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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순례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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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장편소설『이별하는 골짜기』
한 젊은 시인이 있다. 강원도 두메산골의 작은 역에서 역무원으로 일하는 그는 아름다운 것을 찾고 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 좋은 시를 쓰고 싶어서다. 그렇게 임철우의 연작장편 『이별하는 골짜기』는 시작된다.
그러나 그가 만나는 세계는 어떠한가. 다방에서 티켓 장사를 하며 몸을 팔고 살다가 자살해버리는 아직 나이 어린 여자, 추격자들에게 쫓겨 자폭하는 탈영병, 첩의 자식, 사장과의 연애 같지 않은 연애 끝에 버림받은 채 홀로 살아가는 여자, 열차 사고로 남편을 잃고 딸아이를 안은 채 세상천지를 떠도는 여인, 바로 눈앞에서 아버지가 포탄에 찢겨 임종하는 것을 목격하는 아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어머니에게 한 번도 따뜻이 안겨본 적이 없는 유복자······ 차마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들이요, 세상이다.
‘이별하는 골짜기’라는 얼핏 낭만적으로 들리는 제목은 강원도 정선 산골짜기의 ‘별어곡(別於谷)’이라는 한 작은 역의 이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작품의 공간적/형식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역은, 그러나 낭만적인 것도 잊혀진 것도 아니다. 역사와 세상의 상처는 이곳에 드나드는 이들을 구루병처럼 짓누르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범연한 낯으로 지루한 듯 삶을 지탱해가는 것이다.
그들은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을 끝내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리고 (『이별하는 골짜기』, 문학과지성사, 2010년 8월, P.263, 「봄」, 이하 소제목과 쪽수만), 불현듯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하고, 눈 쌓인 산골짜기와 얼어붙은 강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다고 생각하며 (P.265. 「봄」) 사랑하는 여자에게 당신은 나고 나는 당신이라고, 우린 영원히 하나라고 거듭 부르짖지만, 술에 취하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아내를 마구 때리고, 그 아내는 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며, (P.78, 「여름」) 임종하는 어머니의 손을 움켜쥔 순간 ‘무척 낯설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느닷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P.283, 「봄」), 삼사백 원의 돈에 딸아이를 팔아치운다(P.174, 「겨울」). 과연 ‘이별하는 골짜기’라 할 만하다.
온전한 가족이란 없는 것일까. 적어도 이 작품으로는 그러하다. 가족이 있다 해도 그들은 혼자다. 어머니는 절에 들어가 자식을 외면하거나, 가출을 하거나, 자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평생을 살다가 늙고 병이 깊어져서야 찾아와 자식의 삶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이들이 일찌감치 혼자되어 이 세계와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 결혼을 해도 연애를 해도 결국 혼자 남는다는 것은 작가가 삶이라는 것을 어찌 보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것은 이 나라의 험난한 역사와도 관계가 있지만 (「겨울」에서 순례의 경우) 이 작품에서는 차라리 인간의 운명처럼 보인다(「봄」에서 순지의 경우).
연작으로 이루어진 네 편의 작품 가운데 순례의 이야기(「겨울」)는 이 나라 역사의 질곡이 한 여인에게 무엇을 빼앗고 무엇을 남겼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늙고 병들어 근근이 연명하는 그녀가 틈만 나면 옷가지가 가득 담긴 가방을 끌고 역으로 가서 기차표를 요구하는 것은, 그러나 결코 단 한 번도 개찰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는 것은 이 나라 역사의 몰골을 연상케 한다. 순례의 삶을 그 지경으로 추락시킨 그 괴물들이 오늘날 여전히 우리가 풀어내야 하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숙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악착같이 끌어 모은 기차표들에 하나같이 출발지도 목적지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쓰디쓴 은유다.
작가는, 그가 만들어낸 인물 정동수처럼, 아름다움을 찾아 걷기 시작했으나 결국 이 은유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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