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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신다는 것 : 자연,자유,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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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를 쓰는 곳에서 이오누에 야스시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작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다. 2008년에는 차의 달인인 센노리큐를 다룬 소설이 『차의 달인의 죽음(The Death of the Tea Master)』라는 제목을 달고 독일어판으로 출판되었다. 내가 아는 몇몇 아방가르드 시인은 이 책을 읽고 몹시 흥분해서 이 놀라운 일본 책에 대해 물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 나는 역사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다. 물론 몇 번의 예외는 있었다. 가령 누카타노오키미 왕자와 칭기즈칸을 다룬 이노우에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리큐에 대한 소설을 쓴 적이 있는지는 몰랐다. 주문을 하려고 했을 때 그 책이 절판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국엔 중고서점에서 1981년판을 구할 수 있었다.

2009년에 새로 페이퍼백이 나오게 되어 다시 일본에서 이 책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것을 보면 한 문학작품이 한동안 모국어 독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도, 번역을 통해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 재탄생 하여 어떻게 다시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때론 사람들이 오랜 여행 끝에 고향에 돌아올 때 얼굴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경우는 어떠한가? 나는 언어를 가지고 실험하는 데 관심이 있는 내 또래의 오스트리아 시인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그들 덕택에 사무라이와 다도에 대한 틀에 박힌 이미지를 벗어버릴 수 있었고, 책을 읽으면서 예술과 정치의 관계 등과 같은 다른 것들도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가 국제화되는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단지 우리가 외국어로 쓰인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말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학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읽히는 과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1951년에 다도의 달인인 리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나 주변 상황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여러 근대 소설의 주제가 되었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에서는 리큐의 문하생인 혼가쿠보라는 사람이 수년 동안 리큐의 진짜 사인을 찾으려 애를 쓴다.

어떤 사람들은 다도가 명상의 한 형태라고 한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팔다리를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선 명상이나 현재 독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명상’과는 달리, 다도에서는 한 사람이 작은 거품기로 차를 저어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이 과정 동안 몇 마디 이야기가 오고 간다. 어떤 사람들은 다도가 ‘신이라는 존재가 빠진 의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모든 동작이 일정한 양식을 따르며, 이런 동작을 배우기 위해서는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의식, 예를 들어 향을 켜고 두 손을 합장하며 기도하는 양식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장례식과는 차이가 난다. 초보자는 선생이 수년에 걸쳐 완벽하게 익힌 동작을 따라 하는 것부터 시작하지만, 오로지 어떤 양식을 모방하기만 한다면 진정으로 다도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동작은고 두스럽게 안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어떤 차의 달인들은‘ 가장 간소한 동작이 가장 아름답다’며, 그런 동작을 위하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다도의 이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생각이 없다. 비록 내가 20대 초반까지는 다도에 대해 전혀 흥미가 없었지만, 독일에서 다도를 가르치는 일본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로웠다는 말을 하고 싶을 따름이다.

지난 10년 동안 독일에서는 ‘의식’이라는 주제에 흥미를 갖게 된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어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먹고 마시는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평화롭고 고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 같은 시간에 같은 잔으로 커피를 마시는 행위도 ‘현대식 다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리큐의 찻집을 자주 찾아 단골이 되었다. 둘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큐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권력 구조의 경계 안에 머물렀고,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적절하게 예우하였다. 하지만 그는 다도의 달인이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차를 낼 때에는 신중하고 분별력 있는 태도를 버리고, 점점 솔직해지면서 때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리큐는 히데요시에게 그의 조선 침략 계획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히데요시는 벌컥 화를 내더니 리큐에게 의식자살을 명했다. 오늘날 일본 청소년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선생이나 친구를 향해 갑자기 욕설을 하는 것처럼 아마 히데요시도 ‘통제불능’ 상태였나 보다. 그는 마음을 진정하고 그 상황을 조용히 생각해보더니 자신의 어리석은 명령을 거두었다. 하지만 리큐는 히데요시의 만류를 뿌리치고 의례를 따라 자신의 배를 가르고 죽었다.

