조사 등을 사실주의 작가의 자질이라고 간주해서 선생님의 태도를 존경하기도 합니다.

플로베르 : 누차 말했듯 사실주의란 용어가 미술은 몰라도 문학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역사나 지리, 심지어 동물학, 식물도감 등 여러 참고도서를 읽고 정리하거나 현장을 방문해서 눈으로 확인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사진처럼 재현하는 것이 내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어느 인물이 특정 숲속에서 길을 걷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실제로 그 장소에 가보는 것은 유익하지만 사실을 채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그보다는 특정 숲속을 걸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나의 감각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같은 것을 체험하기 위한 겁니다. 내가 현장조사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이 내게 가하는 느낌이죠. 그 느낌만 생생하면 나머지 숲속 풍경은 저절로 상상됩니다. 그 점이 졸라나 발자크와 내가 다른 점입니다. 또한 사실주의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이 용어를 오로지 현실고발의 의미로만 해석하며 자칭 진보문학이라 고집하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게으른 보수골통들이요.

이 : 선생님이 문학에서는 전위를 택했지만 정치적 태도는 보수적이라는 평가도 있지요. 정치는 접어두고 다시 문학으로 돌아가자면 일단 선생님의 표현대로 현실의 감흥을 유지한 상태로 글로 옮긴 후 큰 소리로 낭독하신 것으로 유명했지요. 혼자서, 혹은 누구를 앞에 두고 악을 쓰며 읽고 또 읽었다고 하셨는데 이런 행위를 선생님은 “악쓰기”라고 명명했지요.

플로베르 : 그것은 내게 대단히 중요한 과정입니다. 묵묵히 눈으로만 보며 글을 쓴 다음 큰 소리로, 숨이 차고 목이 쉬고, 온몸이 지칠 때까지 읽어보지요. 쓰거나 묵독할 때에는 그럴 듯한 글도 큰 소리로 읽다보면 마치 불쾌한 알갱이처럼 목에 걸리거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대목, 단어가 생깁니다. 그것은 머리로 쓴 글이 내 몸으로 육화되고 물질화되는 과정인데 내 몸이 이질적 요소를 거부하고 불편해하면 진땀이 나고 숨이 가빠지고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그런 대목에는 반드시 어떤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것을 고치고 다시 수십 번 읽다보면 내 몸의 일부처럼 소리와 의미가 하나로 녹아드는 순간에 비로소 문장 하나가 완성되지요. 그 때에는 어떤 절대적 아름다움에 도달했다는 도취감도 느낍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내가 생각하는 절대미란 속된 세상, 예컨대 부르주아의 진부함과 위선을 여실히 드러내는 속된 문체의 아름다움이지요.

이 : 가장 좋은 무기는 적에게서 빼앗은 무기란 뜻이겠지요. 속물의 생각을 속물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실감나는 법이니까요. 문체의 완성을 위해 애쓰다보니 하루 종일 서너 문장도 완성하지 못하는 과작 작가가 되었군요. 철창에 갇혀 홀로 울부짖는 곰이 상상되고 바로 그래서 악쓰는 곰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이미 완성되었는데 그것을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한 언어를 다듬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치는 것은 소위 반인간주의의 태도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소통, 그러니까 일정한 인간애가 바탕이 된 것인데 선생님의 관심사는 그것보다 오로지 언어 자체를 위한 헌신처럼 보입니다. 마치 개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애견가의 심리 이면에는 종종 인간에 대한 깊은 실망이 깔려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문체 사랑 이면에도 어떤 인간혐오증이 있지 않을까요?

플로베르 : 형식과 내용을 나누는 것처럼 반문학적 태도는 없소이다. 살아서 누차 말했듯 문학은 문체가 전부요. 문체가 내용이고 사상이고 감각이고 나아가 인간 전체요. 명부에서 편히 쉬고 있는 나를 불러내서 횡설수설하더니 결국 생전에 구역질나도록 들었던 똥 같은 소리를 또 다시 듣게 만들다니. 괜찮은 사람도 많은데 당신 같은 교수를 대담자로 고른 팔푼이들이 누구요?

이 : 분담과 폭언으로 악명 높았던 선생님을 만난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나는군요. 선생님의 또 다른 전매특허인 음담패설은 다음 기회에 듣기로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