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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면

승혜언니는 입만 열면 마귀할멈으로 변한다. 짜증나, 열 받아, 재수 없어, 꺼져, 그런 말을 하다가도 어른이 곁에 오면 얼굴을 싹 바꾸고 품위 있는 말을 쓴다. 집사님들은 언니만 보면 얼굴도 예쁜데 마음까지 곱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속이 터진다. 툭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착하다고?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 착하단 말이야? 승혜언니가 착하면 나는 천사겠다.
언니가 제일 가식적으로 변할 때는 김전도사님과 있을 때이다. 전도사님은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크다. 눈이 얼마나 크고 맑은지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교회 언니들은 대부분 전도사님을 좋아하지만 눈길조차 주지 못한다. 승혜언니가 두렵기 때문이다.
언니는 전도사님이랑 꼭 결혼할 거라고 떠벌리고 다닌다. 전도사님한테 수작을 걸면 가루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한다. 나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막말을 달고 사는 언니지만, 전도사님이 곁으로 오면 얌전한 고양이로 변한다. 언니는 전도사님 곁에 찰싹 붙어서 온갖 애교를 떤다.
“어머 전도사님, 우리가 다른 사람 욕을 하면 안 되겠죠?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되죠?”
언니는 몸을 비틀어 꼬면서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전도사님은 언제나 언니 말에 상냥하게 대답해준다.
“그렇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지. 승혜는 모르는 것도 없어.”
“어머 전도사님, 너무 많이 칭찬하지 마세요. 너무 부끄러워요.”
언니는 얼굴을 붉히며 전도사님을 쳐다본다.
언니가 특히 싫어하는 사람은 반주자 언니이다. 언니 말로는 반주자가 믿음이 약하고 성실하지 못하다고 하지만, 그건 다 반주자 언니를 깎아내리기 위한 거짓말이다. 언니는 반주자 언니가 자기보다 예쁜 게 거슬리는 것이다. 전도사님이랑 반주자 언니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눈이 뒤집혀서 하루 종일 반주자 언니를 헐뜯고 다닌다. 반주자 언니가 피아노를 잘못 치기라도 하면
“쟤는 손가락에 쥐가 났냐. 왜 자꾸 틀리고 난리야. 더워 죽겠는데 말이야.”
하면서 계속 투덜거린다. 입을 내밀고 욕을 하다가도 전도사님이 곁으로 오면 언니는 금세 얼굴색을 바꾼다.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전도사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따라 반주자가 실수를 많이 하네요. 가끔씩 실수할 때도 있죠. 사람이 다 완벽할 수가 있나요. 오늘 날씨가 더워 반주자도 땀 꽤나 흘렸을 거예요. 전도사님이 가서 격려 좀 해주세요.”
“승혜는 어쩌면 그렇게 마음이 깊어.”
전도사님은 언니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전도사님도 참. 여자 마음은 여자가 잘 아는 법이에요.”
언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나는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의 마수에서 전도사님을 구해내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언니에게서 착한 전도사님을 구해내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웠다.
얼마 전 병원에 가서 언니를 보았다. 언니는 다리 사이에 농구공을 끼우고 걷는 것처럼 어기적거리면서 걸었다. 엄마는 언니를 가리키면서 치질수술을 하고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언니는 엄마에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너만 알고 있으라고 했지만, 나는 벌써 교회 친구들에게 소문을 다 냈다.
언니는 치질이 다 낫지 않아서 요즘에도 의자에 앉을 때가 제일 힘든가 보았다. 교회 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릴 때면 설교 좀 빨리 끝내달라고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언니의 약점을 공격하기로 했다. 오늘 기필코 언니의 가면을 벗기고야 말리라 다짐했다.
예배가 끝나고 전도사님과 언니가 선교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등 뒤에 장난감 총을 감추고 언니 뒤를 밟았다.
“어머 전도사님, 오늘 날씨가 참 좋죠? 하나님이 주신 세상은 참 아름다워요.”
“그렇지. 하나님이 주신 세상은 참 아름답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면, 승혜는 어떤 생각이 들어.”
언니는 어기적어기적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오늘이 가식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장난감 총에 달린 망원렌즈로 언니의 똥꼬를 조준했다. 언니가 전도사님에게 무어라 대답하려는 사이, 언니의 똥꼬를 향해 비비탄을 쐈다. 언니가 똥꼬를 움켜잡고 소리쳤다.
“아, 똥꼬!”
전도사님은 깜짝 놀라 언니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언니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잘못 들으신 거예요. 너무 아름답다고 말한 걸요.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보면 늘 감사한 마음뿐이죠.”
“그렇지. 그래 맞아. 감사한 마음을 늘 잊지 말고 살아야해. 승혜도 그렇게 생각하지?” (중략)

* 본 작품의 전문은 <대산문화> 2011년 겨울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