소설에서 이노우에는 ‘자살’이라는 용어 대신에 “명예로운 죽음의 사건”이라는 단어를 썼다. 옛날식 표현인데, 이제 보니 말 자체도 자살을 해버린 것 같다. 이 표현을 쓰기 위해 사용한 첫 번째 한자, 즉 내가 “명예로운”이라고 번역한 한자는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언가를 베풀거나 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무라이의 가신이 의식자살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그는 “감사하게도 명예로운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이었다.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명예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젊은 일본인들의 머릿속에 확고하게 주입시켰던 2차 세계대전을 돌아보면, “명예로운 죽음”이라는 말이 섬뜩하고 불길한 인상을 준다.

학교에서 히데요시의 한반도 침략에 대해서 배웠지만,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종종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읽으며 오늘날 일본 신문을 읽으면서 느꼈던 좌절감, 불만, 걱정을 느꼈다. 일본 신문은 범죄나 사건의 심층을 파고들지 않으면서 독자의 호기심만 자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를 들면 자기 부모를 칼로 찔러 죽게 하고 도망한 고등학생을 다룬 기사에는 희생자의 이름, 연령, 직업, 거주지가 실려 있지만 독자가 사건이 발생한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에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급하게 “오늘날 젊은이들은 도덕의식이 없다”라고 일반화된 결론을 내리고는 거기서 생각을 멈춘다. 물론 무슨 일이 일어난 직후에는 이에 따른 사회적 배경을 알기가 어려워 신문에서 상세한 분석을 싣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이 흐른 뒤에는 사회적 배경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사회학자, 심리학자, 역사학자, 작가, 젊은이들의 여러 의견을 듣고 싶다. 독자들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갖게 되려면 풍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오늘날 일본 신문은 읽을거리가 많지 않다. 독일 신문은 몇 배나 많은 내용을 싣고 있고, 독자들에게 범죄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고 이에 대해 다른 사람과 토론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니면 최소한 그 신문이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물론 어떤 나라든 내용보다 사진이 더 많은 신문들이 있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에서 소위 식자층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을 비교해보면, 일본 신문의 기사가 훨씬 짧다. 특히 논설란이 그렇다. 일본 논설은 짧을 뿐 아니라 그 수도 적다.

신문의 시대는 갔고 필요한 정보를 모두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매일 인터넷으로 신문을 읽는 것이나 인쇄된 신문을 읽는 것이 똑같을 수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한일 관계에 대해 일본어 구글에서 정보를 검색해보면, 제일 먼저 어처구니없이 선동적인 게시물이 잔뜩 등장하며 믿을만해 보이는 사이트를 찾기 전에 지쳐버린다.

“위안부”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제일 먼저 “‘위안부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글들이 무더기로 화면에 뜬다. 심지어 한 사이트에서는 “《아사히신문》에 실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사는 전부 날조된 것이다”라고 한다. 게다가 어떤 사이트에 누가 글을 쓰는지도 확인하기가 불가능하다. 일본에서 인터넷은 익명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부인하기에 이상적인 수단이 된 것 같지만,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를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말을 하는 것은 법에 저촉된다.

서점은 인터넷과 판이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난징 학살에 대해 더 알기를 원한다면 즐겨 찾고 신뢰도 높은 서점에 가서 그에 대한 책을 사기만 하면 된다. 그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도 언제든지 알 수 있다. 정보를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이 인터넷 검색이라는 말이 반드시 옳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속도가 다는 아니다.

위키피디아 일본판에도 제대로 쓴 글이 몇 편 있지만, 그냥 봐서는 선동적인 글과 양심적인 글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재일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 (일본에 거주하는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에 대한 글에서는 이들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를 떠나 일본으로 탈출한” 사람이며, 많은 사람들이 “밀항자”로 되어있다. 마치 그들 중 거의 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일본에 왔고, 밀항자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필사적으로 일본에 오려고 했다는 식이다.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온 한국인이나, 일본사회에서 여전히 겪고 있는 편견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인터넷 검색 엔진에 키워드를 두드리는 것 이외에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 신세대의 앞날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몸서리가 쳐진다. 자연 환경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듣지만, “정보 환경”의 급속한 퇴보야말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터넷에는 나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많다. 그것 자체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심지어 학식과 분별력을 갖춘 나이 지긋한 사람들조차도 인터넷에서 읽는 것을 자동적으로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유럽에서 강연을 하다 보면, 요즘 나를 소개하는 주최측에서는 원하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틀린 말을 하면 나는 그들에게 틀렸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오류를 바로잡아준 그 사람은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터넷에서 읽은 겁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내가 쓰지 않은 글이 때로는 내가 쓴 글로 둔갑해서 인터넷에 등장한다. 책이나 잡지의 영역에서는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는 큰돈을 쓰거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누구든 언제든 정보를 게시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점검을 받지 않고도 말이다.

