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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그 비장미를 어찌 다 전달하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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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강·안소현이 독역한 김훈의『칼의 노래』
「칼의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내가 죽는다면 적들은 서해를 따라 임금에게 갈 것이었고, 영산강을 따라 백성들에게 갈 것이었다. 여기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나의 사지였지만, 편안히 죽을 수 있는 사지는 아니었다. [……] 아마도 나의 사지는 경상도 해안 쪽으로 좀 더 앞으로 나아간 어떤 자리라야 마땅할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최후의 격전지를 물색하고 있는 이순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때에도 그는 의주에 피난 가 있는 임금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영산강 상류의 내륙에서 아직도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 백성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 때문에 최후의 결전장을 경상도 해안 쪽으로 좀 더 나아간 자리로 상정하고 있다. 칼의 노래가 독자들을 사로잡는 힘의 원천은 물론 이순신의 이러한 충의와 애민의 정신이겠지만, 실은 김훈 특유의 문체가 지닌 간결성과 파토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각 높은 배들마다 ｢나무묘법연화경｣의 비단 깃발이 나부꼈다. 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깃발들의 함성으로 다가왔다. 그 깃발 위 허공으로 적의 살기는 무지개처럼 펼쳐졌다. 무지개는 흔들리면서 다가왔다.
이 대목을 독일어로 번역해야 하는 사람은, 12척의 배로 일자진(一字陣)을 쳐놓은 채 300여척의 왜선을 맞이하고 있는 명량해전에서의 이순신의 상황에다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놓고서 그의 절망과 결단, 그의 감정의 일렁임, 파장, 부딪힘과 부서짐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나무묘법연화경」 본래의 의미와 이 전시 상황에서의 그 비단 깃발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 사이의 반어적 괴리감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또는 그 정도는 그만 무시해 버려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만약 어느 외국 독자가 16세기 말의 조선 조정의 무능과 부패상, 당시 도탄에 빠져있던 백성들의 신산한 삶, 임진왜란 때에 겪은 이순신의 죄 없는 수난과 이제 다시 정유재란에 임하는 그의 비장한 각오 등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을 경우, 작품이 전달하고 있는 상황과 정보의 수용 자체가 어려울 수 있고, 스토리텔링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위험에 처하게 될 지도 모른다.
『칼의 노래』의 두 독역자 하이다 강, 안소현은 이런 난관과 위험을 잘 극복해 낸 것으로 보인다. 원작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김훈 문체의 그 처절한 비장미를 어찌 완전히 다 전달하랴만, 오직 근면과 인내, 그리고 숙고, 또 재고를 통해 원문을 한 문장 한 문장씩 옮겨나간 고투의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여기서 김훈의 독특한 문체가 과연 독일어로 온전히 전달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겠다. 다만, 최근의 번역이론에서는 자구 또는 문장에 과도하게 얽매이는 번역보다는 콘텍스트의 전달을 보다 중시하는 이른바 문화번역이 선호되고 있기 때문에, 이 번역에서 김훈의 문체가 어느 정도 전이(轉移) 또는 변이를 일으켰다 해도 그것은 아마도 필요불가결한 타협이 아니었을까 싶다.
번역작품을 두고 평을 한다는 것 자체가 때로는 민망한 일이 될 수 있다. 평자 자신이 실은 평가대상 번역작품 만한 좋은 번역을 해낼 능력이 없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무릇 훌륭한 역자는 자신의 시간, 지식, 그리고 능력을 총동원하여 원작을 도착어로 충실히 옮겨놓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가끔 무인(誣人)의 접신(接神)과도 흡사한 언어적 체험을 하곤 하는데, 그 순간적 황홀감과 그 다음에 찾아오는 허탈감 및 무력감은 번역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아는 그들만의 선택된, 그리고 슬픈 운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 어려운 작품을 독일어로 잘 번역해서 우리 문학과 우리 문화의 외연을 넓혀 준 하이디 강, 안소현 두 역자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이런 외로운 작업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또 그 우수작을 포상하고 있는 대산문화재단에도 삼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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