식품오염과 대기오염은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사였지만, 최근에 나타난 이런 정보환경의 변화와 이에 따른 위험에 대해서 생각을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종이에 인쇄된 것은 덮어놓고 믿어도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학교 교과서는 모든 어린이와, 심지어 보통 다른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까지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일본 교과서는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에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교과서와 비교해서 수험서는 전적으로 학생들이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만든 책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수험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시험에 통과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은 수험서를 아주 열심히 읽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한다. 사실 학생들은 교과서를 읽을 때보다 수험서를 읽을 때 더 집중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교과서와는 달리 이 수험서들은 국가의 엄격한 검열을 받지 않는다.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내가 이용했던 수험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히데요시는 영토 확장을 원했던 다이묘(봉건군주)와 사무라이의 야심의 방향을 국외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조선 침략을 결심했다. 이것은 침략전쟁의 전형적인 예다.”

하지만 이 수험서에서 이 복잡한 역사적 문제를 생각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영토 확장의 욕망은 욕망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때로는 작은 아파트보다는 정원이 있는 저택에서 살고 싶다1. 하지만 이웃을 죽이고 그의 집과 땅을 훔치는 일은 16세기에도 법에 저촉되는 것이었으며, 누구나 이런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본능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의 권력자들이 일본 밖에서 바로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도둑질은 범죄고 침략 전쟁은 범죄가 아닌가? 인간의 법과 도덕성은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어릴 적 나는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일본 역사교과서의 또 다른 문제는 일본의 관점에서만 썼다는 것이다. 일본은 하나의 가정집으로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것은 “집에 쓰레기가 가득 차서 우리는 창밖으로 쓰레기를 버렸고 그 후에 그 집 안은 깨끗해졌다”라고 써놓고 투척한 쓰레기가 어떻게 바깥 거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또는 어떻게 창문 아래로 지나가던 사람이 남이 던져버린 병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실려 갔는지에 대한 부분은 생략해버리는 것과 같다.
외국에서 공부한 일본 젊은이들은 다른 아시아 국가가 일본을 아시아에서 골칫덩어리로 여기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는다. 유럽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어서, 독일인들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자기 나라가 한 일에 대해서 이웃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를 어릴 적부터 알게 된다. 일본 사람들은 이웃나라 사람들의 눈에 역사 속 일본의 위상이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 거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국의 과거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과거의 실수를 찾아보고 발견한 것을 공개한 다음에 자국이 비슷한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만약을 위해서 그 이웃나라의 친구들에게 자신을 눈여겨봐달라고 하는 것이 상책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대해 처음으로 들었을 때 나는 말로 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지금 그 심정을 말로 표현해본다면 아마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일본에게 중국 대륙은 부모이자 선생이었다. 일본이 여덟 살이나 아홉 살짜리 아이였을 때는 문화를 배우기 위해 중국대륙으로 사신을 보냈다. 중국과 그 너머 근동 및 중동국가의 고도로 발달한 문화는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상륙하였다. 일본이 열여섯 살 정도에 사춘기를 맞아 심리적으로 반항하기보다 무력을 써서 부모이자 선생인 중국을 공격하고 중국의 부를 훔치려고 했다면, 일본은 부끄러워해야 할 나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유교적인 생각일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중국고전 수업에서 공자의 논어에 대해 공부할 때 언제나 잠이 쏟아졌지만 나는 내 의지와는 반대로 유교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교과서에 없는 역사를 소설에서 배웠다. 하지만 예를 들어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은 리큐가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반대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인간이 갖는 야망의 문제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리큐를 조명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권력과 야망의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단서를 제공한다.

세도가들에게 요청을 했다면 리큐는 분명 엄청나게 넓은 찻집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일부러 그들에게 다다미가 딱 두 개만 들어가는 작은 찻집을 지어달라고 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이성’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억제하는 무기로 ‘법’을 사용한다. 리큐의 전략은 다소 빗나간 듯 보인다. 이것이 이 소설이 그토록 신비롭게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욕망은 때로 너무나 위험해서 인간에게 위협이 된다. 어느 시대나, 다양한 문화는 다양한 전략을 고안해 이러한 위험한 욕망에 대응해왔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를 가장 열렬하게 추종하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가능하면 법률을 위반하지 않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근본적으로 옳은 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일에 방해가 되거나 건강을 해치지 않는 한, 실컷 식사를 하고 비싼 포도주를 마시고, 섹스를 하고, 돈을 쓰는 것이 제대로 사는 방법이라고 본다. 또한 이것이 무한한 경제적 성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다. 물론 약하게나마 이런 소비와 지출 과정을 견제하는 작용을 하는 일정한 사회적 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제약들은 막연하고 희미해서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독일 젊은이들이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서 막연하거나 희미하지 않고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제약을 정립하려고 노력한다.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은 건강을 위해서, 또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인간이 먹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와 지구의 욕구 사이에서 가시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건강을 해칠 정도의 폭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기서 잠시 내가 독일의 예를 이토록 자주 드는 유일한 이유는 1982년 이후 독일이 내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해야겠다. 나는 유럽, 미국, 때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등 여러 곳을 여행했기 때문에 나머지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게 모르는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그곳에서의 생활을 직접 목격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다양한 기회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신문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지식 즉 “장소감”을 느끼게 된다. 이 좁고도 깊은 지식을 책이나 매스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정보와 비교해보며 이 세계를 전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싶다.

베를린뿐 아니라 도쿄에서도,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한 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킬 권리가 보장된다. 반면에 이것은 또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 파괴된다면, 그것은 그들만의 책임이라는 의미도 된다. 예를 들어 술은 강제로 인체를 중독에 이르게 하는 화학적 성질을 갖고 있지만, 보드카를 만들고 텔레비전에 광고하는 회사는 알코올 중독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떤 종류의 중독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통념이며, 모든 사람이 이것을 알고 있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생활력이 강하다는 말이 거짓이라면, 의지가 없는 사람만이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는 말도 거짓이다.

2010년 10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은 특히 고학력의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는 국가의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하지만 대학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구했지만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게 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지독하게 슬픈 구석이 있다.

술은 끊임없이 외부에서 공격하는 적이 아니라, 실제로 뇌로 들어간다. 외부의 적과는 싸우기 쉽지만 자기 뇌 안에 안착한 적과 어떻게 싸울 수 있다는 말인가? 어느 날 술은 갑자기 한 여성의 자아에 자리를 잡는다. 그 후 그녀의 삶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보기 싫은 사람과 하기 싫은 일이 생겼다. 그녀는 자기에게 술을 너무 마신다고 주의를 주는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보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에,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이 자기를 싫어하도록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초콜릿 케이크와 같은 음식을 싫어하게 된다. 초콜릿 케이크를 너무 많이 먹으면 술을 많이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초콜릿 케이크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혀 다른 설명을 생각해 낸다. 그것이 건강이 좋지 않다거나 살찌게 한다고 말한다. 술을 마시면 살이 찌기 때문에 어떤 여성들은 식품 섭취를 줄이기도 한다. 그들은 칼로리를 전부 술을 통해 섭취하기 시작하고 그런 과정에서 몸을 망친다. 그들은 밤에 술을 마실 수 없는 곳은 발길을 끊는다. 밤에만 술을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밤이 더 길어지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게 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 하지만 왜 일을 그만두고 싶은 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른 이유를 생각한다. 아무도 자신이 하는 행동의 동기가 오로지 충분한 알코올을 계속해서 섭취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한 독일 신문에 따르면, 옛날에는 알코올 중독자라고 하면 빨간 코에, 헝클어진 더벅머리를 하고 길거리를 비틀거리며 걷는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를 떠올렸지만, 현대의 알코올 중독자는 말끔한 옷차림에 완벽하게 머리를 손질한 여성으로, 건강한 외모에 소득수준이 높고 사회에서 안정된 위치에 올랐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오늘날 사회에서 욕망은 기형적인 단계에 이르렀고, 알코올 중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중독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섹스 중독, 인터넷 중독, 쇼핑 중독, 일 중독에 대해 듣는다. 그런데 중독을 특정한 질병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젊은 사람이 공부를 하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몸을 바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거나, 물건을 사기 위해 절약을 할 때, 이 모든 활동의 원동력은 일종의 ‘중독’이라고 한다.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중독’이라는 것이다. 만일 중독을 기반으로 한 사회가 남보다 앞서기 위한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를 주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가령 음주를 금지하여 중독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그 사회에서 골칫덩이 취급을 받을 것이다.

오랫동안 소설가들이 좋아하는 주제였던 또 다른 형태의 중독은 ‘도박’이다. 내 자신은 한 번도 도박을 해본 적이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학작품 중에는 도박꾼을 다루는 것들이 있다. 푸슈킨의 『스페이드의 에이스(The Ace of Spades)』,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꾼(The Gambler)』,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나이트게임(Night Game)』이 그것이다. 내가 이런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떤 방식으로든 도박을 문학의 언어가 독자들의 마음속에 심어놓을 수 있는 중독에 대한 은유로 보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컴퓨터가 우리의 생활을 장악하며 앞서 내가 언급한 정보 환경의 쇠퇴를 조장하면서 더 불길한 형태의 중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중독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중독을 치료할 방법이 아니라, 두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새로운 중독을 만들어낼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게임은 룰렛이나 포커 같은 카드 게임 등의 옛날 방식 도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는 도박이라면 종류를 막론하고 관심이 없고 카드 게임조차 거의 한 적이 없지만, 컴퓨터 게임을 하면 뇌의 깊숙한 곳에서 이상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룰렛이나 파친코에 빠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문학은 욕망, 도취, 섹스, 중독, 자멸, 광기 등과 같은 인간의 수수께끼를 다루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모두를 중독 시키기 위해 만든 제품으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쨌든 당분간이라도 우리가 스스로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줄 유일한 동지는 예술과 지식이다.

실제로 다도는 신이라는 존재가 빠진 의식일지도 모른다. 다도는 욕망을 죽여 버리기 보다는, 심장에서 욕망이 꾸준하면서도 강력하고 조용하게 흘러갈 수 있는 통로를 잘라내려는 시도다. 16세기 일본에서 리큐는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쓰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자연”을 말한 것은 아니다. 리큐에게는 무엇보다도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일 그 결과로 권력자가 그의 죽음을 원한다 해도 리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 지시를 취소하게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또한 그에게는 자신의 죽음을 정의나 진리 같은 더 큰 명분을 위한 헌신으로 미화시키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리큐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 자연스러움 자체가 그의 죽음을 그토록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리큐를 다룬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16세기에는 최소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불교 용어처럼 “자유”는 “무소유” 혹은 다른 말로 “언제든지 다 내려놓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부자라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고, 사회적 명예를 얻은 사람이라면 그 명예를 감사히 여기면서도 어느 누구도 다시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라도 특별히 불만을 갖지 않는 것이 자유일 것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먹는 것을 즐기되 필요 이상으로 먹지 않거나, 사람을 사랑하되 소유하려 하지 않고, 삶을 즐기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등을 의미할 수 있다. 우리가 “자유”를 이런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언론의 자유”라는 현대식 표현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리큐가 벗어난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체였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했다. 이것이 리큐가 말하는 자유다. 오늘날 “언론의 자유”라고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16세기에는 권리로서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 일본의 다도를 정립한 센노 리큐의 초상

리큐와 히데요시 사이에 일종의 공감대가 있음을 느낄 수 있지만, 이들의 관계를 한 단어로 규정하지는 못하겠다. 리큐가 살았을 때 일본어에는 현대적인 의미의 “우정”이나 “낭만적인 사랑”과 같은 단어가 없었다. 후손을 볼 목적으로 결혼했던 사무라이와 독신으로 살게 되는 승려는 종종 어린 소년을 연인으로 삼았다. 우키요에(“떠다니는 세상의 그림”이라고도 함)라는 그림에 묘사된 남녀 한 쌍을 잘 살펴보면, 처음에 여성처럼 보였던 인물이 실제로는 와카슈라고 하는 젊은 남자일 때가 있다. 치고라고 불리는 동자는 사찰에서 살면서 승려를 위해서 일을 하고 승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에도 시대의 그림 중에는 성적인 놀이에 탐닉하고 있는 두 여성을 묘사한 것들이 많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생각할 때, 리큐와 히데요시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이에 대한 주장을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계에는 성적인 요소가 있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리큐의 한 문하생 말에 따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백 번도 넘게 리큐의 찻집을 찾았고, 리큐의 거리낌 없고 편안한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찻집에는 자체의 규칙과 관습이 있다. 그곳의 관습에 따라 지위가 높은 사무라이인 히데요시도 찻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검을 빼놓아야 했다. 거기서 그는 리큐의 방식에 따라 차를 마셨다. 결국 히데요시는 리큐의 손에 백 번이나 상징적인 죽음을 당한 셈이니, 한 번이라도 리큐를 죽여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여기서 나는 “상징적인 죽음”이라는 표현을 ‘자신의 몸을 완전히 남의 손에 넘긴다’라는 의미로 썼다. 사무라이에게 검을 빼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남의 손에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찻집 안에서 히데요시는 다도의 법칙에 따라 몸을 움직여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 관계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가 없다. 우리는 각자 다른 단서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를 다양한 목소리로 듣지만, 결국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조각들을 맞추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며 이것이 그들의 관계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히데요시는 찻집 안에 있는 동안 자신의 정치적인 자아를 포기함으로써 자기가 얼마나 리큐를 존중하는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사무라이로 돌아올 때 다도는 그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런 면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건이 리큐의 “명예로운 죽음” 사건이 발생하기 훨씬 전에 일어났다. 히데요시는 차의 달인들을 불러놓고 일본 각지에서 최고의 차 사발을 수집하여 열흘에 걸쳐 성대한 다도의식을 거행할 계획을 세웠다. 하필이면 성대한 다도의식이 열리는 첫날에 지방에서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히데요시는 다도 행사를 취소하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말을 타고 자리를 떠났다. 히데요시에게 다도는 정치와 비교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정치가로서 히데요시는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즉각적으로 죽여 버렸다. 히데요시가 리큐에게 의식 자살을 명한 것은 바로 리큐가 히데요시에게 중요한 정치적 책략에 반대대대대순간이었다. 나중에 자신의 명령을 철벌대대대이유는 조선을 침략하을 철자신의 계획이 잘못임을 깨달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차의 달인이 한 말을 아이의 종알거림이나 여자의 푸념, 또는 여흥을 위한 망상이나 꾸며낸대이야기나 마찬가지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여자나 아이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는 누군가는 위잘거림에 진지하게 화를 내고, 결과적으로 리큐와 보내고 있는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이유것이 어리석어 또는다. 리큐는 이런 생각아이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히데요시가 자살하지 말다. 헄을 때 그 말을 듣지 않은 것이다. 만일 리큐가 히데요시의 취소를 받아들였다면 정치에 비해 다도는 오락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관계를 생각해 보던 중에 문득 스탈린과 미하일 불가코프가 떠올랐다. 불가코프의 죽음 역시 수수께끼였다.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에 대한 나의 지식은 주로 학자이자 번역자인 가메야마 이쿠오가 쓴 『러시아의 십자가 수난: 스탈린과 예술가들(The Crucifixion of Russia: Stalin and the Artists)』 에서 얻은 것이다. 불가코프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는 1940년에 죽기 전에 “스탈린이 나를 죽였어!”라고 큰 소리로 계속해서 외쳤다고 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리큐가 실제로 히데요시에게 살해를 당한 것이 아니듯, 스탈린 역시 불가코프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었다. 1930년에 검열로 인해 경력에 오점이 생기자 불가코프는 스탈린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상황을 견딜 수 없으며 작가로서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해, 마야코브스키가 자살한 다음날, 불가코프는 스탈린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 놀랍게도 스탈린은 불가코프에게 러시아를 떠나고 싶은지, 아니면 국립극장에 올릴 희곡을 맡고 싶은지 물었다. 그 후 10년 동안 여러 작가와 시인이 체포되고 사형 당했다. 하지만 불가코프의 희곡은 때론 상연이 금지되기는 했으나 그가 체포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스탈린은 불가코프의 작품에 관심이 있었으며, <터빈의 날들(The Days of the Turbins)>을 15번, <조야의 아파트(Zoya’s Apartment)>를 여덟 번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8년에 모스크바예술극장 극장장이 불가코프를 찾아와 다음 해에 스탈린의 60세 생일을 맞아 기념 희곡을 써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불가코프는 이를 수락하고 스탈린에게 공공연하게 아첨하는 작품을 썼다. 스탈린은 고위 당 간부들과 함께 이 희곡을 직접 읽고 금지 명령을 내렸다. 불가코프가 들은 이유는 스탈린과 같은 사람은 낭만적인 영웅처럼 묘사해서는 안 되며, 이 희곡은 환심을 사려는 목적으로 썼다는 것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가메야마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금지의 이유를 들었다. 1) 주역을 현실적인 인물로 창조하지 않았다. 193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예술 형태를 창조하려는 모든 노력을 잔인하게 짓밟아버렸다. 2) 희곡에 반독재의 원리를 표현하였다. 불가코프는 정치범들에 대한 동정심을 보였던 것이다. 3) 감옥 장면이 라게르의 강제수용소를 떠올리게 한다. 4) 이 희곡은 스탈린의 혁명 전 이력을 다룬다.

불가코프가 이 희곡을 쓴 이유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불가코프가 왜 이 희곡을 썼는가 하는 질문은 리큐가 왜 히데요시를 자신의 찻집으로 초대했는가 하는 질문과 같은 맥락이다. 예술가가 권력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하지, 권력이 그를 죽이겠지만, 권력에 지나치게 가까워져도 마찬가지로 권력이 그를 죽일 것이다. 게다가 이 두 남자의 경우, 그들에게 접근한 것은 권력 구조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가코프 그를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이 희곡을 쓴 것이 아니다. 그가 작품을 쓰면서 예술가와 독재자 사이에 존재할 경계선이 간단하게 허물어졌다. 그러나 조화로운 결합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독재자의 분노를 자극하여 결국 예술가의 죽음을 초래하게 되었다.

아마도 불가코프는 스탈린을 위한 멋진 자서전을 쓸 의향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혁명 전 스탈린의 삶을 포함시켜야 했고, 영웅숭배를 표현하기에는 사실주의가 적절한 기법이 아니었기에, 사실주의에서 벗어났을지 모른다. 일단 본격적으로 작품에 착수하자, 정치범들에 대한 연민이 자연스럽게 등장했고, 라게르 강제수용소의 이미지가 원고에 분명히 등장하게 되었다.

역사적인 인물의 수수께끼 같은 죽음은 종종 문학작품의 소재가 된다. 리큐는 불가사의한 죽음을 통해 역사의 틈을 열었다. 그 틈으로 인해 후대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읽는다. 리큐는 우리에게 곰곰이 생각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을 남겨주었다.
심지어 아무리 뛰어난 견해라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퇴색하기 마련이다. 의견이 벽과 같다면 문학은 우리에게 그 벽에 있는 틈처럼 수수께끼와 신비로움을 안겨준다. 메시지는 소설이나 시 속에 숨겨져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원하는 것이 메시지라면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스스로 메시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의 형태로 의견이나 메시지가 가공되기 전에 존재하는 수수께끼인 것이다. 문학은 우리에게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소, 즉 환경을 마련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